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넷 전우직 사장

정보통신의 발달은 정보교환 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도 빠르게 하는 것 같다. 인터넷, 정확히 말해 미국 국방부가 군사목적으로 개발한 통신규격인 인터넷프로토콜(IP)이 민간용으로 사용된 지 이제 20여년 밖에 되지 않았는 데도 이미 인터넷은 우리생활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웹브라우저의 효과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인터넷 사용자는 전공자에서 일반인으로 확대되었고 사용자수는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같은 사용자 증가는 인터넷을 통한 수많은 사업분야를 탄생시켰다. 급기야 닷컴기업으로 통칭되는 벤처붐도 일어났다. 거품이냐, 아니면 새로운 정보사회의 도래인가라는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아이디어 하나 만으로 억만장자가 된 스타들도 배출됐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것 같았던 분위기도 이제 조금은 주춤해진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을 통한 화상회의는 조그만 화면과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인해 중대한 사업에는 사용하기 어렵고 인터넷 전화는 무료라는 이점으로 주가를 올렸으나 통화품질의 한계로 역시 기존 전화시장을 잠식하는 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왜 그럴까? 인터넷은 패킷이라는 단위를 기본으로 정보를 교환한다. 인터넷망은 이 패킷에 표시된 목적지 주소를 기준으로 다음 노드로 진행해 마침내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인터넷망에서는 모든 패킷이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쓸모가 없어지는 음성 패킷도 배달시간에 무관한 대형 메일패킷 뒤에서 기다려야만 한다. 그래서 통신망이 한가한 시간에는 잘 되던 인터넷 전화통화도 통신망이 혼잡한 시간에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이런 인터넷망에서 누가 유료로 이 같은 서비스를 사용하겠는가?

이것이 인터넷의 한계일까? 아니다. 이제 인터넷도 또 한차례의 혁명적인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의 한계를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서비스 품질의 보장일 것이다. 한때 일부 전문가들은 인터넷 통신의 속도가 계속 향상될 것이기 때문에 인터넷 통신에서 충분한 대역만 보장되면 원하는 통신 품질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치 도로가 혼잡해지면 그만큼 차선을 늘이면 된다는 발상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발달에 의한 통신망 대역폭의 증가보다 사용자의 통신사용량이 더 빨리 증가하거나 사용자가 특정 시간에 특정 경로에 집중되는 경우에 대처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인터넷은 이제 통신 품질의 보장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는 바로 인터넷의 두번째 혁명이다.

어떻게 인터넷 통신의 품질을 보장할 것인가? 인터넷에서 통신품질 보장이란 제한된 통신자원을 언제 누구에게 할당할 것이냐는 문제로 귀착된다. 현재의 인터넷은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모든 패킷이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롭게 제안된 방식이 바로 MPLS(MultiProtocol Label Switching)이다. 멀티프로토콜이란 현재 인터넷에서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프로토콜을 모두 수용한다는 의미이다. 또 라벨스위칭이란 기존 인터넷이 각 패킷의 목적지 주소를 기준으로 다음 경로를 단순히 지정하던 방식에서 라벨이라는 표시를 각 패킷에 부여하고 이 표시를 기준으로 미리 정해진 다양한 방식으로 패킷을 처리하자는 새로운 기술이다.

패킷에 라벨을 부여하는 방식은 이미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던 방식과 유사하다. 가령 우편물이 얼마 되지 않던 시절에는 우편봉투에 적힌 주소만으로 편지들을 분류하고 배달했다. 그러나 우편양이 증가하면서 우편번호가 도입됐다. 동네 구멍가게에는 필요하지 않지만 대형 활인점에서는 각 상품에 붙어있는 바코드 사용이 필수적이다. 마찬가지로, 인터넷 패킷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라벨을 부착하고 그 라벨에 따라 적절한 처리를 한다면 인터넷은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발전할 것이다.

이미 외국의 주요 인터넷망사업자와 국내 망사업자들도 MPLS를 도입하거나 도입계획을 발표하고 있으니 인터넷의 새로운 혁명을 기대해 볼 일이다. 또한 지금까지 국내 인터넷이 대부분 외산 통신장비로 구성돼 생산은 없고 소비만 있는 반쪽 인터넷 선진국이라는 오명을 벗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우리의 초고속인터넷은 우리가 만든 장비로 구성하고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서비스 품질을 보장하는, 그래서 전시회가 아닌 실제상황에서 시연 수준이 아닌 실질적 분야에서 인터넷을 활용하는 그런 인터넷 선진국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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