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
![[박영서 칼럼] 파월 `8분 연설`에 갇힌 한국경제](http://contents.dt.co.kr/images/202208/2022083102102269061001[1].jpg "[박영서 칼럼] 파월 `8분 연설`에 갇힌 한국경제")
증시가 크게 떨어지면서 억만장자들도 어머어마한 돈을 날렸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가장 많은 6억8000만달러를 잃었다. 이어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5억5000만달러,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워런 버핏은 2억7000만달러, MS 공동설립자 빌 게이츠는 2억2000만달러를 날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의 재산이 78억달러 증발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8분 연설'이 낳은 결과였다.
파월 의장의 강한 긴축 발언이 증시 폭락의 방아쇠를 당겼다. 파월 의장은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잭슨홀 미팅)에서 행한 연설에서 매파적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큰 폭의 기준금리 인상이 적절할 수 있다"는 발언을 반복했다.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이른바 '자이언트 스텝'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전 세계는 그의 '매파(통화긴축 선호) 본색'을 재확인하며 경악했다.
잭슨홀 미팅은 미국 와이오밍주의 휴양지 잭슨홀에서 매년 8월 열리는 회의다. 미국 연방준비은행 위원들을 포함해서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이나 경제학자들이 모여 글로벌 통화정책을 논의하는 자리다. 잭슨홀 미팅에서 언급되는 말은 곧바로 각국의 경제정책에 영향을 준다. 올해 미팅에선 파월 의장이 무슨 말을 할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올해 잭슨홀에서 울려퍼진 그의 연설은 짧았지만 핵심은 분명했다. 경기침체 우려가 연준의 물가 대응 의지를 무디게 할 수도 있다는 시장 기대를 꺾으려는 듯 그의 표현은 직설적이고 명료했다. 파월 의장은 "멈추거나 쉬어갈 지점이 아니다"라며 "역사는 (긴축)정책을 조기 완화하면 안 된다고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경기가 위축되고 고용시장도 고통을 받겠지만 반드시 물가는 잡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이란 단어를 45차례나 언급할 정도로 물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1970년대 초인플레이션 사태까지 소환하면서 "당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고통스러운 희생을 치르겠지만 더 큰 고통을 막기 위해 물가를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이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둔화될 것이고, 이에 따라 연준이 긴축을 완화할 것이라는 낙관론은 산산히 깨졌다. 연준이 내년에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는 완전히 물거품이 됐다. 동시에 경기침체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이 높아졌다. 전 세계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그나마 비빌 언덕이 미국이었는데 이제 미국도 본격적인 경기침체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더 무서운 것은 '비싼 달러'의 고착화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달러 강세를 가속화할 것이고, 이는 신흥국의 자본 유출과 통화 약세를 야기할 것이다. 파월 의장에겐 '강 달러'를 넘은 '킹 달러'(달러 초강세)는 분명히 듣고 싶은 음악소리일 것이다.
한국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있다. 경기는 침체되고, 환율과 물가는 오를 것이 분명하다. 한·미 간 금리차가 더 벌어지면 자금 유출, 환율 및 물가 상승 압력은 더 커질 것이다. 파월 의장의 '8분 연설'에 한국경제가 갇혀버린 듯하다. 이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정부와 한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고민만 할 수는 없다. 전쟁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면서 안전띠를 더 단단히 매야할 때다. 할 수 있는 일은 다해 우리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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