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공포`에 투자 급브레이크… 기업들 내년 이후로 줄줄이 연기

고환율·고금리에 허리띠 졸라매
대기업, 부동산 팔고 현금 모으기
만도 센터 매각·한화솔루션 철회
스타트업 "투자위축에 방법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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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공포`에 투자 급브레이크… 기업들 내년 이후로 줄줄이 연기


설립 5년차 바이오 벤처기업 A대표는 "지난 수년간 개발한 신약 후보물질을 글로벌 시장에 내놓기 위해 내년부터 미 FDA(식품의약국) 임상시험을 시작할 예정인데, 막대한 투자비용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면서 "지금까지 300억원 넘는 투자를 어렵지 않게 받았는데 후속투자를 받으려 하니 신규 투자사는 물론, 기존 투자사들도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스타트업 투자 기회와 규모가 예년의 5% 정도로 급격하게 위축된 상황"이라며 "지출을 줄여가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앞이 막막하다"고 밝혔다.

멈출 줄 모르는 원·달러 환율 상승과 미국 발(發) 금리인상, 그리고 경기 침체와 주가 폭락 등으로 스타트업 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자금 조달에 비상이 걸렸다. 은행은 가계 뿐 아니라 기업 대출도 관리하라는 금융당국의 지침에 따라 대출에 인색해졌기 때문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근무하다 독립한 한 스타트업 대표 A씨(58)는 "금리인상과 투자심리 위축으로 인해 경쟁력을 갖춘 스타트업들마저 개화를 앞둔 꽃이 폭풍에 져버리는 것과 같은 안타까운 사례들이 속출할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1998년 외화잔고가 바닥나면서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처럼 한 순간에 체감할 수준은 아니지만,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금리인상과 경기침체가 내년까지 이어질 경우 버틸 수 있는 스타트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기업들은 부동산을 팔고 투자를 미루는 등 현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와 관련, 한진칼의 자회사 칼호텔네트워크는 지난 8월 제주KAL호텔을 950억원에 매각했고, 만도도 8월 판교 글로벌 연구개발(R&D)센터를 4000억원에 한라운용리츠에 매각했다. 양사 모두 금리 인상 등에 따른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이번 매각을 결정했고, 자금은 차입금 상환과 재무구조 개선에 쓰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달에는 SK하이닉스, 에쓰오일이 각각 1400억원,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상환했다.

기업들은 이처럼 현금을 최대한 끌어모으면서 동시에 투자는 최대한 미루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상압증류공정과 감압증류공정의 3600억원 규모의 신규 시설투자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한화솔루션은 이달 초 여수산단에 1600억원을 투자해 18만톤의 질산과 질산 유도품 생산 시설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6월 이사회를 열고 청주 반도체 공장 증설을 보류하기로 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원·달러 환율 상승세에 금리인상과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대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시장조사업체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부터 이달 중순까지 설문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응답 기업 10곳 중 3곳(31.1%)는 최근의 환율 급등에 대응해 인건비 등 원가 절감을 추진 중이라고 답했다. 예상 전망치를 뛰어넘는 환율 상승세로 영업이익이 줄어들 것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절반(45.8%)이나 됐다.

기초체력이 없는 벤처기업과 스타트업들은 돈줄이 막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특히 최근 수년간 급증한 창업기업의 상당수가 본격적인 수익구조를 만들기 전에 투자를 늘려야 하는 '죽음의 계곡' 기간임에도 외부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위기에 처했다.

특히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스타트업들의 고충은 더 심하다. 핀테크 분야 스타트업 B대표는 "예전에 비해 외부 투자를 받기가 3배는 어려워진 것 같다. 기업가치도 이전의 3분의 1 정도를 쳐 주는 것 같다"면서 "그나마 초기투자가 아니면 투자를 받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애써 살려놓은 창업생태계가 망가질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기술전략 컨설팅 기업 대표 C씨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량 기업을 발굴해 성장시켜야 하는데 투자시장이 위축되면 방법이 없다"면서 "정부가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모태펀드 출자 예산이 올해 9378억원에서 내년 약 25% 줄어들다 보니 벤처투자 업계도 위기감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은행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한번에 0.7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밟는 등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하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한 대출을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다. 한국은행이 최근 공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불안지수는 올해 3월(8.8) 이후 6개월째 '주의' 단계(8이상 22미만)에 머물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계속 오르면서 '위험' 단계(22이상)에 근접하는 추세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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