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업종을 전환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특히 대규모 장치산업인 전통 제조사업에서 IT 사업으로의 전환은 더더욱 그렇다. 급변하는 시장변화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신속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번개표 형광등’으로 잘 알려진 금호전기는 굴뚝기업에서 IT기업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대표적인 회사다.박명구 금호전기 사장(49)은 경영진에 합류한 지 3년 만에 수십년간 걸친 조명 노하우에 IT를 접목시킴으로써 적자투성이 기업을 흑자 기조로 전환시킨 주인공이다.
▨80년을 빛낸 젊은 과학도=박명구 금호전기 사장은 사업가라기 보다 전형적인 엔지니어에 가깝다.박 사장은 77년 ‘금파전자연구소’를 설립 창업전선에 뛰어든 뒤 ‘전자식 택시요금미터기’를 국내 첫 개발한데 이어, 79년엔 ‘전자식 안정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람이다.
당시 그가 개발한 ‘엘바 안정기’는 형광등을 켤때 몇번씩 깜박거리다 켜지는 것을 단번에 켜지도록 하는 전자부품. 일본과 미국 등 세계적인 조명업체들이 앞다퉈 개발경쟁을 벌였으나,시제품 하나 제대로 내지 만들지 못했던 상황이었다.이 발명품으로 박 사장은 이듬해인 8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9회 국제발명대회에서 대상과 금상을 동시에 동시에 거머쥐며 국내를 비롯한 세계 유력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했다.당시 그의 나이 26살 때의 일이다.그가 발명한 엘바안정기는 22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세계 표준으로 통용되고 있다
박 사장은 그때를 이렇게 회고했다.“당시 김사득 금호전기 사장의 요청으로 시작한 일이지만,황무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 벤처현실에서 도움을 받을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죠.전구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이 오로지 뚝심 하나만으로 덤벼들었던 일이었습니다”. 결국 엘바안정기는 그는 수십번의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땀과 눈물의 결실이었던 것이다.
엔지니어 특유의 뚝심은 그가 금호전기 경영진으로 합류하면서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박 사장이 금호전기 부사장으로 취임한 98년 당시만해도 금호전기는 국내 대표적인 조명기구 전문제조업체라는 명성이 상당히 퇴조해가던 시기였다.시장환경은 급변하는데도 오로지 조명사업 한 우물에만 매달린 탓에 회사의 성장탄력은 이미 정체될대로 정체된데다,방만한 경영으로 회사 전체가 급속히 쇠퇴일로에 접어들었던 것.때마침 터진 IMF 한파로 재정상황마저 ‘위험수위’에 올라섰다.
박 사장은 우선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를 털어내기 위한 구조조정 작업에 몰두했다.한때 1000여명에 달했던 인력을 한때 400명선으로 줄인데 이어 부실의 온상으로 지적돼온 전남 광주공장도 폐쇄했다.올초엔 금호전기의 60년 역사의 대변해온 본사건물마저 매각해버렸다. 이같은 각고의 노력끝에 지난 99년 1100억원에 이르던 부채비율이 지난해 894억원, 올해 다시 474억원 수준으로 대폭 낮아질 전망이다.
반면 첨단 IT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한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았다.박 사장은 회사를 재기시킬 수 있는 차세대 사업으로 냉음극형광램프(CCFL)를 선정했다.CCFL은 노트북컴퓨터, 액정TV, 캠코더 등에 사용되는 TFT―LCD의 핵심부품으로,제조기술 개발이 워낙 까다로운 탓에 해리슨전기·산케전기·웨스트전기 등 일본 선발업체만이 제품을 생산해왔던 품목이다.이같은 기술적 위험부담과 높은 진입장벽은 엔지니어 출신인 박 사장의 오기를 또 한번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빛에 근간한 IT기업화=박 사장은 어려운 재정여건 속에서도 99년 서울부채조정기금(슈로더)으로부터 499억원을 유치받아 이중 200억원을 CCFL 제조기술 및 설비도입에 과감히 투자했다.그러나 사업진행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일본의 CCFL 설비업체로부터 ‘과연 할 수 있겠느냐’는 온갖 냉대를 이겨내고 생산설비를 들여오긴 했지만,극도의 고밀도 기술이 필요한 CCFL 양산은 1년이 넘도록 시행착오만 되풀이됐던 것이다.
