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샛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최샛별 칼럼] `부캐`와 `N잡러`, MZ세대의 슬픈 자화상](http://contents.dt.co.kr/images/202204/2022041202102269660001[1].jpg "[최샛별 칼럼] `부캐`와 `N잡러`, MZ세대의 슬픈 자화상")
오프라인 공간과는 다른 시간적·공간적·사상적 배경을 가진 온라인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들은 주력으로 육성하는 '본캐'(본래 캐릭터)와 그 외에 따로 육성하는 '부캐'(부가 캐릭터)를 갖는다. 게임에 익숙한 MZ세대는 다양한 캐릭터로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것에 익숙하고, 멀티 페르소나를 갖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게임세대가 아닌 필자가 보기에 한 사람이 외양과 성격, 능력이 모두 다른 캐릭터를 갖는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피곤하게 느껴진다. 어렸을 적 '서유기'를 읽고 나서 손오공처럼 나와 '똑같은' 사람을 여러 명 만들어 대신 일을 시키는 상상은 해 보았어도 전혀 다른 '다양한' 내가 여러 세상에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MZ세대는 '부캐'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적극적으로 '부캐 놀이'를 즐긴다. 2년 전쯤 방송계를 강타한 '유산슬'(유재석)과 '둘째 이모 김다비'(김신영)가 그 대표 사례다. 부캐 개념이 생소한 세대가 보기에 유산슬은 그저 국민 MC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를 실감나게 연기하며 자신을 유산슬이라 우기는(?) 것이지만, MZ세대의 시각은 다르다.
MZ세대에게 유재석과 유산슬은 완전히 다른, 철저하게 분리된 두 존재다. 이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부캐의 세계로 기꺼이 들어가 또 다른 재미를 느낀다. '부캐'의 존재와 인기는 관객과의 합의와 공모를 통해 완성되는 셈이다.
MZ세대가 부캐를 활용하는 방식은 이들의 SNS 이용 실태에서도 드러난다. 이들은 하나의 계정만을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대표 계정인 '본계정'(본래 계정) 외에 최소 3개 이상의 '부계정'(부가 계정)을 사용한다. 기억하기 쉽고 편리한 하나의 아이디를 가지고 자신의 통일성을 보여주기를 원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여러 개의 부계를 가지고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통제한다.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관 안에서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과 원하는 관계를 맺는다. 하나의 통일된 자아로는 다루기 힘든 상황을 손쉽게 해결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일상으로부터의 탈피와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시작된 부캐 놀이가 언제부터인가 하나의 과업으로 변해가고 있는 듯하다. 또 다른 의미에서 팍팍한 현실이 되고 있다고나 할까. 작년에 직장인 1202명을 대상으로 수행된 한 설문조사가 이러한 상황을 보여준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은 '부캐'를 갖고 싶다고 응답했는데 이들이 원하는 부캐가 너무나 현실적이다. 제2의 유산슬을 꿈꾸나 했는데, '먹고사니즘'(먹고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태도)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1~3위를 차지한 직무 외 세컨드 잡 능력자, 쇼핑몰 및 카페 등 창업자, 유튜브 등 인플루언서가 전체의 약 80%를 차지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신선한 재미를 주던 부캐가 'N잡러'(여러 개의 직업을 갖는 사람)로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긍정적으로 보자면 MZ세대의 N잡은 요즘 같은 불확실성 시대에 미래를 위한 좋은 투자 활동이 되거나, 이전에는 펼쳐보지 못했던 다양한 재능을 발휘해 숨겨 놓았던 매력을 선보일 기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더 이상 평생직장이 보장되지 않고, 하나의 직업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부캐를 개발해야만 하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해야 하는 불안한 삶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부캐'와 'N잡러'의 시대는 가볍고 유쾌한 듯 보이지만 고용불안 속에서 자신을 바꿔가며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 MZ세대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이화여대사회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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