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수술실 환경 '한번의 터치'로 제어
강화유리 덮힌 파란수술실 내부
세균감염 막고 수술집중 도와줘

지난달 28일 태국 방콕 사미티벳 수쿰윗 병원 수술실에서 칭이암 빤자삐야쿤 외과 전문의가 올림푸스의 수술실 통합 시스템 '엔도알파'의 복강경 수술 모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태국 방콕의 중심가인 수쿰윗에 위치한 사미티벳 병원 정문 앞에 차를 멈췄다. 호텔처럼 차분한 분위기의 로비에는 현지인보단 낯익은 동양인들이 더 많았다. 특히 일본인들이 많이 찾아 전용 안내데스크가 따로 마련돼있고, 앞으로 전용 병동도 새로 지을 예정이다.

1979년 문을 연 민간 종합병원인 사미티벳 수쿰윗 병원은 병상 수 270개, 직원 수 1200명 규모로 외국인들에게도 인정받는 태국 의료관광의 중심지 중 하나다. 사미티벳을 비롯해 전국에 43개 병원을 보유한 태국 최대 민간병원 그룹인 BDMS는 지난해에만 2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이 나라 10대 기업 안에 이름을 올렸다.

태국 의료관광은 풍부한 관광 자원과 저렴한 물가, 민간 병원의 우수한 서비스 품질이 맞물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췄다. 까다로운 일본인들도 찾아올 만큼 의료진 수준도 높다. 사미티벳 수쿰윗 병원 로비에는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 인증과 미국 의료관광평가협의회(MTQUA)가 꼽은 '세계 10대 병원' 등의 홍보물이 걸려있었다.

이 병원의 주력 분야는 대장암으로, 특히 절개 부위를 줄여 회복 속도를 높이고 감염 등의 위험은 줄이는 '최소침습수술'이 특기다. 병원 설립 때부터 수술을 집도해 온 35년 경력의 외과 전문의 칭이암 빤자삐야쿤(Chingyiam Panjapiyakul)을 따라 최소침습수술이 주로 이뤄진다는 수술실에 들어갔다.

이 병원이 자랑하는 최첨단 수술실은 파란색의 내부 벽면이 강화유리로 덮여있었다. 빤자삐야쿤은 파란색이 안정감 있게 수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설명했다. 강화유리는 흠집이 생기지 않아 기존 시멘트 벽면의 틈새에 생길 수 있는 세균 감염의 위험을 줄인다.

이 푸른 수술실 외벽은 일본 의료기기 기업 올림푸스의 수술실 통합 시스템 '엔도알파(ENDOALPAH)'의 일부다. 환자와 의료진에게 더 편안하고 안전한 수술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개발된 엔도알파의 가장 큰 특징은 '컨트롤패널'이다. 이 시스템은 수술에 필요한 여러 의료기기를 제어하는 것은 물론, 조명, 에어컨 등 수술실 환경까지 하나의 터치스크린으로 조작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의료진의 동선이 줄어들고, 그만큼 빠르고 안전하게 수술을 할 수 있게 된다.

함께 온 스텝이 터치스크린에서 아이콘을 누르자 조명 색까지 파랗게 바뀌었다. 배에 0.5∼1.5㎝ 크기의 작은 구멍을 뚫고 특수 카메라와 기구를 넣어 수술하는 '복강경 수술'을 위한 조명 설정이다. 복강경 수술은 천장에 달린 3개의 모니터를 보며 진행한다. 수술대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위치한 의료진들이 각자 위치에서 동시에 환자의 몸속을 볼 수 있다.

마취 시스템을 제외한 의료기기 대부분은 천장에 설치된 팬던트에 올라가 있었다. 이들을 연결하는 복잡한 선들은 벽과 천장으로 들어가 의료진들이 수술 중에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 벽면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는 비디오 시스템이 내장돼 수술실 외부에서 수술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며 '원격 컨설팅'을 할 수 있다.

다시 '개복 모드'를 터치하자 낮은 조도의 푸른 불빛이 흰색의 환한 조명으로 바뀌었다. 복강경 수술 도중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긴급히 배를 절개해 직접 장기를 다루는 개복 수술로 전환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경우 엔도알파 수술실에선 의료진이 직접 돌아다니며 의료기기 설정값이나 조명 밝기 등을 바꾸지 않아도 한 곳에서 터치스크린으로 대부분 상황을 제어할 수 있다. 특히 집도의나 수술기법별로 설정을 저장해 놓는 '프리셋' 기능을 사용하면 터치 한 번으로 수술 준비를 마칠 수 있다.

빤자삐야쿤은 "이 시스템은 의료진이 수술 전이나 도중에 환경을 조작하는 시간을 줄여준다"며 "환자 몸속을 입체감 있게 볼 수 있는 '3D 복강경' 수술을 선호하는 데, 이런 설정을 미리 저장해 놓고 한 번에 불러올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속·정확·편리'라는 단어로 이 수술실의 가치를 설명하며 "최첨단 시설을 갖춘 덕에 다른 병원에서 모두 포기한 환자도 이곳에서 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태국에서 엔도알파 수술실은 사마티벳을 비롯한 범룽랏, 방콕 병원 등 의료관광을 주도하는 민간 병원을 중심으로 도입돼있다. 한국에는 아직 엔도알파를 도입한 수술실이 없다. 올림푸스한국은 지난 3월 국내에서 엔도알파 사업을 시작해 구축을 원하는 병원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올림푸스한국 관계자는 "신축이나 개보수를 계획하고 있는 병원들을 중심으로 많은 문의가 오고 있다"며 "내년까지 10개 병원 공급이 목표"라고 말했다.

방콕(태국)=남도영기자 namdo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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