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奧地)’는 없다. 적어도 인터넷 세상에는 ‘오지’가 없다. 전화선을 따라, 초고속 인터넷망을 따라, 선(線)도 못 타넘는 첩첩산중·절해고도에도 하늘 높이 떠있는 위성을 따라 인터넷은 강물처럼 흐른다. 전국 144개 도시를 초고속 정보통신망으로 묶고 1만여곳에 달하는 초·중·고교 모든 교실을 인터넷으로 휘감은 나라. 바로 우리의 ‘현주소’다.
이제 물리적, 지리적 공간에서 오지를 찾기는 힘들다. 다만 선이나 위성으로 닿을 수 없는, 그리고 주위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우리 마음속 그늘진 곳에나 남아 있을 뿐이다. 〈편집자주〉
강릉시 연곡면 부연분교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산삼3리 1280번지 신왕초등학교 부연분교에는 맑은 날도 해가 잘 들지 않는다. 해발 500m가 넘는 산들이 햇빛닿을 틈도없이 에워싸고 있는 탓이다. 산은 이곳을 오지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 주문진 방면으로 향하는 6번 국도를 따라 가다 다시 눈앞이 아찔해지는 비포장도로로 빠져 한참을 달려야 이르는 외딴 부연마을 한가운데 이 학교가 있다.
야트막한 돌담 너머 빨간 벽돌에 고깔모자 지붕을 얹은 학교는 아담한 예배당같다. 미닫이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서면 쇠난로를 둥그렇게 둘러싼 아이들이 공부하다 말고 이방인을 반긴다. 샛별반 현규·년미·정아·두환이와 한별반 기환·주현·재규 일곱명 아이들과 김동우(48)·김성숙(42) 부부교사가 이 곳 주인들이다. 30여년간 학교를 관리해 온 지연석씨(52), 형 두환이를 따라온 일곱살배기 동현이까지 모두 합쳐봐야 11명 뿐인 초미니 학교다.
산골속 작은 학교지만 없는 게 없다. 교실 한켠에는 프로젝션 TV와 팩스머신같이 생긴 영어학습기, 그리고 컴퓨터 여러대가 놓여 있다. 1인 1PC. 지난해 봄 초고속 광케이블망이 학교에 들어온 이후 인터넷은 아이들 깊숙히 들어와 있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에듀넷 같은 학습사이트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자료를 찾는다. 특히 예전에는 음악 감상곡 찾기가 힘들었는데 인터넷이 깔리고 나선 문제가 해결됐다. 아이들이 선생님보다 먼저 필요한 음악을 찾아 튼다.
점심시간은 컴퓨터 이용이 자유롭다. 컴퓨터는 제일 친한 친구다. 점심을 다 먹기도 전에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 앉는다. 제일 큰 형격인 5학년 재규는 요즘 강릉으로 유학(?)간 동네 누나에게 이메일을 쓴다. 4학년 기환이는 울산에 사는 한 초등학생과 채팅도 한다. 기환, 주현이는 얼마전 아버지 병환 대문에 서울로 이사간 동갑내기 세찬이로부터 아직도 이메일 답장을 못받았다. 서울에서 살다 온 재규는 “PC방에 가서 메일을 보내면 될텐데”라고 거든다.
인터넷 메일 계정을 열어본 2학년 두환이가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다. 메일이 왔기 때문이다. 이메일 회사에서 보낸 안내장이다. 형 옆에 선 동현이는 어서빨리 학교에 입학하고 싶다.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어서”라고 수줍게 말했다.
부연분교장 김동우 교사(48)는 일주일에 한번 ‘컴퓨터 없는 날’을 지정할 생각이다. 예전에 쉬는 시간만 되면 밖에 나간 놀던 아이들이 요새는 컴퓨터 앞으로만 모인다.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문화적인 혜택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컴퓨터 밖에 없지요.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하는 것이 제일 안타깝습니다.”
