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손끝 단단하던 음표… 건반을 타고 흐르네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매우 정돈된 자세와 정확한 테크닉에
80년대 피아노수험생 꼽은 1위 연주자
美 평론가도 "흔들림없는 능력이 강점"
현재는 '예전같지 않다' 평가받지만
디테일 힘쏟던 강인한 '펜' 같은 기법
유연한 '붓'처럼 다채롭게 변해 바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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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 손끝 단단하던 음표… 건반을 타고 흐르네
마우리치오 폴리니

특정한 사람의 이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음악계에서도 그런 '영예'를 누리는 인물은 그다지 많지 않은데,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1942~)는 이 희귀한 예에 들어가는 인물이다. "폴리니처럼 쳐라!" 분명하고 구체적인 지시를 담은 이 문장의 뜻은 세대가 지나도 그다지 변색할 것 같지 않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프레이징과 리듬감, 자연스러움과 경이로운 스피드를 함께 지닌 테크닉의 소유자 폴리니처럼 되고자 하는 노력은, 피아니스트들이 설정한 드높은 이상향 속 인물을 닮으려는 움직임과는 뉘앙스 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원대한 목표를 실현하고자 하는 피아니스트 지망생이 자기 경력의 시작인 시험과 콩쿠르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누구나 폴리니처럼 정확하게 연주하도록 훈련받아야 했다.

적어도 필자를 포함한 1980년대 중·후반, 피아노 전공 수험생에게 폴리니의 연주는 모든 것이 완벽한 '신'의 경지로 받아들여졌다. 학생이나 선생님들에게 인기 1위는 폴리니, 2위는 지메르만, 3위는 아시케나지 정도였다고 기억된다. 지메르만은 때로는 폴리니를 능가하는 안정감과 깔끔한 기교로 완전무결함을 자랑하지만 대학교 입시 곡으로 자주 출제되는 곡의 리코딩이 드물다는 이유로, 아시케나지는 어느 곡이나 무난한 진행을 보이나 때로 지나치게 농염하고 짙은 표현을 드러낸다는 면에서 폴리니보다 선호도에서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당시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음반은 쇼팽의 에튀드 집과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집 등으로, 그의 음반에 입시 곡이 모두 들어 필자도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고민했던 기억이 새롭다.

미국의 평론가 해럴드 숀버그는 그의 저서 '위대한 피아니스트'에서 폴리니에 대해 현대 피아노 악파의 대표주자라고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숙달된 테크닉의 소유자이면서도 쓸데없이 허세 부리지 않고, 모든 면에서 음악을 안정감 있게 끌고 나가며 템포도 결코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상식적으로 처리한다." 그의 말대로 폴리니의 최대 강점은 과시하지 않는 뛰어난 테크닉과 이를 돋보이게 하는 흔들림 없는 음악적 진행 능력이다. 폭넓은 레퍼토리를 지녔지만, 그 안에 이른바 '기교를 위한 기교'가 들리는 작품은 단 한 곡도 없으며 최고의 음악성을 평가받는 작품이 아니면 다루지 않는 것이 폴리니의 철칙이다.

뛰어나고 완성도 높은 기교를 몸에 습득하고 있는 피아니스트라면 대개 그렇듯, 폴리니의 연주 자세도 매우 정돈돼 있다. 특별히 우람한 손은 아니지만, 근육이 골고루 분포된 긴 손가락과 키에 비해 잘 발달한 어깨가 자연스러운 무게감을 주며 합리적인 주법을 구사한다. 손목의 위치도 건반에 밀착돼 많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데, 이런 자세로 폴리니는 그 이전의 피아니스트는 꿈도 꿀 수 없었던 테크닉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나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버르토크 협주곡 등과 같은 초절기교의 작품들에서 음들이 분방하게 난무하는 것을 단 한 점도 용납하지 않고 완전한 통제 속에 텍스트의 온전한 재현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폴리니의 기교는 그래서 어떤 곡이든 '불꽃 튀는' 등의 형용사 대신 '차가운'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새롭게 피어난 감상과 표현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찾아보는 교과서나 참고서 같이 느껴지던 폴리니의 연주들에서 필자가 또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이다. 러시아 유학 시절 사사했던 지나이다 이그나체바 교수는 폴리니와 같이 쇼팽 콩쿠르에 출전하여 입상한 경력을 가진 피아니스트였는데, 폴리니에 대한 그녀의 평가는 부정적인 쪽이었다. '10대 시절부터 타고난 균형감각과 테크닉을 타고난 인물이지만, 음악 속에 인간적 내음을 심는 데 서투르다'는 것이다. 이그나체바 교수의 스타일을 터득해가며 그의 평가가 한때 경쟁했던 라이벌에 대한 시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우연일까, 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폴리니의 피아니즘에서 조금씩 비뚤어진 요소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든 이들의 모범답안, 폴리니의 늦은 내한은 방문 그 자체로도 기억될만한 사건이다. 대한민국을 처음으로 찾아온 반가움이 크지만 동시에 우려와 설렘을 절반씩 안고 바라보는 이들은 분명 오랜 기간 그의 행보를 놓치지 않고 착실히 따라서 온 팬들일 것이다. 혹자는 60대 이후, 다시 말해 21세기의 폴리니는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라고 평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예술가의 육체적 감가상각은 누구나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지만, 나는 폴리니가 어느 순간 피아노 소리를 빚어내기 위한 도구를 펜에서 붓으로 바꾸었다는 생각이 든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펜에 비해 붓의 끝은 부드러워 세밀한 표현을 야무지게 그려내기가 쉽지 않다. 그 대신 붓은 단 한 번의 동작만으로 거대한 그림을 완성할 수 있으며, 여기에 상상력을 더하는 데 좀 더 용이하다. 노년의 폴리니는 극명한 디테일에 힘을 쏟던 에너지들을 좀 더 큰 구상을 완성해내는 방향으로 돌려내고, 그 결과 젊은 시절 언어화시켜내지 못했던 갖가지 표현들과 감상을 다채로운 음색과 함께 빚어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최근의 녹음들에서는 그런 폴리니의 바람직한 변모가 잘 드러나고 있다.

글=김주영(피아니스트)·객석DB

사진=마스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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