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
지난 2000년 초 유럽의 이동통신 업계는 행복한 단꿈에 젖어 있었다. 안정적으로 늘어나는 휴대폰 가입자들로 인해 업체들의 재정은 풍부했으며, 해외 시장에 대한 투자도 좋은 실적이 기대됐다. 이들은 끊임없이 관련 업체들을 사들였다.
3세대(3G) 이동통신의 도입이 실현되면 휴대폰은 이동형 PC로 탈바꿈해 전 유럽인들을 하나의 문화로 묶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러한 기대를 안고 3G 사업권 경매에 뛰어들었다. 주파수 매입비용이 얼마가 됐던 상관이 없었다. 서비스만 이루어진다면 3G는 황금알을 낳을 것이라고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현재, 유럽 이동통신 시장에는 고통의 신음소리만이 가득하다. 곳곳에서 감원과 구조조정의 외침만이 난무하고 있다. 3G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고, 모든 것을 바쳐 이를 맞을 준비를 했던 업체들은 막대한 부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제 3의 통신사업자인 부위기스(Bouygues) 텔레콤의 마틴 부위기스 사장은 요즘 자신이 그동안 유럽에서 제정신을 가진 단 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프랑스에서 3G 사업권 경매가 있었던 2000년 봄, 그는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기술에 수십억 유로라는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은 정신나간 일이며 결국 이에 뛰어드는 업체는 부채의 늪에서 허우적대거나 사업을 중단하는 결과를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해 5월 6일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해 신문사에 보냈으며 사흘 뒤 르 몽드(Le Monde)지는 이를 1면에 실었다. “갑작스런 파멸이나 점진적인 죽음이라는 두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결과를 맞을 때 과연 경영자는 직원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라는 부위기스의 경고는 하지만 대다수 이동통신 업체들의 비웃음만을 산채 금새 잊혀지고 말았다.
3G 경매에 대한 업체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2000년 4월 영국에서 있었던 사업권 경매에는 5개사 선정에 무려 13개 업체가 참가, 2.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입찰가의 급등을 불러왔다. 라이선스 한 건당 입찰가는 10억달러에서 20억달러로, 다시 30억, 40억달러로 치솟았다.
영국에서의 열기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체로 이어졌다. 그해 7월에 있었던 독일내 경매에서는 총 낙찰금액이 무려 450억달러에 달했다. 강세를 보이던 주가에 고무된 이들 이동통신 업체들은 사업권 매입대금을 주식대신 현금으로 낼 것을 고집했다. 은행들은 이통업체들의 수익전망은 고려하지 않은채 돈 빌려주기에만 혈안이 됐다.
그러나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이동통신 업계의 웃음이 지워지는데는 2년이면 충분했다. 부위기스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과도한 부채를 안은 이들 업체들은 2001년 이후 경기불황과 주가하락이 발생하자 3G에 대한 기술투자를 줄이기 시작했으며, 이는 3G 장비와 휴대폰 개발을 진행하던 관련업체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마구잡이로 해외업체 인수에 나섰던 회사들은 인수업체의 시장가치 하락으로 막대한 평가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최근 몇 년 간 해외투자에 2000억달러를 쓴 보다폰이 대표적인 경우다. 2000년 초, 보다폰은 현금과 주식을 합쳐 총 1630억달러에 독일의 통신사업자인 만네스만(Mannesmann)을 인수했다. 지금 이로 인한 평가손실액만 250억~500억달러에 달하며, 보다폰은 지난 3월 종료된 2002 회계연도(2001.4~2002.3)에 유럽에서 가장 많은 손실규모를 기록한 회사가 됐다. 보다폰의 순손실액은 162억파운드(236억달러)로, 1년전의 99억달러에 비해 64% 늘어났다. 이 회사는 2003 회계연도 상반기(2002.4~2002.9)에만 최소한 150억파운드의 순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도이체 텔레콤의 론 좀머 회장은 600억달러라는 부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돈되는 것이면 모두 팔겠다고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나섰다. 프랑스 텔레콤의 미셸 봉 사장도 실적향상은 고사하고 자리보전에 급급한 처지다.
