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96개 해체 기술 확보
글로벌 시장규모 500조 달해
원전관리 역량 수출발판 마련
글로벌 시장규모 500조 달해
원전관리 역량 수출발판 마련
국내 최초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가 해체 최종 승인을 받아 본격적인 해체 절차에 들어간다. 2015년 영구 정지 결정 이후 10년 만으로, 이번 해체 착수는 국내 원전 해체 산업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해체가 원전 해체 산업을 넘어 부품 수출과 원전 노후화(에이징) 연구 등으로도 확장할 기회라고 평가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6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이날 고리1호기(595메가와트·MWe) 해체계획서를 최종 승인함에 따라 본격적인 해체 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영구 정지 결정 이후 10년 만으로, 국내에서 원전이 해체에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리1호기는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국내 최초의 원전이다. 40년간의 운영을 마친 뒤 2017년 6월 영구정지 됐다. 이후 해체계획서 수립과 규제기관의 기술 검토와 보완 과정을 거쳐 이날 승인을 받게 됐다. 한수원은 이번 승인을 계기로 12년에 걸쳐 고리1호기를 단계적으로 해체하고, 부지를 복원할 방침이다.
해체 작업은 '해체 준비 → 주요 설비 제거 → 방사성폐기물 처리·부지 복원'의 순으로 추진된다. 한수원은 내달부터 터빈 건물 내 설비를 시작으로 차례대로 해체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한수원은 2031년 사용후핵연료를 반출한 뒤 방사성 계통을 해체하고, 2037년 해체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한수원은 방사선 안전관리와 환경보호, 지역과의 소통을 최우선 핵심 원칙으로 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한수원은 원전해체 생태계 조성을 위해 2015년 발표한 '원전해체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방향'에 따라 96개 해체 기술을 확보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사업 과정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역사회와의 신뢰를 기반으로 해체 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이라고 밝혔다.
원전 해체 착수는 한국이 전 주기 관리 역량을 갖춘 원전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란 평가다. 업계는 고리 1호기 해체를 매개로 기술과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세계 원전 해체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국제원자력기구 원자로정보시스템(IAEA PRIS)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 세계 22개국에서 215기의 원전이 영구 정지된 상태다. 이 가운데 해체가 완료된 원자로는 25기다. 업계에 따르면 원전 1기당 해체 비용은 8600억원 수준으로, 전 세계 해체 시장 규모는 5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종일 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운영이 중단된 원전들이 많기 때문에 해체 산업도 앞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로서는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들이 해체 경험을 갖고 있고,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해 이를 적용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리 1호기 해체가 순조롭게 추진되면, 한국은 원전 수주에 이어 해체 시장에서도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고리 1호기 해체 과정에서 나온 부품이 해외 원전의 재가동 수요를 겨냥한 수출 자원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고리 1호기와 유사한 형태의 '바탄 원전' 재가동을 검토 중이지만, 40년 전 기술 기반에 동등성 입증이 어려워 부품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고리 1호기 해체 부품의 수출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오래된 부품들은 폐기할 것이 아니라 재활용하는 방법도 있고, 사업을 추진하는 방향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면서 "폐기 과정에서 단순 파손이 아닌, 부품의 에이징 정도를 실제로 확인하고, 이론적 수명 예측과 비교해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강승구기자 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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