강세호 에스이 사장

IT기술이 변화를 주도했던 신경제의 흐름은 ‘디지털 사회’에서 ‘네트워킹 사회’를 거쳐 ‘이동화(移動化) 사회’로 전환되고 있다. 꿈의 이동화 사회는 날이 갈수록 급속하게 진전되면서 사실상 사회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마을회관 앞에 놓인 자판기에서 수시로 이동전화를 이용해 콜라나 커피를 마실 수 있고, 극장을 갈 때도 현금을 주고 입장권을 구입하는 대신 이동전화 온라인 결제를 통해 간편하게 영화감상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동전화가 단순한 통화기능 외에 다양한 응용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 ‘다기능 디바이스’로 바뀌고 있는 현상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더욱 성숙된 ‘이동화 사회’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몇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빠른 비즈니스 전환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동통신 비즈니스는 자본 집약적인 사업이어서 서비스 개시 이전에 설치 자금 등 자본이 많이 필요하다. 이동통신의 원조로 불리던 비퍼(호출기)로부터 시티폰·PCS·IMT-2000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빠른 생명주기를 갖고 변해가는 것 또한 특징의 하나다. 이 과정에서 투입한 자금을 미처 회수하기도 전에 새로운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국내에서는 이미 ‘삐삐’라고 불리던 호출기 이용자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미국에는 요즘도 호출기 사용이 보편화돼 있다는 점이다. 언뜻 생각하면 미국이 한국에 비해 이동통신 기술이 뒤처지기 때문에 그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무선서비스 산업을 보호하려는 미국 측의 정책적 배려가 짙게 깔려있음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미국인들은 왜 요즘도 호출기를 즐겨 사용하고 있을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사용자가 이동전화를 걸 때 요금을 내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화를 받을 때도 돈을 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인들의 상당수는 요사이도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비퍼를 즐겨 이용한다는 것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이동전화로 오랫동안 통화를 하는 것은 큰 결례라고 한다. 전화를 받기만 해도 과금이 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에서는 휴대전화를 아예 꺼놓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인들이 주로 호출기를 사용해 연락을 취하며, 필요한 경우 자신이 저렴한 전화서비스를 이용해 회신전화를 거는 통화방식이 습관처럼 굳어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는 여기에서 ‘매우 작은 것처럼 보이는 정책 하나가 기술의 생명주기를 연장하면서 새로운 이동화체제로 전환되는 것을 돕는다’는 작지만 의미있는 교훈을 찾아낼 수 있다.

두번째는 무선콘텐츠 시장의 활성화 문제이다. 통신 인프라 측면에서 볼때 이동전화의 급성장과 함께 가장 필요한 것은 이동전화를 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무선 콘텐츠 시장의 육성이다. 이동전화 3사가 매년 수조원에 이르는 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무선 콘텐츠 공급업자가 큰 돈을 벌었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한 것 같다. 그 이유는 이동전화 3사가 제각기 다른 시스템 및 플랫폼 체계로 무선콘텐츠공급업자와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세한 무선콘텐츠 공급업자 입장에서는 어느 한 회사와 시스템 등을 ‘접속’하게 되면 이를 타업체 시스템과 연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비용이 들다보니 여러개의 시스템이나 플랫폼을 구축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동전화 3사의 시스템이 서로 다르게 구성돼 있다고 하더라도 무선콘텐츠 공급업자가 자유롭게 이동전화 3사의 플랫폼에 연결할 수 있는 ‘미들웨어’의 채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성숙된 이동화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이처럼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이동화사회’가 우리의 생활속에 ‘안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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