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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DT인] 보컬·사업가·국회의원 이력 `村사람`… "계란에 생산날짜 제가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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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선 희귀한 축산학과 출신… 수입식품 원산지 이력 추적법안 주도
건대 유명밴드 '옥슨83'서 하드락 공연 활동 "아직도 노래하고 싶어요"
"연금·국가부채 등 미래세대에 미안"… 정치인으로 나라걱정 잊지않아
[오늘의 DT인] 보컬·사업가·국회의원 이력 `村사람`… "계란에 생산날짜 제가 만들었죠"
김명연 전 국민의힘 의원. 김 전 의원 측 제공.



지역 토박이로 농촌 지키는 김명연 前의원

국회에선 희귀한 축산학과 출신 국회의원. 그래서 계란에 생산일자를 새기도록 하고, 수입식품의 원산지를 추적해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진심'이었다. 한 때는 가수 홍서범이 만들어 유명해진 대학교 밴드 '옥슨'의 전 보컬이었던 '놀 줄 아는' 국회의원으로 통했다.

최근 안산시 단원구에서 만난 김명연 전 의원은 단순히 전직 국회의원으로 소개하기에는 특이한 이력이 많다. 지역 토박이였던 그는 농대가 아닌 축산대를 나왔다. 전공을 살려 인천의 사료 회사에서 일했으나 이내 사업가로 변신했고, 시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의원이 돼선 주요당직을 맡았다. 김 전의원은 스스로 "엄청난 관복을 타고났다"고 말한다.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건국대학교 축산학과를 다닌 것이다. 그가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국회에 축산학과 졸업은 이학재 전 의원(이 전 의원은 서울대 농대 축산과 출신)과 나 두 명"이라며 "이 의원은 이쪽 분야에 대해 관심이 많지는 않았고 또 관련 상임위원회가 아니었던 데 반해 나는 보건복지위원회만 8년을 하다 보니 사정이 달랐다"고 했다. 이어 "국회에서 보면 축산이 생산까지는 농해수위인데, 또 도축장에서부터 -가공-유통-식탁까지는 식약처로 나는 보건복지위원으로 가공-유통에서 주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축산학과 출신이 워낙 없다보니 그가 목소리를 많이 내게 됐다.

의정활동중 축산 관련해 가장 대표적인 일은 난각(계란)에 생산일자와 생산자를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세계최초 시행에 당시 양계농가에서는 반발이 심했고, 정부도 처음 하는 것이다보니 서투른 면이 있었다. 이 때 김 전 의원이 나서 "여기 양계장 직접 가본 사람이 있느냐"며 현실적인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식약처도 이를 근거로 강하게 추진해 지금은 대부분 계란에 생산일자가 적혀있다. 그는 "닭의 특성상 계란은 알을 낳는 곳과 배설을 하는 곳의 통로가 같고 난각이 되면 큐티클이 씌워져서 나온다. 공기는 통하는데 세균은 침투를 못 하게 돼 있는 것"이라면서도 "위생이 제일 중요한 것이니까, 국산 축산 생산물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도 할 수 있으면 세척하고 생산일자를 계란에 새겨서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김 전 의원은 "농가들은 피곤하지만 소비자들의 신뢰가 떨어지면 폐기하는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면서 "자신 있게, 월등한 지위에서 판매하고 신뢰받는 인식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발의해 통과 시킨 법안에는 '수입식품안전관리 특별법안'도 있다. 어느 나라든 대한민국이 식품을 수입한다면, 원산지를 추적해 이력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그는 "수입산 식품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원산지·생산지를 추적해 공장이 됐든 농장이 됐든 제조공정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야 하지만 당시엔 길이 열려 있지 않았다"면서 "예를 들어 대장균이 검출됐다면 도축과정에서 나온 것인지, 키우는 과정에서 나온 것인지, 가공 공장에서 나온 것인지 우리가 요구하면 그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공개하게 강제하고, 따르지 않으면 칼질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하는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축산자급률도 떨어지는데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수입식품이 안전해지지 않겠나"라면서 "무역균형 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고 우리 것만 (검사)한다고 하면 수출 못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도시 면적이 넓어지면서 수도권의 농협·축협 등 협동조합원이 부족해져 해산되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지역농협조합 설립 기준 완화법'이나 동물용의약품 및 의약외품 제조관리 업무에 수의사를 포함하는 법안도 추진했다. 김 전 의원은 "생활입법 위주로 그런 주제만 잡아와서 (보좌) 직원들과 같이 공부하고 했는데, 애들이 참 잘했지. 당시를 생각하면 고맙다"고 술회했다.

