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았던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기본법) 제정에 또 제동이 걸렸다.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탄핵 정국에 다시 뒷전으로 밀렸다. 조속한 국회통과를 통해 AI 규제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0일 국회 본회의에선 윤석열 대통령 등의 비상계엄 관련 내란 혐의 규명을 위한 상설특검 수사요구안이 의결됐다. 이 안건은 전날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통과했는데, 당초 비상계엄 사태 발생 전엔 이 자리에서 AI기본법 심의·의결이 이뤄질 게 유력했다. 이후 상황이 급변하면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안건들은 상정되지도 않았다.
앞서 AI기본법은 19개 법안 병합심사를 거쳐 지난달 26일 과방위를 통과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지 2년여 만에 상임위 문턱을 넘은 것으로, 여야가 합의해 추진한 만큼 이후 법사위와 본회의까지 순조롭게 통과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비상계엄과 탄핵정국 전환으로 여야 대립이 심화함에 따라 그 앞날도 불투명해졌다. 정치 공방이 장기화하면 지난 회기처럼 내내 표류하다 끝날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AI기본법의 연내 통과를 기대했던 AI 업계와 정책 당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가AI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 차원의 AI 거버넌스 마련과, AI 경쟁력을 좌우할 데이터센터 투자가 힘을 받지 못하면 좁게나마 열려 있는 AI 기회의 문이 닫힐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AI 시대에 필요한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 예산을 늘리는 방안을 국회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법안 보완의 기회로 삼자는 의견도 있다. 대표적으로, 고위험AI를 대체하는 개념이자 주요 규제 대상이 될 '고영향AI'에 대한 정의·범위 등에 불확실성이 있다고 지적된다. 고영향AI 관련 수평적·포괄적 규제가 각 분야의 기존 법·제도와 충돌하거나 중복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고영향AI를 보다 넓게 반영하면서 위반사업자 처벌규정을 강화하고 피해자 구제절차를 포함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지금의 법안에 대해서는 좀 더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이성엽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은 "법안의 고영향AI에 대한 정의나 범위 등에 아직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면서 "국회통과가 지연된다면 좀 더 논의할 시간을 가져가는 것도 방법"이라 짚었다.
이와 달리 조속한 제정을 바라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국내 주요 AI기업들이 속한 초거대AI추진협의회를 산하에 둔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관계자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만족하고 처음부터 완벽한 법이란 없다. 하위법령이나 법률개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완·개선해가는 것"이라며 "정부의 AI업계 지원이 법 제정 없이 하기엔 한계에 다다랐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들도 또다시 장기표류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한다. 한 AI스타트업 관계자는 "AI기본법은 산업과 기술 발전에 있어 회색지대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틀이라 생각한다"며 "나중에 정국이 혼란을 벗어나도 그간 쌓인 다른 현안이나 법안들에 또 밀릴까봐 걱정된다. 빠르게 제정돼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AI기본법 제정을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앞으로도 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법 제정으로 빠르게 기본원칙과 기반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세부법령 등을 통해 수정·보완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정기국회 종료 이후에도 임시국회에서 연내 최대한 진척이 이뤄지게 힘쓸 예정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AI기본법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며 "연내 제정을 희망한다"고 말했다.팽동현기자 dhp@dt.co.kr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 9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 등의 내란 혐의를 규명할 상설특검 수사요구안 등을 심사·의결하기 위해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