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석병훈 칼럼] 정부 가격통제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http://contents.dt.co.kr/images/202303/2023030302102669660002[1].jpg "[석병훈 칼럼] 정부 가격통제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러자 정부는 먼저 전기·가스요금 인상 속도를 늦추고, 상수도, 철도 등 공공요금을 상반기 동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통신, 주류, 식품산업 등 기업들을 압박해 제품가격 인상을 보류시키고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고통받는 서민들을 위해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 통제는 자유 시장경제에서 반드시 다음과 같은 부작용을 유발한다.
첫째, 기업들이 제품 공급량을 줄이도록 함으로써 향후 제품가격 폭등을 초래할 수 있다. 지난해 기업들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원료와 중간재의 가격과 노동자들의 인건비가 크게 상승했다. 이렇게 오른 생산비용을 반영해 제품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결국 기업은 손실을 부담하게 된다. 정부의 압박으로 가격을 인상하지 못하게 되면 기업은 차라리 생산량을 줄여 손실을 최소화하는 결정을 한다. 이 경우 시장에서는 제품의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져 향후 정부의 가격 통제가 해제되면 제품가격이 폭등하게 된다. 신축아파트의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의도로 시행한 분양가상한제가 신축아파트 공급량을 줄여서 오히려 부동산 가격 폭등을 초래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산업의 특성 때문에 정부의 가격 통제에 생산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못한 기업들은 가격을 동결한 기간 더 큰 손실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정부가 나중에 가격 인상을 허용하는 순간 기업들은 그동안 누적된 이윤 감소와 손실까지 반영해서 가격을 급격히 올릴 가능성이 크다.
둘째, 소비자들은 같은 가격을 지불하고 더 적은 양 또는 질의 제품을 구입하게 된다. 정부의 압박으로 동결된 가격하에서 기업은 생산량을 유지하는 대신 제품의 크기 또는 양을 줄이거나 질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소위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 생기는 것이다. 최근 많은 소비자들이 과자, 빵 등 간식거리를 구매했을 때 가격은 동일하지만 포장을 개봉하면 내용물의 크기와 숫자가 크게 줄어서 실망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같은 가격을 지불하고, 더 적은 양 또는 질의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들에게는 실질적으로 가격이 인상된 것이다.
셋째, 일부 품목들에 대한 가격 통제는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을 왜곡시킨다. . 정부는 서민 생활과 밀접한 식품, 주류, 가스, 전기 등의 품목 위주로 가격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특정 제품만 가격이 동결되면 소비자들은 그 제품이 상대적으로 싸다고 느낀다. 이렇게 재화들의 가격이 다르게 변화할 때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비싸진 재화의 소비를 줄이고, 싸진 재화의 소비를 늘리는 경향이 있다. 즉, 인플레이션으로 가격이 상승하는 다른 재화들에 대한 소비는 줄어들지만, 정부가 가격을 동결시킨 제품들에 대한 소비는 늘어나게 된다.
정부가 가스요금과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한 채 아무리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벌여도 가스와 전기 소비량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이 그 예이다.
정부의 기업 압박을 통한 가격 인상 억제가 당장은 물가를 안정시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동안 기업의 손실이 발생하고, 가격이 동결된 제품의 공급은 감소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기업들의 생산비용이 상승해 가격 인상 요인이 있으므로 정부가 영원히 가격을 동결시킬 수는 없다.
향후 가격 통제가 해제되면 기업들은 누적된 손실까지 반영해서 큰 폭으로 가격을 올릴 것이다. 이는 소비자물가 상승을 유발해서 결국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늦추게 만든다. 즉, 소비자들과 기업들 모두 고물가와 고금리의 고통을 겪는 기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정부는 실패가 예견된 가격 통제를 멈추고, 불필요한 재정지출을 줄여 인플레이션에 대응해야 한다. 보편적인 재정지출은 최소화하고, 인플레이션을 버티기 어려운 취약계층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자유 시장경제 복원을 공언했던 초심을 잃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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