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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반도체와 경제영토 대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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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특허청장
[기고] 반도체와 경제영토 대국, 대한민국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세계 3위의 영토와 석유 산유량 1위의 강대국, 미국 역사는 '개척정신'으로 대변된다. 광활한 평야에서 요란한 나팔소리와 수백 마리의 말과 마차가 질주하는 장면이 압권인 영화 '파 앤드 어웨이'(1992)는 미개척지의 땅을 가장 먼저 도착해 말뚝을 박은 사람이 차지하는 '랜드 러시(Land Rush)' 제도를 잘 보여준다.

랜드 러시는 경제적 벌판에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라는 말뚝을 먼저 박는 사람에게 그 독점권을 보장해 주는 특허제도와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 서부개척 시대가 아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새로운 기술로 말뚝을 박아 특허라는 광활한 경제적 영토를 선점할 수 있는 것이다. 특허로 대변되는 무형자산은 이미 부동산 등의 유형자산의 가치를 뛰어 넘었다. 미국 S&P 500 기업의 시가총액 중 무형자산의 비율은 1975년 17%에 불과하였으나 2005년 80%, 2020년 90%에 이르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창의적 아이디어가 산업의 원천이 되는 소프트 파워 시대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안보 여건은 여러 도전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경쟁 우위가 있는 새로운 기술을 보호해야 우리 기업의 글로벌 초격차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산업의 쌀로 불리며 단일 수출품목으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은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이자, 다른 산업의 기반이 되는 핵심이다. 그렇기에 반도체 기술은 특허권 등 지식재산으로 확실히 보호되어야 한다.

지난 4월 특허청은 주요국 최초로 반도체 전담 국단위 심사조직인 '반도체심사추진단'을 출범시켰다.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주요국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우리 기업의 핵심 반도체 기술에 대한 선제적 보호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기존에는 특허심사관들이 반도체의 공정, 소재, 장비 등 기술분야별로 분산 배치되어 있었고, 3나노 이하 첨단 공정기술들의 심사 인력 배치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반도체심사추진단이 설치돼 167명의 반도체 전담 특허심사관이 함께 심사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됨으로써 출원기술을 더욱 정확하게 심사해 빠르게 권리로 확정해줄 수 있게 되었다.


지난 3월 채용된 반도체 30명의 민간 전문가 출신 특허심사관도 반도체 심사에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 특허심사관과의 협의를 통해 최근 특허기술 동향을 심사 과정에 반영시킬 수 있어 심사품질의 향상과 함께 강한 특허창출이 기대된다. 그리고 이들 특허심사관들은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퇴직인력을 특허심사관으로 활용하는 점에서 해외 이직에 따른 기술유출을 사전에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경제적 벌판에 새로운 기술이라고 박은 말뚝의 주인과 그 경계는 특허심사관이 판정한다. 우리 기업이 처음으로 말뚝을 박은 핵심 반도체 기술은 글로벌 초격차 우위를 지속할 수 있도록 신속한 권리화를 지원해야 한다. 반면, 과도하게 넓게 말뚝을 박은 경쟁 기업의 기술에 대해서는 그 경계를 적정하게 조정해 줄 필요가 있다. 추진단 출범 이후 산업계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관계자들은 전문심사관 영입으로 기술유출을 막는 효과를 거둘 수 있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양질의 특허가 등록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반도체심사추진단과 특허심사관의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다.

1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증기기관을 발명한 영국이, 2차·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전기에너지와 정보화기술을 기반으로 미국이 세계경제를 지배했다. 세계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반도체를 둘러싸고 대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반도체심사추진단'을 통해 특허라는 경제적 영토 대국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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