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 정치정책부 기자
![[현장칼럼] 상실의 시대](http://contents.dt.co.kr/images/202302/2023022102102269038001[1].jpg "[현장칼럼] 상실의 시대")
염치의 상실. 조민. 조국 전 장관의 딸이다. 조민 씨는 지난 6일 모 유튜브 방송에서 얼굴을 공개한 인터뷰를 통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이 아니라 조민으로 당당하게 숨지 않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는 지난 3일 조 전 장관의 재판 선고일 날 조민 씨가 직접 스튜디오를 찾아 녹음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어머니(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수감을 비롯한 일련의 일들에 대해 "아버지가 장관직을 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조 전 장관이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만 마치고 학계로 돌아갔다면, 조 씨는 진보적 지식인의 딸로서 안온한 삶을 영위했을 것이다. 어쩌면 고려대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이 취소돼 소송을 벌이는 일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조 씨는 '입시 비리' 논란에 관한 핵심 의혹이었던 '가짜 표창장' 문제에 관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조 씨의 허위 스펙은 재판에서 모두 확인됐다. 이른바 '위조 표창장'이 입시에 결정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간의 일들 자체로도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일례로 모 대학 의과학연구소에서 2주 정도 인턴을 한 학생이 SCI급 의학 논문에 1저자로 등재되고, 이를 대학입시에 활용하는 일이 흔한 상황인가. 백번 양보해서 '인플루언서'로 살겠다는 태도는 존중한다. 그렇지만 그 동안의 논란에 대한 반성과 사과부터 하는 게 상식이다.
상식의 상실.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자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다. 곽 전 의원은 최근 '아들 퇴직금 50억원'에 대해 재판부로부터 뇌물죄 무죄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1990년생인 곽 전 의원 아들은 한 대학 디자인학과를 나와 대장동 개발업체에서 6년간만 근무했다. 이런 경력으로 대기업에서 수십년 일한 임원도 받기 힘든 거액의 퇴직금을 받았다.
곽 전 의원이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내고 대장동 업자인 김만배 씨와 친한 대학동창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김 씨가 곽 전 의원의 아들을 통해 곽 의원 측에 돈을 건네겠다고 말하는 음성이 담긴 녹취 파일도 공개됐다. 2011년 '운송수입금 800원으로 자판기 커피 2잔을 사먹은 버스기사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선고한 판결과도 대비된다.
'사회적 신분'에 따라 법리 적용과 양형의 편차는 커지는 것인가. "법은 만인이 아니라 만명에게만 평등하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무겁게 다가온다. 검찰은 지난 13일 곽 전 의원의 판결이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항소장을 제출했고, 곽 전 의원 아들의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서도 추가로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를 통해 상실된 상식을 찾길 바란다.
신뢰의 상실. 이재명. 제1야당 대표이자 전 대선 후보이다. 경기도지사와 성남시장의 길도 걸었다. 이 대표는 지난 2020년 도지사 시절 불체포 특권 뒤에 숨은 자당 의원을 앞장서서 비판했다. 선거 회계부정 혐의를 받은 정전순 전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오자, 이 대표는 "불체포특권은 공익을 위한 것"이라며 "법 앞에 평등한 나라에서 수사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2년 뒤 '불체포 특권 폐지'는 그의 대선 공약이 됐다. 민주당 선대위 정책본부가 지난해 2월 대선을 앞두고 펴낸 공약집 '정치개혁' 항목에는 특정한 중대범죄 혐의의 경우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지금의 이 대표는 다르다. 그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으로 체포동의안에 대한 표결을 앞두게 되자 '적절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오히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후 지역위원장, 당원까지 총동원회 국회에서 대규모 규탄대회를 여는 등 방탄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자신이 했던 말을 이 같이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면 누가 이 대표를 신뢰할까. 엄연히 따지면 지금 이 대표에게 적용되는 혐의는 민주당과 상관없는 일이다. 오히려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당 전체의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것을 모르는가. 대중에게 신뢰도 잃고 지지율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이라도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고 스스로 영장실질심사에 나가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게 해답일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한국 정치권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지고 있다. 국민의 의식수준은 높아지는 데 정치는 퇴행하고 있다. 상실의 시대는 언제 종말을 고할 수 있을까.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