방과후 남자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듯 학교앞 가게 재규네 안방에 모인다. 재규·현규, 두환·동현 형제에다 기환이와 주현이까지 가세해 떠들어 대는 통에 재규 할머니(69)는 머리가 아프다. 이날 주제는 ‘탑블레이드’. 팽이와 비슷하게 생긴 탑블레이드는 요즘 어디서나 인기 최고다. 누구 탑블레이드가 가장 쎈가 내기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오후 4시가 되자 재규, 기환, 주현이는 옆집 택견 선생님 댁을 찾아간다. 김수원씨(38)는 전국 4~5명 밖에 없는 택견 고수. 행복한 삶을 찾아 도시를 떠나 이곳에 왔다. 3학년 이상 초등학생들에게 택견을 무료로 가르치고 있다. 품밟기, 옆발따기 등. 아이들 몸동작이 매우 유려하다. 학원없는 산골에서 소중한 경험이다. 선생님 안방 책상에도 컴퓨터는 있다. 서울 친구와 안부를 주고 받는 수단이다.
현규는 저녁을 먹자 말자 컴퓨터를 켰다. 100가지가 넘는 게임이 컴퓨터에 깔려있다. 아이들이 있는 집에는 대부분 컴퓨터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지 못하는 부모들은 미안한 마음에 제일 먼저 컴퓨터를 사준다. 직접 사용하지 못해도 아이들은 컴퓨터를 이용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게임인지 학습타이틀인지 부모들은 컴퓨터를 잘 모른다. 현규는 1시간 넘게 게임을 즐긴다. 형 재규는 할머니와 TV를 본다. 강릉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가끔 들어온다.
밤 10시 넘어 현규와 할머니가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다. ‘동산에 올라 파란하늘을 바라보니…’ 현규가 학교에서 배운 동요를 가르친다. ‘동~산~에~’ 할머니가 트롯트 버전으로 답가를 부른다. 할머니는 리어카를 사서 이고 지고 건넜던 험한 120리길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컴퓨터로 멀리 사는 친구와 채팅하는 현규와 도움없인 전화도 제대로 못거는 할머니. 서로 살아가는 세월은 다르지만 한이불아래 정겹게 잠든다. 산골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이제 물리적, 지리적 공간에서 오지를 찾기는 힘들다. 다만 선이나 위성으로 닿을 수 없는, 그리고 주위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우리 마음속 그늘진 곳에나 남아 있을 뿐이다. 〈편집자주〉
강릉시 연곡면 부연분교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산삼3리 1280번지 신왕초등학교 부연분교에는 맑은 날도 해가 잘 들지 않는다. 해발 500m가 넘는 산들이 햇빛닿을 틈도없이 에워싸고 있는 탓이다. 산은 이곳을 오지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 주문진 방면으로 향하는 6번 국도를 따라 가다 다시 눈앞이 아찔해지는 비포장도로로 빠져 한참을 달려야 이르는 외딴 부연마을 한가운데 이 학교가 있다.
야트막한 돌담 너머 빨간 벽돌에 고깔모자 지붕을 얹은 학교는 아담한 예배당같다. 미닫이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서면 쇠난로를 둥그렇게 둘러싼 아이들이 공부하다 말고 이방인을 반긴다. 샛별반 현규·년미·정아·두환이와 한별반 기환·주현·재규 일곱명 아이들과 김동우(48)·김성숙(42) 부부교사가 이 곳 주인들이다. 30여년간 학교를 관리해 온 지연석씨(52), 형 두환이를 따라온 일곱살배기 동현이까지 모두 합쳐봐야 11명 뿐인 초미니 학교다.