“TFT―LCD은 결국 조명이 성능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1/100의 불량률도 치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당시 기술 개발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회사를 더욱 망가뜨리는 것 아닌가 하는 후회감으로 밤잠을 설친 게 하루이틀이 아니었죠”
그러나 박 사장은 현장에서 직접 엔지니어들과 설계작업을 진행하는 등 기술진들을 독려한 끝에 결국 국내 업계 최초로 국산 CCFL을 양산하는데 성공했다. 금호전기는 경기도 수원공장에 CCFL 3개 생산라인을 갖추고,지난해 7월부터 본격적인 양산작업에 들어갔다.이를 통해 지난해 CCFL 사업으로 벌어들인 매출은 46억원.그러나 올들어 TFT―LCD 산업이 호황국면에 접어들면서 올해 CCFL 사업에서만 총 400억원의 매출이 예상된다.
박 사장은 “최근엔 3개의 CCFL 생산라인이 24시간 풀가동해도 주문량을 채우지 못할 정도”라며 “이대로라면 올해 기존 간판 사업인 조명사업의 예상매출과 맞먹는 600억원 수준에 육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늘어난 주문량을 소화하기 위해 이달부턴 국산기술로 제작한 4호 설비가 가동되고,연내에 5,6호기도 도입된다.이렇게 될 경우,금호전기의 CCFL 생산능력은 월 120만개 수준에서 월 240만개 규모로 대폭 확대될 예정이다.현재 5%에 불과한 CCFL 세계시장 점유율도 11%대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란 게 박 사장의 야심찬 비전이다.
박 사장의 도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금호전기는 지난해 CCFL외에 컬러 휴대폰용 LCD 백라이트유닛(BLU),발광다이오드(LED)전광판 사업에도 잇따라 진출했다.올해부터는 프로젝션 TV용 필름미러, LCD용 마이크로필름,고휘도 유도등 등의 신규사업 진출도 추진할 계획이다.이를 통해 내년부턴 신규사업 매출이 전체 60% 이상을 커버하는 첨단 디스플레이 부품업체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같은 금호전기의 변신을 기존 간판을 전혀 새로운 간판으로 바꿔 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박 사장은 강조한다.반세기 동안 축적된 ‘빛(조명)’에 대한 노하우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첨단 IT응용분야에만 집중 투자함으로써 ‘역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갖춘 IT기업으로 재탄생하겠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성연광기자>
‘번개표 형광등’으로 잘 알려진 금호전기는 굴뚝기업에서 IT기업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대표적인 회사다.박명구 금호전기 사장(49)은 경영진에 합류한 지 3년 만에 수십년간 걸친 조명 노하우에 IT를 접목시킴으로써 적자투성이 기업을 흑자 기조로 전환시킨 주인공이다.
▨80년을 빛낸 젊은 과학도=박명구 금호전기 사장은 사업가라기 보다 전형적인 엔지니어에 가깝다.박 사장은 77년 ‘금파전자연구소’를 설립 창업전선에 뛰어든 뒤 ‘전자식 택시요금미터기’를 국내 첫 개발한데 이어, 79년엔 ‘전자식 안정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람이다.
당시 그가 개발한 ‘엘바 안정기’는 형광등을 켤때 몇번씩 깜박거리다 켜지는 것을 단번에 켜지도록 하는 전자부품. 일본과 미국 등 세계적인 조명업체들이 앞다퉈 개발경쟁을 벌였으나,시제품 하나 제대로 내지 만들지 못했던 상황이었다.이 발명품으로 박 사장은 이듬해인 8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9회 국제발명대회에서 대상과 금상을 동시에 동시에 거머쥐며 국내를 비롯한 세계 유력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했다.당시 그의 나이 26살 때의 일이다.그가 발명한 엘바안정기는 22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세계 표준으로 통용되고 있다
박 사장은 그때를 이렇게 회고했다.“당시 김사득 금호전기 사장의 요청으로 시작한 일이지만,황무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 벤처현실에서 도움을 받을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죠.전구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이 오로지 뚝심 하나만으로 덤벼들었던 일이었습니다”. 결국 엘바안정기는 그는 수십번의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땀과 눈물의 결실이었던 것이다.
엔지니어 특유의 뚝심은 그가 금호전기 경영진으로 합류하면서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박 사장이 금호전기 부사장으로 취임한 98년 당시만해도 금호전기는 국내 대표적인 조명기구 전문제조업체라는 명성이 상당히 퇴조해가던 시기였다.시장환경은 급변하는데도 오로지 조명사업 한 우물에만 매달린 탓에 회사의 성장탄력은 이미 정체될대로 정체된데다,방만한 경영으로 회사 전체가 급속히 쇠퇴일로에 접어들었던 것.때마침 터진 IMF 한파로 재정상황마저 ‘위험수위’에 올라섰다.
