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장영수 칼럼] 항일, 반일, 극일](http://contents.dt.co.kr/images/202210/2022102502102269660001[1].jpg "[장영수 칼럼] 항일, 반일, 극일")
이러한 역사적 경험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국민들 사이에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이러한 감정을 정제하고, 발전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일제강점기에는 항일(抗日)로, 해방 이후에 반일(反日)로 나타났던 일본과의 관계가 이제는 일본을 극복하는 극일(克日)로 이어져야 한다.
일제강점기 35년을 통해 우리 민족의 항일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무장 독립투쟁과 한반도 내외의 수많은 민족지도자들이 이끌었던 민족계몽·민족자강 운동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1919년 3·1운동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으며, 백산상회를 비롯하여 널리 알려지지 않은 노력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비록 친일도 일부 있었으나, 그것이 우리 민족의 독립 열망을 가릴 수는 없었다. 오히려 친일의 껍데기 속에 독립의 열망을 키운 경우도 많다. 최근 일본과의 교류·협력 자체를 친일로 몰아세우는 극단적 견해들도 나오는데, 그러면 3·1운동 직전 일본에서 2·8독립선언을 했던 것도, 일본 유학 중 감옥 안에서 죽어갔던 윤동주도 친일이란 말인가?
해방 직후 반일 감정은 극에 달했고, 모든 교류가 단절됨으로 인해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화가 이중섭처럼 개인적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해방 직후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나아가 6·25전쟁 이후의 폐허 속에서 나라를 재건하면서 외국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일본과의 수교 및 청구권 회담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가 컸던 것도 이러한 반일감정 때문이었다.
그러면 당시의 국민 여론에 따라 일본과의 교류·협력을 포기하고 일본에 대한 쇄국정책을 택했다면 과연 우리가 지금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한 포항제철, 자동차산업, 반도체산업 등은 일본의 기술을 들여오면서 시작된 것이다. 일본을 배워서, 일본과 대등해지거나, 일본을 넘어서는 단계로 발전해온 것이다.
이제 우리가 일본을 대하는 태도는 항일이나 반일이 아니라 극일이 되어야 한다.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에서 배워야 할 부분이 있으면 열심히 배워야 한다. 친일과 반일의 프레임을 뛰어넘어야 극일이 가능한 것이다.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했던 독일이 프랑스를 배워서 극복했고, 나치에 점령당했던 프랑스가 독일과의 우호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반일 감정을 극복하기 어려운 것처럼 일본 내의 혐한 감정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이렇게 일본에서 우리를 무시하고 얕잡아 보았던 것이 우리가 일본에서 배워서 일본을 넘어설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의 하나라는 점은 생각해 보았는가? 굴욕적인 '적과의 동침'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를 견디지 못하면 이기지 못한다.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냉정한 지피지기(知彼知己)가 필수다. 일본은 무조건 싫다는 반일 감정에 휩싸여 일본을 적대할 경우의 득과 실을 냉정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감정에 충실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한일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일본을 평가절하하기보다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전제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일본에 대한 진정한 승리는 우리가 일본을 외면하고 교류·협력을 축소·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넘어서 더욱 더욱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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