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논현동 가구거리. 높은 가을 하늘 아래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들의 발걸음이 분주합니다. 나, 진이(眞e)는 가구 골목을 수소문해 한 벤처기업을 찾았습니다. 광풍 같았던 벤처 열기가 차갑게 식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어느 한 구석에선 꿈과 열정으로 분주히 살아가는 벤처인을 보기 위함입니다. 뭔가에 도전하는 벤처정신이야말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항상 멋진 게 아니겠습니까.

‘이태리 가구’라는 간판이 내걸린 작은 건물의 윗층에 세든 ‘dtv인터렉티브’은 겉보기에 초라합니다. 20평의 비좁은 공간에 13명이 서로 등을 맞대고 일하고 있습니다. 사무실 임대료는 월 100만원이라고 합니다.

이 회사의 대표이사는 충연(32)입니다. 잘 나가는 제일기획을 그만두고 한차례의 참담한 실패 끝에 뜻이 통하는 또래들과 회사를 세웠습니다. 현대정보기술 출신의 태호(33·연구소장), 제일기획과 엠넷을 거친 준환(30·마케팅실장), 기업리스를 그만두고 사재를 투자하면서 재무를 맡은 진호(38·재무이사), 네트워크 및 셋톱박스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범수(32·개발팀장), 웹에이전시 출신의 치현(31·개발팀장), 그리고 데이터방송 서버기술에 관한 한 남다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정근(29·개발팀 대리) 등. 하나같이 젊고 패기가 있으며,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거나 풍족한 기회를 박차고 나와 벤처에 뛰어들었군요.

dtv인터렉티브의 이런 젊은이들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데이터방송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기술개발 단계이지만 내년쯤엔 필립스·파나소닉·톰슨멀티미디어 등 이 분야의 대표기업들과 한판 붙게 될 것입니다”

TV에 PC·인터넷 등의 기술이 융합돼 영상수신은 물론 정보전달 및 전자상거래의 수단이 되는 데이터방송을 위한 솔루션 및 장비 전문개발업체라고 합니다. 데이터방송은 방송·셋톱박스·네트워크 기술은 물론 소프트웨어 기술의 복합체라고 하는데, 직원 13명의 작은 벤처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요.

“벤처기업이 추진하기에는 힘든 일이지만 우리는 이제까지 순수한 벤처로서 당당하게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벤처기업이니까 이런 일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선 수백명의 연구진을 거느린 굴지의 대기업들이 버티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선 삼성전자가 투자한 알티캐스트가 dtv인터렉티브의 유일한 경쟁자라고 합니다. 벤처 붐이 한창일 때 설립된 인터넷TV·웹TV 분야의 벤처업체들은 혹독한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사업을 접은 상태이지요. 그래서 dtv인터렉티브 직원들의 긍지와 사명감은 더욱 드높은 것 같습니다.

“작년 5월 성수동 공장지대의 한 창고를 월 10만원에 빌려 시작했습니다. 우선 1600여쪽짜리 DVB―MHP(Multimedia Home Platform,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디지털방송 표준방식)의 스펙을 구해 읽고 또 읽었지요. 표준화된 스펙을 충분히 분석해서 실제로 구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거든요. 처음엔 개발자들이 엄청난 분량의 스펙을 보고 기겁을 했고, 스펙을 분석하는 데 적어도 1년 가량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열심히 해서 이를 6개월로 단축시켰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이 회사는 데이터방송 검증 장비인 ‘MHP 스트림 박스’ 시리즈를 내놓았고, 지난 7월부터 매출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 제품들은 지난 3월와 이달에 각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세계 양대 방송기술장비전인 ‘NAB2002’와 ‘IBC 2002’에 출품돼 관람객들의 각별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기술표준에 부합하면서도 가격이 파격적으로 싼 제품을 내놓아 이 분야의 대기업 관계자들을 아연 긴장시킨 것이지요.

그렇지만 매출 한 푼 없이 6개월동안 스펙 분석에만 매달렸다니 참으로 느긋해보이는군요. 충연은 이런 지적에 ‘벤처의 기본(Basic)’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벤처기업들은 핵심·원천 기술을 개발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요즘 벤처기업의 창업 아이템을 보세요. 웹·콘텐츠·애플리케이션·액세서리 등이 아닙니까.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아이템으로 출발하지요. 지금은 벤처 붐이 일기 이전보다도 벤처의 기술적 토양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벤처기업이 아니면 누가 위험을 감수하고 기술개발에 나서겠습니까. 우리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dtv인터렉티브 이후에 데이터방송 개발벤처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충연은 “ ‘내가 순수하게 내 자신의 몫으로, 내 스스로 위험 부담을 지고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가’를 묻고 벤처기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 이후에나 자금조달(펀딩)과 영업이익을 생각해야 맞지요”고 말했습니다.

당장 돈이 되는 일에 눈이 돌아가는 게 인지상정인데, 충연이 벤처기업의 자세를 강조한 것은 그 자신이 한창 벤처경기가 좋았던 2000년 8월 방송솔루션 업체를 설립했다가 1년 만에 회사를 청산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만 해도 사업계획서만 가지고도 펀딩이 가능했고, 실제로 충연은 여러 투자자로부터 5억원을 쉽게 조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남의 목 좋은 곳에 100평 가량의 넓은 사무실을 얻었고 월급도 많이 주는 조건으로 직원들을 모아 사업을 시작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지요.

겉 멋이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경험이었는데, 충연은 “돈으로 시작한 벤처는 자생력이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dtv인터렉티브 직원들은 대개 벤처투자 열기가 한창일 때 뛰어들었다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지요.

현재 dtv인터렉티브의 자본금은 3억6750만원입니다. 한 차례 증자를 했지만, 직원들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요. 외부자금이 한 푼도 없어 그만큼 자기 스스로 책임지고 일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젊음과 패기가 최대 자산인 dtv인터렉티브의 직원들은 시간이 날 때면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수동 창고에서 이 회사를 막 시작했을 때 외인구단처럼 모인 직원들이 어려운 벤처생활 끝에 몸과 마음이 적잖이 상한 상태여서 운동을 시작했지요. 하루에 두세시간씩 뚝섬경기장을 뛰거나 농구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검도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검도 2단인 마케팅실장 준환의 지도에 따라 올해 말까지 전 직원이 검도 유단자가 되겠다는 목표도 정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몸을 단련하다보니 직원들의 체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하는 만큼 이들에게는 체력이 곧 경쟁력이지요.

또 한가지 특별한 점은 dtv인터렉티브에서는 모든 것을 자기가 직접 부닥쳐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외바이어와 접촉해 초청하고, 외국전시회에 참가하며, 해외잡지에 광고를 내는 등의 온갖 일을 시행착오를 감수하고라도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처리하지요. 실전을 통해 훗날 큰 기업이 됐을 때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러다보니 영어가 필수가 됐는데, 이 회사는 빠듯한 살림에도 외국인 1명과 교포 1명을 고용해 직원들에게 영어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끝으로 충연은 “지금은 많은 돈을 벌지 못하지만, 앞으로 데이터방송 솔루션 시장이 열리면 세상이 깜짝 놀랄 것입니다”라며 “그 때까지는 앞만 바라보며 기술개발에 매진하겠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나, 진이는 다시 논현동 가구거리에 섰습니다. 가을 하늘이 아까보다 더 높고 푸르게 보입니다. 우리나라 벤처인의 미래를 보는 것 같습니다.

진이/기획취재팀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