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도 정부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이 '11년 만의 현직 대통령 불참' 논란으로 얼룩지면서 예산삼사 파행이 우려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2025년 국정 방향 설명과 677조4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해 국회에 협조를 당부하는 시정연설에 직접 나서지 않았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연설문을 대독했다. 2013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시작으로 대통령이 매년 국회 시정연설에 나서온 관례를 올해 불참으로 깬 것이다.
윤 대통령은 "연금·노동·교육·의료 4대 개혁은 국가 생존을 위해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드라이브를 걸고,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 입법에 국회 협조를 주문했지만 '빈손'이 될 공산이 커졌다. "정부 출범 후 2년 반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을 정도로 나라 안팎의 어려움이 컸다"고 야권을 겨눴다.
윤 대통령이 집권 첫해(2022년)에 나선 시정연설엔 더불어민주당이 '헌정사상 첫 제1야당 시정연설 불참'으로 비판을 자초했지만, '불통 논란'을 여권이 배로 돌려받게 됐다.윤 대통령은 20%대마저 붕괴된 국정지지도, 정무개입·사법적 논란을 키워온 김건희 여사 문제, 여당에서 요구한 '국정 전면쇄신' 관련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의회 수장'인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열린 본회의에서 한 총리의 시정연설 대독에 앞서 "불가피한 사유 없이 대통령 시정연설을 마다한 것은 온당치 않다. 국민도 크게 실망하셨을 것"이라며 "대통령의 시정연설 거부는 국민의 권리 침해다. 국정 기조를 전환하라는 국민의 요구 앞에 겸손해달라"고 공개적으로 각을 세웠다.
민주당은 본회의 직전 로텐더홀에서 '윤석열 정권 규탄 퍼포먼스'로 피켓 시위를 벌이며 "국회 연속 불참 윤 대통령을 규탄한다" 등 구호를 외쳤다. 민주당 지도부는 시정연설엔 참석한 뒤 의원총회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22대 국회 개원식에도 오지 않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 있는 일"(박찬대 원내대표)이라고 성토했다.
"국민과 싸우겠다며 구중궁궐에 틀어박힌 대통령의 고집불통에 기가 막히다"는 비난도 이어졌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한 총리의 시정연설 대독 과정에서 박수 갈채가 2~3회에 그치는 등 저조한 호응을 보였단 후문이다. 윤 대통령의 당선인 대변인을 지낸 배현진 의원이 "대통령께선 오늘 시정연설에 나오셔야 했다"고 고언에 나섰다.
배 의원은 "국회 개원식에 이어 두번째로 국회를 패싱하는 모습"이라며 "거듭 '가면 안 되는 길만 고르는' 이해할 수 없는 정무판단과 그를 설득하지 못하는 무력한 당의 모습"이라고 개탄했다.
한동훈 대표는 최근 물밑으로 윤 대통령에게 "야당과의 관계 문제가 아니라,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시정연설 참석을 설득했지만 불발됐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독단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졌다는 점을 아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기조의 내용과 방식이 독단적으로 보인 부분이 있었는지 점검·시정해야 한다"며 "정부 임기는 아직 2년 반 남았다. 전반전도 끝나지 않았다. 경청하고 심기일전하면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 불참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과 '명태균 의혹'에 대한 대통령의 해명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었다.<연합뉴스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