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發 글로벌 신냉전] 천안문 추모부터 달라이 라마 인연까지…펠로시와 中의 30년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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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發 글로벌 신냉전] 천안문 추모부터 달라이 라마 인연까지…펠로시와 中의 30년 악연
1991년 9월 중국 톈안문광장에서 추모시위를 벌인 펠로시 의장(가운데). <펠로시 의장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극한 대치로 치닫고 있는 미·중 간 신경전의 발단이 된 낸시 펠로시(82) 미국 하원 의장의 지난 2일 대만 방문 강행에는 1990년대 이후 이어진 중국 정부와의 악연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펠로시 의장은 지난 1991년 9월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1989년 유혈 진압된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추모했다가 공안에 붙들려 구금되는 등 대표적인 '대(對)중국 매파'로 꼽힌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는 '펠로시의 타이완 방문, 중국과 그의 오랜 갈등의 정점'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펠로시 의장과 중국의 '악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지난 1991년 펠로시 당시 하원의원은 베이징을 방문해 톈안먼(천안문) 광장에서 희생자를 추모했다"고 전했다.

이어 "지난 2007~2008년에는 티베트 독립운동가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며 "지난 2008년에는 2008 베이징올림픽 유치에 반대했으며, 최근에는 신장 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문제 삼으며 2022 베이징올림픽 외교 보이콧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범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인권 문제를 언급하는 등 중국 정부와 수시로 대립각을 세워왔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우려에도 대만 방문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데에는 이 같은 배경이 담겨 있다.

펠로시 의장은 1997년 뉴트 깅그리치 당시 하원 의장 이래 대만을 방문한 최고위급 방문 인사이자 의회 내 민주당 일인자다. 그는 지난 4월 아시아 순방을 계획했을 때에도 대만 방문 일정을 포함했지만 코로나19에 걸리는 바람에 일정을 취소한 적이 있다.

1987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출마해 연방 하원 의원에 당선된 뒤 35년간 의정 활동을 하고 있다. 민주당이 다수석이던 2007∼2011년 기간과 2019년부터 지금까지 하원 의장을 맡고 있는데, 여성이 하원 의장이 된 것은 미 역사상 펠로시가 처음이다.

중국의 갈등은 펠로시 의장의 의정 활동 내내 이어졌다. 그는 1989년 유혈 진압된 톈안먼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간 이들에게'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펼쳐 들고 추모 성명을 낭독했다가 공안에 붙들려 구금된 바 있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 33주년을 맞은 올해에도 성명을 내고 "톈안먼 시위는 정치적 용기를 발휘한 가장 위대한 행동 중 하나였다"고 평가했다.

펠로시 의원은 또 1997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만찬이 열리는 영빈관 블레어하우스 밖에서 장 주석을 폭군이라고 부르며 항의 시위를 했다.

2002년에는 후진타오 당시 중국 부주석에게 구금된 중국·티베트 활동가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편지 4통을 전달하려고 했으나 상대의 거부로 실패했다. 그는 7년 뒤 주석이 된 후진타오에게 류샤오보 등 정치범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서신을 결국 직접 전달하는 끈질긴 의지를 보여줬다.

그는 또 중국의 인권 탄압을 이유로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과 2022년 동계올림픽에서 선수단을 보내되 사절단을 파견하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을 주장했고, 이번 동계올림픽에서는 이 주장을 관철시켰다.

이 밖에도 펠로시 의장은 2017년 홍콩의 민주 세력이 투옥된 뒤 유죄 판결을 받자 "세계의 양심에 충격을 준 부당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또 국가보안법에 반대해 홍콩의 민주화 시위가 벌어진 2019∼2020년에는 시위대 지도부를 만나 지지를 보여줬다.

그는 1990년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당시 인권 기록과 연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수용되진 않았다. 박정일기자 comja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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