혹한은 휴대폰 단말기와 장비업체에도 몰아치고 있다. 세계 1위의 휴대폰 단말기 업체인 노키아의 주가는 2년새 75% 추락했다. 에릭슨은 휴대폰 사업부문을 소니와 합치고 아예 손을 뗐다. 통신장비시장은 부진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분야라는 불명예에 시달리고 있다.
말많고 탈많은 3G 서비스는 빠르면 내년쯤 당초 예상보다 2년가량 늦게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비스 지역과 규모는 훨씬 축소될 전망이다. 또한 서비스 시작 이후에도 결코 순탄치 않은 길을 갈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3G 산업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벤처캐피털인 파보니우스(Favonius) 벤처스의 로엘 피에퍼 사장은 “3G라는 단어는 이제 두렵기까지 하다”며 머리를 내젓는다.
유럽 통신산업의 부진이 야기할 더 심각한 문제는 유럽의 IT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미국 등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크다는 점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산업이 고르게 발달한 미국과는 달리 유럽은 통신분야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크다. 유럽의 컴퓨터 산업은 미약한 수준이며, 가전과 반도체 분야에서 필립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인피니온 만이 자리를 잡고 있다. 소프트웨어 분야도 독일의 SAP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별다른 업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분야의 부진은 IT 산업의 무게중심이 급격히 미국으로 쏠리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노무라 증권 런던지사의 키쓰 울콕 애널리스트는 “이제 주도권은 대서양을 건너 마이크로소프트(MS)를 비롯한 미국 업체들에게 완전히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위기스는 또 한번 웃을 일이 남아있다. 프랑스 정부가 그동안 유찰됐던 3G 라이선스 한 건에 대해 당초 입찰가 44억달러의 13%에 불과한 5억5700만달러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부위기스는 이제야 3G 사업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손정협기자>손정협기자>
지난 2000년 초 유럽의 이동통신 업계는 행복한 단꿈에 젖어 있었다. 안정적으로 늘어나는 휴대폰 가입자들로 인해 업체들의 재정은 풍부했으며, 해외 시장에 대한 투자도 좋은 실적이 기대됐다. 이들은 끊임없이 관련 업체들을 사들였다.
3세대(3G) 이동통신의 도입이 실현되면 휴대폰은 이동형 PC로 탈바꿈해 전 유럽인들을 하나의 문화로 묶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러한 기대를 안고 3G 사업권 경매에 뛰어들었다. 주파수 매입비용이 얼마가 됐던 상관이 없었다. 서비스만 이루어진다면 3G는 황금알을 낳을 것이라고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현재, 유럽 이동통신 시장에는 고통의 신음소리만이 가득하다. 곳곳에서 감원과 구조조정의 외침만이 난무하고 있다. 3G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고, 모든 것을 바쳐 이를 맞을 준비를 했던 업체들은 막대한 부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3G 사업권 경매가 있었던 2000년 봄, 그는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기술에 수십억 유로라는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은 정신나간 일이며 결국 이에 뛰어드는 업체는 부채의 늪에서 허우적대거나 사업을 중단하는 결과를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해 5월 6일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해 신문사에 보냈으며 사흘 뒤 르 몽드(Le Monde)지는 이를 1면에 실었다. “갑작스런 파멸이나 점진적인 죽음이라는 두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결과를 맞을 때 과연 경영자는 직원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라는 부위기스의 경고는 하지만 대다수 이동통신 업체들의 비웃음만을 산채 금새 잊혀지고 말았다.
3G 경매에 대한 업체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2000년 4월 영국에서 있었던 사업권 경매에는 5개사 선정에 무려 13개 업체가 참가, 2.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입찰가의 급등을 불러왔다. 라이선스 한 건당 입찰가는 10억달러에서 20억달러로, 다시 30억, 40억달러로 치솟았다.
