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억이라는 꽤 많은 제작비란, 다르게 본다면 우리가 SF라는 영화장르에 대해 갖게 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최근 잇따라 만들어지며 한국영화의 평균 제작비를 올리고 있는 영화들은 이 SF 장르에 대한 매혹에 한참은 빠져있는 듯 하다. 이미 ‘2009 로스트 메모리즈’가 80억에 가까운 제작비를 기록했었고, 곧 선보일 장선우 감독의 초대작 프로젝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도 다시 한번 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경신할 전망이다.

‘예스터데이’의 정윤수 감독도 밝혔듯이 SF는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를 가장 상업적으로 풀 수 있다’. ‘블레이드 러너’가 SF의 걸작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영화가 다분히 상업적인 시스템 속에서 탄생했으면서도 암울한 세계관과 절박한 인간성에 대해 철학적이며 지적으로 설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모든 SF영화의 지향은 ‘블레이드 러너’의 비주얼과철학적 질문을 따라간다. 이른바 표준화 전략이다.

‘예스터데이’도 철저하게 표준화 전략을 따라간다. 한국에서 상업적인 방식으로 기획되어 대중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작영화들의 특징은 이제 유사할리우드를 넘어서 할리우드의 표준화 화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가 이 같은 영화를 보면서 새롭게 발견의 기쁨을 누릴 수는 없지만, 대신 매끄럽게 이어붙인 형식과 익숙해진 관습적 내용은 별 거부감 없이 영화를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때는 2020년, 국경지대에서 원로 과학자들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통일한반도의 특수수사대(SI)가 투입된다. 어느 날 특수요원인석(김승우)의 아들 한별이 납치되어 현장에서 죽게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배후를 밝혀나가던 중, 경찰청장이 납치되고 범행현장에서는 똑같은 팬던트가 단서로 발견된다. 범죄심리학자인 경찰청장 딸 희수(김윤진)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수사에 합류한다. 그러나 사건은 자꾸 얽혀만 가고, 이 모든 일들이 30년 전, 과학자들에 의해 비밀리에 추진됐던 인간 유전자 실험의 결과였음이 밝혀진다.

‘예스터데이’는 야심만만한 SF다. 게토나 도시전경, 광고비행선 등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합성해낸 디지털 기술과 화면은 미래사회에대한 감각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기여했다. 감독이 직접 써내려간 시나리오 또한 단순한 이야기를 거부하며 인간의 유전자와 유전자 복제, 생명윤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 이같은 문제들을 복잡하게 펼쳐놓으며 난해한 문제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라는 감독의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가 제공해주는 SF의 단서는 많다. 기억상실과 건망증, 계속되는 두통, 무국적 도시와 다국적 인종, 부랑자와 소요, 결국 아버지에게로 회귀하는 아들들, 창조주를 찾아가는 복제품.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이제 우리에겐 너무 익숙해진 장치들이다.

쉬리 이후 4년,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이제 그 대답을 들어야할 만한 시기다. 그러나 자가점검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내달리는 이 거대한 영화들 속에서 성의있는 답변을 바란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단지 제작비로만 환산되는 영화적 평가라면 너무 싱겁지 않은가. 이제 표준화 전략 보다는 차별화와 독창성이 더 요구되는 시점이다. 비록 비싼 실험이 될지라도 말이다.

영화평론가 이명인(proteur@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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