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책임연구원
![[포럼] 기초과학, `새옹`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206/2022061302102369660001[1].jpg "[포럼] 기초과학, `새옹`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으니 열린 마음을 가지고 미래를 대비하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가파른 산비탈에 눈이 계속 쌓이면 언젠가는 눈사태가 나고, 열대 바다에 쌓인 태양의 복사 에너지는 결국 태풍을 만든다. 다만, 정확히 언제 어떻게 발현될지 미리 알 수 없기에 상황을 살피며 대비해야 한다. 만리장성 근처 중국의 변두리에 살았던 '새옹'의 마음가짐이 그랬을 것이다.
기초과학이 혁신과 진보를 가져오는 방식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기초과학은 세상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영향을 받기도 한다. 세상사와 무관할 것 같은 천문학, 그중에서도 정말 '별나라 이야기' 취급을 받기도 하는 블랙홀 연구가 그렇다.
이번에 공개된 우리은하 중심 블랙홀의 발견과 전파 천문학의 시작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1930년대 초반 AT&T의 벨 연구소에서 무선 통신 중에 들리는 잡음의 원인을 찾는 업무를 맡았던 칼 잰스키는 잡음이 외계에서 오는 것을 발견했다.
박사학위도 없는 젊은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라는 빛을 내는 천체를 발견하면서 전파 천문학의 시조가 되었다. 그의 발견으로부터 한 세기가 지나기 전에 인류는 그 블랙홀의 실체를 보게 되었다. 2만7000 광년 떨어진 우리은하 중심에서 태양의 400만 배 질량을 가진 블랙홀이 강력한 중력으로 시공을 구부려 만들어낸 빛의 고리 영상을 얻었다. 인류의 기술이 달에 있는 도넛을 촬영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한 것이다.
기초과학이 응용 분야의 발전을 이끈다는 도식적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전개다. 물론 전혀 다른 사례도 있다. 1970년대 초반 스티븐 호킹이 블랙홀도 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입증한 후 전파 천문학자들은 이 '호킹 복사' 검출에 도전했다.
이 도전은 아직까지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블랙홀이 '증발'하며 내는 호킹 복사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현재 인류가 가진 것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전파 망원경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2030년대에는 아마 호킹 복사를 관측했다는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연구자들이 이를 위해 함께 새로운 망원경 건설을 위해 노력 중이고 한국도 참여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 호킹 복사를 못 찾은 것은 아쉽지만, 이 과정에서 인류에게 예기치 않은 선물이 주어졌다. 존 오설리번 박사가 여러 전파 잡음 속에서 깨끗한 천체 영상을 얻으려는 연구 중 '와이파이' 기술의 아이디어를 얻은 일이다. 1990년대 특허를 받은 와이파이는 오설리번 박사가 속한 호주 과학기술 연구기구에 현재까지 10억 달러 이상의 기술료 수입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위의 사례들은 흔하지 않은 독특한 경우다. 그런데, 패러다임 전환 수준의 변화를 가져온 큰 발견과 변화 대부분이 그렇지 않았을까? 아인슈타인은 그의 상대론 연구가 내비게이션 시스템 구현을 가능케 하는 핵심기술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그는 블랙홀의 존재도 부정했었다. 위대한 발견이 가져오는 변화는 발견한 천재를 포함한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고대 중국 만리장성 주변에 살았던 새옹이나 고대 우화의 '현명한' 작자들은 이런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현인들이었다.
이 시대의 정치, 행정, 입법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도 기초과학에 대해 새옹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인간의 감각과 경험을 뛰어넘는 극한의 환경과 조건에서 자연은 그의 심오한 원리를 보여준다. 인류의 호기심은 그 원리를 탐구하게 하며 예상치 못한 진보와 혁신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 심오한 원리에 대한 지적 호기심은 방구석이나 산속에서 은자처럼 혼자 앉아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