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네 줄의 현으로만 느끼는 바흐… 세 번째 계절 때맞게 무르익네

시벨리우스·파가니니 콩쿠르 우승후 주목받아
지휘·음악감독도 하며 인재양성 아카데미 운영
'전곡 무반주'로 인천·대구서 국내 첫 독주회 앞둬
작품도 악기도 1700년대 '바로크 시대'의 산물
韓 작곡가 협주곡으로 내년엔 통영서 국제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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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0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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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 네 줄의 현으로만 느끼는 바흐… 세 번째 계절 때맞게 무르익네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 Sony Music Entertainment



월간객석과 함께하는 문화마당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아트센터인천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이틀씩, 총 4일에 걸쳐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선보인다.

카바코스는 올해 2월 '6개의 독주곡'을 제목으로 같은 프로그램을 음반(Sony)에 담아 발매한 바 있다. 관객 앞에 바흐의 무반주 전곡을 선보이는 건 25년 만이란다. 동연배 음악가들과 비교하면 이번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 녹음과 연주가 늦은감이 있지만, 그는 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레오니다스 카바코스(1967~)가 한국에서 독주회를 갖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2016년 TIMF앙상블, 2018년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2020년 서울시향 등과 협연을 위해 꾸준히 내한했다. 그래서 카바코스를 떠올리면, 홀로 선 무대보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선 모습이 먼저 그려진다.

그리스 국립음악원에서 스텔리오스 카판타리스를 사사한 카바코스는 1984년 아테네 페스티벌로 데뷔했다. 1985년 최연소의 나이로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1988년 파가니니 콩쿠르와 나움부르크 콩쿠르에서도 우승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지휘자로도 꾸준히 무대에 서고 있다. 로저 노링턴의 뒤를 이어 잘츠부르크 카메라타의 음악감독을 역임했고,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이탈리아 라 스칼라 필하모닉·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 등을 이끌었다.

내한을 앞둔 카바코스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이번 내한을 앞두고 그간 연구해온 음악과 삶에 대해 해줄 말이 많아 보였다.

[객석] 네 줄의 현으로만 느끼는 바흐… 세 번째 계절 때맞게 무르익네
2020년 티에리 피셔/서울시향과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서울시향



-당신의 연주를 처음 본 건, 수년 전 한 유튜브였다. 젊은 당신은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5번를 연주했다. 영상 속에는 엄청난 속주에 관내가 술렁이는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시 연주가 기억나는가? (사실 기자는 가끔 속이 답답할 때 이 영상을 찾아 듣곤 한다)

△"여러 사람이 나에게 그 영상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당시 연주 템포는 내가 원했던 것보다 느렸다. 원하는 템포로 갔다면 컨트롤이 안 됐을 것이다. 지금 들어보면 저걸 어떻게 했나 싶다.(웃음)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테크닉을 연마하는데는 공격적이고 화려한 파가니니 카프리스만큼 완벽한 곡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니, 화려함과 빠른 템포로 관객을 홀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와 민속음악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할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웠다. 바이올린을 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인데, 당시 어린 카바코스에게 음악은 어떻게 다가왔는가?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밴드에서 연주하다가 음악대학에 진학하셨다. 어머니도 피아니스트이셨기 때문에 음악은 언제나 집의 중심에 있었다. 집에서 항상 연습하던 아버지의 연주를 듣고 자란 내가 바이올린을 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1985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1988년 파가니니 콩쿠르에 우승하며 주목받았다. 오늘날에도 콩쿠르는 음악가들에게 중요한 발판인데, 당시 콩쿠르에 나가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어머니께서 시벨리우스의 고향인 핀란드에서 연주해 보라고 제안하셔서 시벨리우스 콩쿠르에 참가하였다. 우승을 위해 나간 것은 아니다. 한편 파가니니 콩쿠르에 나가게 된 계기는 조금 다르다. 당시 우승자에게는 파가니니가 사용했던 1742년산 카논네(II Canonne)를 연주할 수 있는 특전이 있었다. 그 악기는 이탈리아 제노아의 한 박물관에 보관되었는데, 그 바이올린을 꼭 연주해 보고 싶었다.

