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벤처산업의 메카로 군림해온 서울 테헤란밸리가 위협받고 있다.

24일 벤처업계에 따르면,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국내 벤처기업들의 인큐베이팅 공간으로 출발해 초고속성장세를 지속해온 테헤란밸리가 최근 벤처타운 붐이 일기 시작한 경기도 안양, 부천, 일산시에 이어 판교까지 벤처 신도시 개발논쟁이 확대되면서 그 위상과 역할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 테헤란밸리 위기

테헤란밸리의 위기는 벤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던 지난해 하반기부터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견 벤처기업과 외국업체들이 서울 포이동이나 경기도 분당, 안양, 광명 쪽으로 이전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테헤란밸리 내 삼성역 부근의 평당 임대료는 200만원대를 넘는데 비해 분당, 안양 등 서울 인접권은 그 절반 이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경기도나 각 시의 벤처지구로 등록된 빌딩의 경우는 교통여건도 그리 나쁘지 않은데다 사실상 임대료가 거의 없고 각종 세제상의 혜택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어 벤처업체들이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분당지역은 한국통신을 주요 수요처로 하는 통신장비업체들이 테마군을 형성하고 있고, 부천은 부품제조업체, 안양은 제조형 기반의 기계·통신장비 업체들이 모여들어 특성화·전문화하면서 테헤란밸리와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같은 서울권이면서도 포이동 일대와 서울디지털산업단지(구 구로공단) 일대도 최근 벤처업체들의 새로운 정착지로 자리잡고 있다.

벤처업계에서는 R&D(기술개발)를 기반으로 하는 벤처업체들에게 테헤란밸리는 해답이 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벤처기업협회 오완진 팀장은 “테헤란밸리가 자금과 시장의 흐름을 좌우하는중심에 서 있지만, 높은 임대료와 유지비 등으로 인해 비즈니스 공간을 제외하고는 대규모 R&D센터를 유지하기가 어렵고 각종 연구기관, 대학들과 연계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에도 부담스러운 곳이 됐다”며 “이런 점 때문에 판교 벤처 신도시 개발에 벤처업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테헤란밸리가 주로 닷컴업체들의 비즈니스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간이었다면, 판교 신도시는 주거공간과 대학, 연구소, 벤처기업을 종합적으로 연결하는 계획 도시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판교 벤처 신도시

벤처업계가 테헤란밸리의 새로운 대안으로 보고 있는 곳이 경기도 성남 판교 일대다. 판교의 경우, 인근 분당 신도시에 형성된 대규모 주거공간은 물론 대전, 수원, 서울을 연결하는 R&D센터 구축이 가능하고 각종 연구중심의 대학 설립을 통해 벤처업체들이 배후시설을 충분히 활용하는 데 최상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특히 R&D 지원은 물론 최대 시장인 서울과 40Km 반경 내에 있어 비즈니스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도 무리가 없다.

판교 벤처 신도시 추진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경기도와 벤처기업협회는 건설교통부에 전체 280만평 중 벤처단지와 주거단지를 같은 비율인 60만평으로 구성, 완전한 자족형 벤처 신도시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판교 벤처 신도시 건설계획이 수면위로 떠오르자 테헤란밸리 업체들이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본지가 테헤란밸리 내에 있는 5개 업체의 CEO들을 전화 조사한 결과, 당장 3개업체가 입주기회가 주어지면 판교 벤처 신도시로 이전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선 입주비용이 싸고 네트워크 구축이 무리없이 진행돼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지만, 관련업체 CEO들의 반응을 보면 벤처 신도시 개발이 테헤란밸리에 어떤 파급효과를 미칠 것인지는 분명해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시측에서는 판교 벤처 신도시 개발계획이 자칫 서울 테헤란밸리 벤처업체들의 이탈현상을 부추기고, 현재 추진중인 상암 미디어센터 사업 등에 반대급부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판교 신도시 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건설교통부는 경기도와 벤처기업협회가 제안한 60만평 벤처지구 지정에 대해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고 당초 10만평을 벤처타운으로 조성하겠다는 입장만 재확인했다. 60만평을 벤처단지로 조성할 경우, 30만명의 종사자가 판교에 몰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에 심각한 교통난이 유발될 것이라는 게 건교부의 설명이다.

건교부가 표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이유는 교통문제이지만, 실제 판교 벤처 신도시 건립 문제는 테헤란밸리의 위상을 지키려고 하는 서울시와 새로운 벤처 메카를 만들려고 하는 경기도·벤처 진영간의 힘겨루기 싸움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경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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