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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균 칼럼] 4000만명이 300명을 이길 수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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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균 국장대우 금융부동산부장
[김화균 칼럼] 4000만명이 300명을 이길 수 없는 나라
보험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또다시 국회 문턱에 걸렸다. 개정안의 핵심은 실손의료보험의 전산 청구를 허용하자는 것. 지금은 병원에서 진료비 내역서를 일일이 종이로 발급받아 보험사에 내야 한다. 이런 불편함을 줄이자는 취지다. 때문에 대표적인 민생법안으로 꼽힌다.

2021년 소비자단체 조사결과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 47.2%가 이 번거로움 탓에 보험을 청구하지 않았다. 미청구 보험금은 연평균 2760억원에 달한다.

법안이 발의된 것은 2009년이다. 14년이 지났다.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윤석열·이재명 후보 모두 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래서 법 개정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때보다 높았다. 지난 6월15일에는 소관인 국회 정무위원회라는 1차 관문을 넘었다.

'왕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은 더 높았다.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지난 13일 격론을 벌였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18일 법안소위에서 처리키로 했다. 그래도 통과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컸다.

하지만 단식 중이던 이재명 대표가 병원에 실려가고 야당이 의사일정을 보이콧하면서 법안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검찰의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야당이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안으로 맞서는 극한 대치 상황이 빚어지면서 법안 통과 가능성이 낮아졌다. 여당이 단독 처리하려해도 의결정족수인 전체 위원 과반수 요건을 맞추지 못한다.

이 법안은 의료계가 강력 반대하고 있다. 환자정보유출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의사가 아닌 이에게 진료정보를 열람하고 제공하는 것을 제한하는 현행 의료법과의 충돌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자료 제공과정에서 중개 역할을 하게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속내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항목의 진료비를 심평원이 들여다보는 것이 영 불편하기 때문이다.

심평원이 비급여 항목을 통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 법사위 수석 전문위원실도 정합성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안은 과거 타다금지법 논란을 연상케한다. 2018년 10월, 한꺼번에 11명이 이용할 수 있는 '타다 베이직 서비스'가 나왔다. 승객이 스마트폰 앱으로 차량을 호출하면, 운전기사가 딸린 승합차가 빠르게 달려왔다. 택시 요금보다 비쌌지만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택시업계는 기득권 지키기에 나섰다, '불법 콜택시 영업'이라며 타다 경영진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회는 2020년 3월 여야가 합심해 타다 금지법을 만들었다. 법원 1심 재판부에서 '타다는 합법'이라는 판결이 먼저 나왔다. 21대 총선을 한달 앞둔 정치권에는 소귀에 경읽기였다.

대법원은 지난 6월1일 타다의 무죄를 최종 확정했다. 타다의 모 기업인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혁신은 죄가 없음이 대법원에서 확인됐다. 혁신이 두려운 기득권의 편에서 정치인들은 법을 바꿔서 혁신을 주저 앉혔다"고 일갈했다.

주저앉은 것은 혁신만이 아니다. 소비자의 편익도 함께 무너졌다. 좌절된 혁신은 택시 승차난을 거쳐 요금 인상 청구서로 국민에게 돌아왔다. 대폭 오른 요금에 택시기사들은 손님을 찾지 못해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누가 배를 불렸는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모두의 잘못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면 모두의 불편은 누구의 불편도 아닌걸까. 보험업법 개정안이 딱 그 상황이다. 이 법은 이제 연내 개정을 자신할 수 없게 됐다. 정치권도 서두르지 않는 분위기다. 14년을 참았는데, 15년은 못견디겠느냐는 식이다. 소비자단체들만 "오로지 소비자 편익제고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봐 달라"고 읍소하고 있다.

실손보험 가입자는 3997만명이다. 그래서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린다. 국회의원은 300명이다. 이쯤되면 100만 페르시아 대군에 맞선 '영화 300' 속 스파르타 전사들보다 훨씬 용맹한 역사상 최강 대군으로 꼽힐 만하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하며 (하략)." 2020년 7월 16일 제21대 국회 개원식. 의원 300명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국회의원 선서를 했다. 대국민 약속이다. 이들이 자필 서명한 선서문은 국회 사무처에 보관돼 있다. 현재 의원들의 임기는 내년 5월 30일 끝난다. 8개월 남짓 남았다. 지금이라도 약속을 지켜주기 바란다.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

김화균 국장대우 금융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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