[오늘의 DT인] 보컬·사업가·국회의원 이력 `村사람`… "계란에 생산날짜 제가 만들었죠"
김명연 전 국민의힘 의원. 김 전 의원 측 제공.



"농촌이 좋아서"축산학과를 택했다는 그는 "집안이 대대로 농사를 지었고 지금도 농사를 짓는다. 채소나 식량은 자급자족하자는 주의이고 그런 데서 일하는 게 지금도 좋다"면서 "그런 식으로 농촌에서 자라온 환경이 좋아서 축산대학을 갔던 것 같다. 시골출신이라는게 작용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동생도 같은 학교 같은 과여서, 아버지는 흙을 묻히지 않게 하려고 대학을 보내놨더니 축산학과를 갔다며 드러누우셨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대학에서는 밴드에 가입해 노래를 한 자유로운 영혼의 학생이었다. 김 전 의원의 목소리가 탁한 것도 당시 '하드락' 장르의 음악을 하면서 성대결절이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건국대학교를 입학해서 옥슨 83에 입회했다. 1학년 때 뽑혀서 2학년 때 임기를 끝내 물려주는 것인데, 나는 82학번이니까 83년에 활동했으니 옥슨 83이고 가수 홍서범이 옥슨 80"이라며 "가요제에서 특별한 수상경력이 없어서 연예계로 안 나가고, 대학축제·행사에 많이 불려가서 노래를 했는데, 외탁을 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도 아직도 노래하고 싶고 그렇다"고 했다.

그는 정치인으로 '나라 걱정'도 했다. 김 전 의원은 2012년 총선에서 당선됐으나 2014년 세월호 사태가 터지면서 지역구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김 전 의원도 진도에 224일간 머무르며 봉고차나 텐트에서 잠을 자는 등 지역구 주민들의 민심과 함께하며 재선에 성공했지만 이후 탄핵정국이 전개되면서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지지율이 한 자릿수까지 추락했다. 김 전 의원은 당시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 체제 아래 수석대변인을 했고 대선과 홍준표 대표체제에서는 전략부총장, 황교안 대표 체제에서는 비서실장까지 맡았다.

그는 "나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축산학과였 보니)특정 분야의 전공을 깊이 있게 판 사람 만큼 입법적으로 국가에 기여를 하지는 못했지만, 국가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 당을 지키며 국가가 극한 좌경화로 가는 것을 막았다는 보람이 있다"면서 "비록 대통령 후보도 졌고 지방선거도 졌고 21대 총선도 졌지만 보수정당을 유지해 윤석열 정부의 탄생과 2022년 지방선거의 성공, 그리고 2024년 총선을 대비할 수 있는 뿌리를 지켰다는 것만 해도 국가를 위해 다행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정치인으로 성장보다는 이 시대의 책임을 안고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금 시대는 국가가 경제든 정치든 사회주의화가 되지 않고 청년들이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국민들이 대통령을 뽑고 대통령을 탄핵해도 평화적으로 정권이 이양되는 나라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거부하면서 혼란에 빠지지 않았나"라면서 "성숙한 나라가 된 만큼 이제는 투표 문화가 (이념에 따라) 정해져 있는 투표가 아닌 정책과 정치, 그리고 사람의 도덕과 양심 등을 복합적으로 봐서 판단하고 평가하는 선거가 될 때 진짜 우리나라는 최고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의원은 "우리는 나라를 일궈놓은 부모세대에게 받아 그걸 망가뜨리고 있어 미래세대에게 미안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며 "당장 국민연금과 국가 부채를 생각해보라. 정치인으로는 잊혀져도 좋지만 그런 부분을 사회에 공론화시키고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재섭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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