산골속 작은 학교지만 없는 게 없다. 교실 한켠에는 프로젝션 TV와 팩스머신같이 생긴 영어학습기, 그리고 컴퓨터 여러대가 놓여 있다. 1인 1PC. 지난해 봄 초고속 광케이블망이 학교에 들어온 이후 인터넷은 아이들 깊숙히 들어와 있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에듀넷 같은 학습사이트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자료를 찾는다. 특히 예전에는 음악 감상곡 찾기가 힘들었는데 인터넷이 깔리고 나선 문제가 해결됐다. 아이들이 선생님보다 먼저 필요한 음악을 찾아 튼다.
점심시간은 컴퓨터 이용이 자유롭다. 컴퓨터는 제일 친한 친구다. 점심을 다 먹기도 전에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 앉는다. 제일 큰 형격인 5학년 재규는 요즘 강릉으로 유학(?)간 동네 누나에게 이메일을 쓴다. 4학년 기환이는 울산에 사는 한 초등학생과 채팅도 한다. 기환, 주현이는 얼마전 아버지 병환 대문에 서울로 이사간 동갑내기 세찬이로부터 아직도 이메일 답장을 못받았다. 서울에서 살다 온 재규는 “PC방에 가서 메일을 보내면 될텐데”라고 거든다.
인터넷 메일 계정을 열어본 2학년 두환이가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다. 메일이 왔기 때문이다. 이메일 회사에서 보낸 안내장이다. 형 옆에 선 동현이는 어서빨리 학교에 입학하고 싶다.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어서”라고 수줍게 말했다.
부연분교장 김동우 교사(48)는 일주일에 한번 ‘컴퓨터 없는 날’을 지정할 생각이다. 예전에 쉬는 시간만 되면 밖에 나간 놀던 아이들이 요새는 컴퓨터 앞으로만 모인다.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문화적인 혜택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컴퓨터 밖에 없지요.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하는 것이 제일 안타깝습니다.”
방과후 남자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듯 학교앞 가게 재규네 안방에 모인다. 재규·현규, 두환·동현 형제에다 기환이와 주현이까지 가세해 떠들어 대는 통에 재규 할머니(69)는 머리가 아프다. 이날 주제는 ‘탑블레이드’. 팽이와 비슷하게 생긴 탑블레이드는 요즘 어디서나 인기 최고다. 누구 탑블레이드가 가장 쎈가 내기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오후 4시가 되자 재규, 기환, 주현이는 옆집 택견 선생님 댁을 찾아간다. 김수원씨(38)는 전국 4~5명 밖에 없는 택견 고수. 행복한 삶을 찾아 도시를 떠나 이곳에 왔다. 3학년 이상 초등학생들에게 택견을 무료로 가르치고 있다. 품밟기, 옆발따기 등. 아이들 몸동작이 매우 유려하다. 학원없는 산골에서 소중한 경험이다. 선생님 안방 책상에도 컴퓨터는 있다. 서울 친구와 안부를 주고 받는 수단이다.
현규는 저녁을 먹자 말자 컴퓨터를 켰다. 100가지가 넘는 게임이 컴퓨터에 깔려있다. 아이들이 있는 집에는 대부분 컴퓨터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지 못하는 부모들은 미안한 마음에 제일 먼저 컴퓨터를 사준다. 직접 사용하지 못해도 아이들은 컴퓨터를 이용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게임인지 학습타이틀인지 부모들은 컴퓨터를 잘 모른다. 현규는 1시간 넘게 게임을 즐긴다. 형 재규는 할머니와 TV를 본다. 강릉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가끔 들어온다.
밤 10시 넘어 현규와 할머니가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다. ‘동산에 올라 파란하늘을 바라보니…’ 현규가 학교에서 배운 동요를 가르친다. ‘동~산~에~’ 할머니가 트롯트 버전으로 답가를 부른다. 할머니는 리어카를 사서 이고 지고 건넜던 험한 120리길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컴퓨터로 멀리 사는 친구와 채팅하는 현규와 도움없인 전화도 제대로 못거는 할머니. 서로 살아가는 세월은 다르지만 한이불아래 정겹게 잠든다. 산골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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