◇좋은 스승이 강조하는 한 가지

-음악가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닌, 피아니스트 페렌츠 라도시를 꼽았다. 그의 밑에서 배운 값진 가르침 한 가지를 꼽자면?

△"모든 스승은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페렌츠 라도시(1934~)에게 9년 동안 배우며 '악보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다른 관점으로 악보를 연구하게 되었고, 연주와 지휘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 그분 덕분에 음악적으로 더 큰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현재 여러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젊은 음악가를 양성하고 있다.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지만, 교육에만 몰두할 수 없기 때문에 마스터클래스를 통해서나마 내가 배운 음악의 전통과 영감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있다. 나의 윗세대들이 그러했듯 다음 세대에게 조금이나마 영감의 씨앗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강조하는 가르침은 무엇인가?

"테크닉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 음악은 각 개인의 서사와 영감이 중요하기에 그 서사를 음악으로 말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음악은 악기, 음악의 악상, 그리고 연주자의 영적인 동기를 통해 말하듯 '발음'되는 예술이다. 그때 비로소 관객과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화려한 기교로 잠깐의 눈가림하는 것이 아닌, 작곡가의 의도를 음악의 전령사로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도록 가르친다."

[객석] 네 줄의 현으로만 느끼는 바흐… 세 번째 계절 때맞게 무르익네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사진=마르코 보르그레베]



◇작곡가를 움직인 바이올리니스트

그는 작곡가 진은숙(1961~)과의 인연이 깊다. 진은숙은 그의 연주에 매료되어 20여 년 만에 두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을 썼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미뤄지다가 올해 사이먼 래틀·런던 심포니의 연주로 초연 무대를 올렸다. 진은숙과의 인연에 대해 묻자 "그녀가 나의 베를린 공연에 두 번 정도 왔고,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전에 실은 서로를 잘 알진 못했다"라며, "진은숙이 협주곡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해 주었을 때 실로 놀라웠다! 큰 영광이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당신을 위해 작곡된 작품이라면 테크닉적으로 화려한 작품이었을 것 같다. 작품의 첫인상은 어떠했는가?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테크닉적인 어려움이 해결되자 무엇인가 더 보이기 시작했고, 사랑에 빠지게 됐다. 오는 2023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이 협주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하루빨리 이 곡을 진은숙의 고향인 한국에서 선보이고 싶다."

-그 작품과 작곡가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어떠한가.

△"진은숙은 '색깔'을 구현해내는 마술사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악기들로 구현해내는 총천연색의 음악은 실로 대단하다. 여느 현대음악처럼 큰 음향으로 압도하는 것이 아닌 세밀하게 속삭이는 부분들이 이 곡의 묘미이다. 물론 연주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작품이기도 하고.(웃음) 하지만 작곡가의 상상력뿐 아니라, 연주자에게 상상력의 영감을 주는 음악들로 가득해 연주자가 오히려 큰 자유를 만끽하는 듯한 감동이 있다. 오케스트라 파트의 색채도 풍부하고 깊이 있다. 오케스트라 입단 오디션곡으로도 좋을 만큼 오케스트라에도 도전이 되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바흐에 집중하는 시간

-이번에 바흐 전곡 녹음을 결심한 계기가 있는가?

△"바흐는 파면 팔수록 새로운 것이 보이는 작곡가이다. 계속 새로운 것이 보이니 음악적 욕심에 계속 때를 기다리며 연습했다. 2005년 음반 발매 이후 전곡 연주를 위해 조금씩 연구해나갔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더 성숙해진 뒤에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을 담은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연륜이 생기고, 경험을 충분히 쌓고 만난 바흐는 어떠한가?

