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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DT인] 공직 30년 국가 R&D전략 기획… "탄소중립 어려움 겪는 기업 돕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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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사 대부분 중소기업인데
디지털전환·AI 준비여력 부족
기업 R&D 위기는 곧 국가위기
[오늘의 DT인] 공직 30년 국가 R&D전략 기획… "탄소중립 어려움 겪는 기업 돕고파"
고서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상임부회장. 박동욱기자 fufus@



고서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상임부회장

"탄소중립은 기업 혼자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아무리 자금과 기술이 풍부해도 협력사들이 함께 준비하지 않으면 불가능하죠. 탄소중립 실행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경험과 지혜를 나누도록 돕겠습니다."

고서곤(57·사진) 15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산기협) 상임부회장은 "탄소감축을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기업들이 너무 많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30년 가까이 과학기술 정책과 국가 R&D(연구개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온 고 부회장은 국가R&D 컨트롤타워 조직인 과학기술혁신본부에서 과학기술혁신조정관을 역임하다 지난 2월말 산업현장과 가까운 산기협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대 사회교육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37회로 1994년 공직에 입문한 그는 "대학에서 심리학과 과학사 수업을 재미 있게 듣고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했다.

당시에는 칠판에 부처별로 뽑는 인원 수를 적어놓고 고시 성적순으로 앞으로 나가서 원하는 부처를 선택해 하나씩 지워 나갔다. 과학기술부를 선택한 당시 판단이 이후 삶을 결정지었다. 과학기술 분야 주요 보직을 거치며 기초·원천기술, 소재부품장비, 우주, 원자력, 바이오 등 R&D 전략을 기획하고 추진했다.

산기협은 기업 R&D 활동 지원, 기업연구소 설립·운영 지원, 산업기술 지원정책 개발과 제도 개선, 기업 및 산업기술인 간 네트워크 구축 등의 역할을 하는 단체다. 올해 1분기를 기점으로 국내 기업 R&D 조직은 8만 개를 돌파했다. 기업 연구원은 45만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총 R&D 투자는 2021년 100조원을 돌파했는데 그중 약 78조가 기업 투자였다. 과거 정부가 주도하던 국가 R&D 투자의 무게중심이 기업으로 옮겨간 지는 이미 오래 됐다. 기술혁신가와 혁신기업들이 모인 산기협의 역할이 커지는 이유다.

고 부회장은 "정부는 5년, 10년을 내다보고 R&D에 투자하는데 기업들은 호흡이 다르다. 경기가 안 좋으니 더 절박하다"면서 "특히 회원사 대부분이 중소기업인데, 이들은 요즘 화두인 탄소중립, DT(디지털전환). AI(인공지능)에 준비할 여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최근 기업들은 다중위기 상황에 놓였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데다 탄소중립과 DT도 해야 한다.

고 부회장은 "가장 우려되는 것은 기업들의 R&D 투자 위축이다. 특히 기업 R&D의 60%를 차지하는 대기업의 투자 증가율 둔화가 두드러진다"면서 "2021년 대기업 R&D 투자 증가율은 8.6%로, EU가 집계한 세계 투자 상위 2500대 기업의 14.8%에 비해 크게 낮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추세는 곧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 R&D 위기는 곧 국가 위기"라고 했다.

정부 R&D 중 실패와 성공이 확실하게 판가름나고 결과에 따라 미래가 바로 갈린다는 점에서 기업 R&D와 닮은 영역이 우주개발이다. 고 부회장이 특히 애착을 가지는 분야다.