박 사장은 우선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를 털어내기 위한 구조조정 작업에 몰두했다.한때 1000여명에 달했던 인력을 한때 400명선으로 줄인데 이어 부실의 온상으로 지적돼온 전남 광주공장도 폐쇄했다.올초엔 금호전기의 60년 역사의 대변해온 본사건물마저 매각해버렸다. 이같은 각고의 노력끝에 지난 99년 1100억원에 이르던 부채비율이 지난해 894억원, 올해 다시 474억원 수준으로 대폭 낮아질 전망이다.
반면 첨단 IT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한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았다.박 사장은 회사를 재기시킬 수 있는 차세대 사업으로 냉음극형광램프(CCFL)를 선정했다.CCFL은 노트북컴퓨터, 액정TV, 캠코더 등에 사용되는 TFT―LCD의 핵심부품으로,제조기술 개발이 워낙 까다로운 탓에 해리슨전기·산케전기·웨스트전기 등 일본 선발업체만이 제품을 생산해왔던 품목이다.이같은 기술적 위험부담과 높은 진입장벽은 엔지니어 출신인 박 사장의 오기를 또 한번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빛에 근간한 IT기업화=박 사장은 어려운 재정여건 속에서도 99년 서울부채조정기금(슈로더)으로부터 499억원을 유치받아 이중 200억원을 CCFL 제조기술 및 설비도입에 과감히 투자했다.그러나 사업진행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일본의 CCFL 설비업체로부터 ‘과연 할 수 있겠느냐’는 온갖 냉대를 이겨내고 생산설비를 들여오긴 했지만,극도의 고밀도 기술이 필요한 CCFL 양산은 1년이 넘도록 시행착오만 되풀이됐던 것이다.
“TFT―LCD은 결국 조명이 성능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1/100의 불량률도 치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당시 기술 개발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회사를 더욱 망가뜨리는 것 아닌가 하는 후회감으로 밤잠을 설친 게 하루이틀이 아니었죠”
그러나 박 사장은 현장에서 직접 엔지니어들과 설계작업을 진행하는 등 기술진들을 독려한 끝에 결국 국내 업계 최초로 국산 CCFL을 양산하는데 성공했다. 금호전기는 경기도 수원공장에 CCFL 3개 생산라인을 갖추고,지난해 7월부터 본격적인 양산작업에 들어갔다.이를 통해 지난해 CCFL 사업으로 벌어들인 매출은 46억원.그러나 올들어 TFT―LCD 산업이 호황국면에 접어들면서 올해 CCFL 사업에서만 총 400억원의 매출이 예상된다.
박 사장은 “최근엔 3개의 CCFL 생산라인이 24시간 풀가동해도 주문량을 채우지 못할 정도”라며 “이대로라면 올해 기존 간판 사업인 조명사업의 예상매출과 맞먹는 600억원 수준에 육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늘어난 주문량을 소화하기 위해 이달부턴 국산기술로 제작한 4호 설비가 가동되고,연내에 5,6호기도 도입된다.이렇게 될 경우,금호전기의 CCFL 생산능력은 월 120만개 수준에서 월 240만개 규모로 대폭 확대될 예정이다.현재 5%에 불과한 CCFL 세계시장 점유율도 11%대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란 게 박 사장의 야심찬 비전이다.
박 사장의 도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금호전기는 지난해 CCFL외에 컬러 휴대폰용 LCD 백라이트유닛(BLU),발광다이오드(LED)전광판 사업에도 잇따라 진출했다.올해부터는 프로젝션 TV용 필름미러, LCD용 마이크로필름,고휘도 유도등 등의 신규사업 진출도 추진할 계획이다.이를 통해 내년부턴 신규사업 매출이 전체 60% 이상을 커버하는 첨단 디스플레이 부품업체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같은 금호전기의 변신을 기존 간판을 전혀 새로운 간판으로 바꿔 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박 사장은 강조한다.반세기 동안 축적된 ‘빛(조명)’에 대한 노하우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첨단 IT응용분야에만 집중 투자함으로써 ‘역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갖춘 IT기업으로 재탄생하겠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성연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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