영국에서의 열기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체로 이어졌다. 그해 7월에 있었던 독일내 경매에서는 총 낙찰금액이 무려 450억달러에 달했다. 강세를 보이던 주가에 고무된 이들 이동통신 업체들은 사업권 매입대금을 주식대신 현금으로 낼 것을 고집했다. 은행들은 이통업체들의 수익전망은 고려하지 않은채 돈 빌려주기에만 혈안이 됐다.
그러나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이동통신 업계의 웃음이 지워지는데는 2년이면 충분했다. 부위기스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과도한 부채를 안은 이들 업체들은 2001년 이후 경기불황과 주가하락이 발생하자 3G에 대한 기술투자를 줄이기 시작했으며, 이는 3G 장비와 휴대폰 개발을 진행하던 관련업체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마구잡이로 해외업체 인수에 나섰던 회사들은 인수업체의 시장가치 하락으로 막대한 평가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최근 몇 년 간 해외투자에 2000억달러를 쓴 보다폰이 대표적인 경우다. 2000년 초, 보다폰은 현금과 주식을 합쳐 총 1630억달러에 독일의 통신사업자인 만네스만(Mannesmann)을 인수했다. 지금 이로 인한 평가손실액만 250억~500억달러에 달하며, 보다폰은 지난 3월 종료된 2002 회계연도(2001.4~2002.3)에 유럽에서 가장 많은 손실규모를 기록한 회사가 됐다. 보다폰의 순손실액은 162억파운드(236억달러)로, 1년전의 99억달러에 비해 64% 늘어났다. 이 회사는 2003 회계연도 상반기(2002.4~2002.9)에만 최소한 150억파운드의 순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도이체 텔레콤의 론 좀머 회장은 600억달러라는 부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돈되는 것이면 모두 팔겠다고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나섰다. 프랑스 텔레콤의 미셸 봉 사장도 실적향상은 고사하고 자리보전에 급급한 처지다.
혹한은 휴대폰 단말기와 장비업체에도 몰아치고 있다. 세계 1위의 휴대폰 단말기 업체인 노키아의 주가는 2년새 75% 추락했다. 에릭슨은 휴대폰 사업부문을 소니와 합치고 아예 손을 뗐다. 통신장비시장은 부진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분야라는 불명예에 시달리고 있다.
말많고 탈많은 3G 서비스는 빠르면 내년쯤 당초 예상보다 2년가량 늦게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비스 지역과 규모는 훨씬 축소될 전망이다. 또한 서비스 시작 이후에도 결코 순탄치 않은 길을 갈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3G 산업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벤처캐피털인 파보니우스(Favonius) 벤처스의 로엘 피에퍼 사장은 “3G라는 단어는 이제 두렵기까지 하다”며 머리를 내젓는다.
유럽 통신산업의 부진이 야기할 더 심각한 문제는 유럽의 IT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미국 등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크다는 점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산업이 고르게 발달한 미국과는 달리 유럽은 통신분야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크다. 유럽의 컴퓨터 산업은 미약한 수준이며, 가전과 반도체 분야에서 필립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인피니온 만이 자리를 잡고 있다. 소프트웨어 분야도 독일의 SAP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별다른 업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분야의 부진은 IT 산업의 무게중심이 급격히 미국으로 쏠리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노무라 증권 런던지사의 키쓰 울콕 애널리스트는 “이제 주도권은 대서양을 건너 마이크로소프트(MS)를 비롯한 미국 업체들에게 완전히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위기스는 또 한번 웃을 일이 남아있다. 프랑스 정부가 그동안 유찰됐던 3G 라이선스 한 건에 대해 당초 입찰가 44억달러의 13%에 불과한 5억5700만달러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부위기스는 이제야 3G 사업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손정협기자>손정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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