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호 편집국장
![[박선호 칼럼] 더 이상 희망을 `독`으로 만들지 말라](http://contents.dt.co.kr/images/202112/2021120602102269058001[1].jpg "[박선호 칼럼] 더 이상 희망을 `독`으로 만들지 말라")
하지만 제우스는 판도라를 인간을 위해 만들지 않았다. 반대로 인간이 불을 얻게 된 것을 알고 벌하기 위해 만들었다. 제우스는 그녀를 인간에게 불을 전한 거인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와 결혼시켜 에피메테우스가 가지고 있던 봉인된 상자를 열게 한다. 판도라가 상자를 연 순간 갇혔던 온갖 재앙이 빠져나가 인간세계로 갔다. 놀란 판도라가 급히 상자를 닫지만 모든 재앙이 빠져나간 뒤였다. 뚜껑이 닫히면서 다시 갇히게 된 것은 안타깝게도 '희망'이었다.
헤시오도스의 이 전승은 다른 버전도 전해진다. 판도라는 이름 그대로 신이 인간을 위해 만든 선물이었다. 그녀는 상자를 열어 온갖 좋은 것들을 세상에 뿌린다. 다시 뚜껑을 닫았는데 갇힌 것은 역시 '희망'이었다. 가장 나쁜 것이었다. 희망에 대한 완전히 상반된 견해다. 희망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누구나 다 "좋지" 하는 게 상례겠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냉혹한 현실은 희망을 독으로 만들기도 한다. '스톡데일 패러독스' 사례가 있다. 제임스 C. 콜린스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서 전하는 미 해군 장교 제임스 스톡데일의 실화다. 그는 1965년 베트남 전쟁에서 포로가 된다. 그 뒤 스톡데일은 약 90㎝×275㎝ 크기의 독방에 감금돼 1973년 석방될 때까지 7년가량 갇혀 살았다. 겨우 돌아누울 수만 있는 공간, 사람이 제대로 살기 힘든 공간이었다. 실제 같은 많은 포로들이 절망 속에 죽어갔다.
하지만 스톡데일은 끝까지 살아남았다. 어떻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서? 그는 훗날 콜린스의 같은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한다. "처음 희망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전에 나갈 것이라 믿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다시 부활절이 되기 전엔 석방될 것이라고 믿음을 이어갔다. 하지만 1년, 2년 믿음을 이어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깊은 상실감에 결국 죽어갔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냉혹한 현실은 '희망'을 독으로 만든다. 독이 된 희망이 바로 절망이다. 같은 의미로 희망이 독이 되는 사회는 냉혹하기 이를 때 없는 사회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나 등장하는 그런 사회다. 그런 현실 속에 "다시 희망을 갖으라"는 것은 혹독한 고문이다.
요즘 자영업자들의 희망을 독으로 만든 것은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다. 지난해의 코로나 팬데믹 불황을 겨우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오미크론은 그 희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나쁜 게 계속 희망만 제시하는 우리 정부요, 정치권이다.
최근 대선 레이스를 보면서도 같은 우려가 든다. 대선 레이스는 이제 막 100일 코너를 돌았다. 여야 두 진영의 후보들이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려 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레이스를 더할수록 두 후보의 정견이 점점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복지분야에서는 그렇다.
두명 모두 그저 "국민이 원하는 것만 하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포장만 다르지 속내는 갈수록 비슷해진다.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심보다. 둘 모두 입으로 뿌리는 것은 희망이지만 결실을 맺기는 힘들어 보인다. 결실 없는 희망이 바로 독이요, 절망이다. 같은 희망을 되풀이해 갖도록 하는 게 '희망고문'이다.
이런 식이면 차라리 국가 운영권을 5년 기간으로 입찰해 기업에게 맡기면 어떨까 싶을 정도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경영 능력이라면 한국을 세계 최고의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이재명 후보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삼성에서 기본소득을 얘기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갈수록 황당한 게 일상이 되고 있다. 콜린스의 스톡데일 패러독스 이야기는 이 부회장이 영어의 몸이었을 때 가장 감명 깊게 읽은 것이라고 한다. 당시 이 부회장은 자신의 변호를 위해 면회를 했던 변호사에게 "생존은 희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해서"라고 말했다 한다. 삼성전자와 자영업자, 둘 모두가 현실에 내몰리면 결국 살아남는 건 삼성전자 뿐이다. 정치가 더 이상 국민의 희망을 독으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박선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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