그는 2011~2012년 우주기술과장으로 재직하면서 누리호 사업계획 수립을 맡았다. 누리호의 성공은 나로호라는 또다른 우주발사체 사업의 밑거름 위에서 가능했지만 당시 나로호 1·2차 발사가 연거푸 실패하면서 과기정통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뭇매를 맞았다. 항우연 원장이 교체되고 민간 전문가가 사업을 총괄하는 사업단 구조가 출범했다. 우주개발 관련 중장기계획도 모두 정비했다. 연구원들과 함께 실패의 아픔을 맛본 고 부회장은 "대부분의 정부 R&D는 성공과 실패가 바로 가려지지 않는데 우주는 다르다. 또 정해진 목표를 갖고 오랜 기간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면서 "그 과정에서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모두의 목표가 같은 만큼 끈끈한 정이 생긴다. 대화하고 함께 맥을 잡아가며 목표를 향해 달리는 과정이 뜻깊었다"고 밝혔다. 누리호 사업 청사진을 그린 데 이어 작년 누리호 2차 발사 당시에는 연구개발정책실장으로 그 과정을 총괄했다.
그는 "누리호 사업에 참여한 연구원과 기업들이 대단하다. 기업 300곳 이상이 참여하고 부품은 37만개에 달했는데 자주 쏘는 것도 아니고 10년에 프로젝트 하나가 있는데 이를 해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욕먹을 각오를 하면서 이뤄낸 대단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누리호 발사 성공 뒤에는 중소기업들의 땀이 있었다. 고 부회장은 "37만개 부품 대부분을 중소기업이 생산했다. 오랜 기간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첨단 우주발사체 제작에 참여한 것"이라면서 "나로호를 발사한 후 오래 되다 보니 당시 참여한 많은 기업이 문을 닫거나 업종전환을 해서 누리호에서는 부품 공급망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 한국이 잘 나가는 산업분야도 기초가 무너지면 안 그러리란 보장이 없다. 철강·화학·기계 등 전통산업부터 첨단산업까지 기술혁신에 대해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특히 탄소중립과 DT(디지털전환)가 중요한 이슈다. 둘다 몇몇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달 산기협이 조사한 결과 63%의 기업이 아직 탄소중립의 걸음마 단계로, 2021년, 2022년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월 실시한 'DT 실태조사'에서는 40%의 기업이 아직 DT를 시작도 못 했다고 응답했다.

산기협은 산업계의 공동 대응을 위해 2021년 디지털 전환 기업 협의체인 '코리아 DT 이니셔티브(KoDTi)'를 발족하고, 지난해 민·관·학·연이 참여하는 '탄소중립 K-테크포럼'도 구성했다. KoDTi는 디지털 기업들의 자발적인 모임으로, 대·중·소기업의 협업 네트워크를 구성해 앞선 기업이 후발 기업들에 DT 노하우를 제공하고 관련 정보를 교환한다. 탄소중립 K-테크포럼은 탄소중립 이슈를 논의하는 오피니언 리더그룹이다.

기업 R&D 활동을 지원하고 기업 연구자들의 사기를 높이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공동 발의한 '기업의 연구개발활동 관리 및 지원 법률안' 통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 법안은 여러 법령과 조례에 흩어져 있던 기업 R&D 관련 조항을 정리한 것으로, 기업연구소를 지원하는 법적 근거가 명확해지게 된다. 기업 연구원에 대한 정부 포상을 확대하고 성과와 공로를 조명하는 '기술개발인의 날'을 국가 기념일로 제정하는 내용도 담겼다.

기업 R&D 조세지원제도 개선과 인력양성도 주목하는 이슈다. 고 부회장은 "지난 4월 조사결과 93%의 기업은 조세지원이 R&D에 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그런데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조세지원을 늘리는 반면 우리나라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기업 R&D 세액공제율을 미국, 일본 등 주요 국 수준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연구인력 부족을 호소한다. 특히 데이터, AI, 반도체 등 첨단 분야는 더 심각하다. 중소기업들의 현실은 더 열악하다. 중소기업 연구조직 중 박사급 연구원을 보유한 기업은 10%도 안 된다.

고 부회장은 "젊은층이 지방과 3D 직종을 기피하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력규모 자체가 문제다. 해외 인재 확보를 위해 전향적인 이민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이 국내에서 석·박사를 따고도 졸업하면 바로 짐을 싸야 하는 비자제도부터 바꿔야 한다. 그들이 직업을 찾을 시간을 줘야 한다"면서 "복잡한 비자 발급 조건과 절차 개선, 정주여건 개선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사진=박동욱기자 fuf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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