△"바흐의 음악을 수식하는 말은 흔히 '완벽의 경지' '오차 없는' '푸가의 완성' 등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바흐의 음악은 '거울의 이미지'이다. 작은 주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건축을 이룬다. 바흐가 설계한 대칭되는 음악적 이미지와 기하학적 설계는 감탄을 자아낸다. 또한 많은 철학자들이 온 우주와 세계가 반사(reflection)의 영상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흐 작품이 주는 영상미와 반사의 상상력으로 녹음 기간 꿈같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실내악·협주곡 등 대형 무대에서 여러 음악가와 늘 함께했는데, 바흐의 무반주 작품을 연주할 때 외롭지 않은가? 연주자마다 이 외로움을 활용하는 방법이 제각각 있는 것 같다.

△"특히 이런 곡을 혼자 녹음하는 것은 굉장히 외로운 여정이었지만, 특별한 시간이기도 했다. 온전히 나의 내면과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자아와 음악을 탐험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음반으로 만난 당신의 바흐 연주는 본능적이고 영적인 연주로 느껴진다. 이 시대에 바흐는 새로운 해석, 시대악기와 당대연주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도 변치 않아야 할 바흐의 음악 세계관은 무엇인가?

△"다양한 해석은 환영할 일인데, 나는 바흐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 중 화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철저히 화성에 의해 움직인다. 악보를 보면 수평적 음들의 연속인 듯하지만, 엄격한 수직적인 화성의 작용이다. 또 다른 하나는 '스토리텔링'이다. 오페라나 연극과 같이 언어의 서사가 아닌, 음악에 얹은 연주자 내면의 서사이다.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바흐 음악의 가치이다."

[객석] 네 줄의 현으로만 느끼는 바흐… 세 번째 계절 때맞게 무르익네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사진=마르코 보르그레베]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에 담긴 철학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을 만나는 건 음악가와 관객 모두에게 흔치 않은 기회인 것 같다.

△"관객 앞에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을 선보이는 건 나에게도 25년 만인 것 같다. 바흐에 대해선 무슨 설명이 따로 필요하겠는가! 음악이 말해줄 것이다."

-협연자로 여러번 내한했지만, 독주회는 처음 갖는다. 그것도 무반주로. 감회가 어떤지 궁금하다.

△"한국에서의 연주는 항상 즐겁다. 열정적이고 음악적 소양이 뛰어난 한국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큰 영광이자 즐거움이다. '바흐 대장정'을 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가 생겨서 감사하고, 이번 한국 투어에 기대가 크다."

-이번에 연주할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은 1720년경에 작곡되었고, 당신의 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 빌모트(Willemotte)도 1734년산이다. 바로크 시대에 완성된 악기로 바흐의 작품을 연주할 때 더욱 특별한 점이 있는가?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는 참 특별하다. 18세기가 바이올린 제작의 전성기였고, 그때의 기술력이 어떻게 음향적으로 완벽함을 이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공연장의 규모를 포함해 많은 것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이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악기의 음색을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다. 악기 제작자인 스트라디바리(1644~1737)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이 작곡되었을 당시 70대였다. 이미 메디치 가문 등에 악기를 만들어 주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같은 시대에 제작된 악기와 작곡된 음악이 2022년에 합쳐진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공연을 보러올 관객들이 "이것 하나는 꼭 느끼고 갔으면 한다"는 게 있다면?

△"솔직히 그런 바람은 없다. 그것은 내가 추구하는 자세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스어에 '헤르메네이아(Hermeneia)'라는 단어가 있는데, '해석' 또는 '번역'이라는 뜻이다. 단어의 'Hermes'는 '신의 전령사'라는 뜻이다. 같은 의미로 나는 그저 바흐의 전령사일 뿐이다. 나를 통해 그의 음악을 듣고 느끼는 것은 관객이다. 나는 관객이 느끼는 영감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다."

-앞으로는 어떤 공연과 일정들이 예정되어 있는가?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와의 투어와 여러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 연주가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 2023년 봄에 통영국제음악제를 위해 다시 찾을 예정이다."

글=월간객석 임원빈기자·사진=프레스토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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