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 정치정책부 기자
![[DT현장] 尹대통령 `비속어 논란`과 조선의 史官](http://contents.dt.co.kr/images/202209/2022092702102269038001[1].jpg "[DT현장] 尹대통령 `비속어 논란`과 조선의 史官")
사관은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임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서 그의 언행을 적었다. 학문을 강론하는 경연은 물론이고 임금이 쉬는 공간까지 찾아와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했다. 장소의 출입을 막으면 얼굴을 가리거나 병풍 뒤에 숨어서라도 기록했다. 사관들로 인해 스트레스가 심했던 태종은 이런 행위들을 "모두 음흉한 짓"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처럼 사관을 중심으로 전개된 조선의 언론활동은 구체적이고 매서웠다. 이에 따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것 같은 왕도 언제 어디서건 각별히 말과 행동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소한 일 하나도 사관들에게 트집잡히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태종이 재위 4년(1404년) 사냥하다가 실수로 말에서 떨어진 뒤, 주변에 있던 신하들을 향해 사관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던 일화는 대표적인 사례다.
21세기 대한민국 국정을 책임지는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윤 대통령도 조선시대의 왕들처럼 일거수일투족이 어디서든 초미의 관심을 받는다. 언론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 전반과 언행을 보도하고 일일이 기록한다. 윤 대통령이 휴가를 즐기면서 반려견을 데리고 한강을 산책하는 사소한 일상도 기록으로 남는다.
윤 대통령의 뉴욕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2일 MBC는 윤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최로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뒤 현장을 빠져나가는 장면을 내보내면서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한 말을 자막으로 '(미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달았다.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 의회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한국산 전기차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던 정황상, 방송사는 (미국)이란 자막을 넣은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MBC의 자막으로 세상은 시끄러워졌고,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비속어 논란에 국익 논란까지 겹쳐지면서 다들 한마디씩, 갑론을박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은 영상에 나온 발언 중 '바이든'은 '날리면'이라고 공식 해명했다. 대통령실 김은혜 홍보수석은 미국 뉴욕 현지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 '이 XX'는 한국 국회를 겨냥한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불이익이 발등에 불이 된 상황에 '미국 달래기'에 집중해야 하는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미국 대통령과 미국 의회를 겨냥한 것으로 비춰지는 표현이 불러올 악영향을 차단하려 한 것이다. '이 XX' 부분도 논란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그러면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그렇게 불러도 괜찮다는 말인가"라며 되받아쳤다.
윤 대통령 본인은 26일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며 "진상이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했다. 말의 맥락을 보면 미국 의회와 바이든 대통령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방송사와 연일 비판을 이어가는 야당을 겨냥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역공했다. 하지만 야당의 공세는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사실관계를 확실히 하자고 달려든다.
오늘날 사방이 언론인 시대에 , 정상들이 밀집한 유엔에서 한 말을 없던 일로 만들기는 어렵다. 행동 하나하나가 주시의 대상인 대통령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하고 논란과 오해를 일으킬 발언을 한 것 자체가 문제다. 야당에 대응하기보다는 언어선택의 실수를 인정하고 파장을 줄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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