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
![[박영서 칼럼] "기름값 되레 오른다" 비축유 방출의 역설](http://contents.dt.co.kr/images/202112/2021120102102269061001[1].jpg "[박영서 칼럼] \"기름값 되레 오른다\" 비축유 방출의 역설")
세계 각국이 전략비축원유(SPR) 저장에 나선 건 1973년에 일어난 제1차 오일 쇼크가 계기였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공급 제한과 유가인상을 단행했다. 국제유가는 3개월 만에 약 4배로 뛰어올랐다. 전 세계가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고 석유 비축이 시작됐다.
물론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비축유 방출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1년 걸프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2011년 리비아 사태 때 비축유를 풀었다. 전쟁, 자연재해 등으로 공급에 갑자기 차질이 생기자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주도해 실행에 옮겼다. 이번은 미국의 주도로 주요 석유소비국들이 방출을 결정했다. 공급 차질이 아닌 가격 급등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서둘러 비축유 방출에 나선 배경에는 미 국내 사정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자동차 사회인 미국에선 기름값이 올라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유가 상승 등으로 물가가 치솟으면서 바이든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다. 바이든의 지지율은 취임 이래 최저 수준이다. 게다가 미국은 내년에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비축유 방출을 지지율 회복으로 연결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미국은 향후 수개월에 걸쳐 국내 소비량의 약 3일분에 해당하는 5000만 배럴을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다른 나라들 것까지 합하면 7000만~8000만 배럴이 시장에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시장을 식히기에는 불충분하다. 전 세계 하루 원유 소비량이 거의 1억 배럴에 달하고 가격결정 요인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비축유 방출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 우려되는 것은 산유국들의 반발이다. 이들 국가는 증산에 신중론을 펴고 있다. 증산이 유가 급락으로 이어질 것을 경계하고 있다. 산유국들이 추가 증산에 소극적인 것은 세계적인 탈탄소 조류에 대한 미래 불안도 깔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이번 비축유 방출 공조 방안은 산유국들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안 그래도 산유국들은 원유 증산에 일정 정도 협조를 해왔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예상 밖으로 비축유 방출이라는 카드를 꺼내자 산유국들은 뒷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한다.
오는 12월 2일 열리는 OPEC 플러스(+) 정상회의에서의 논의가 관건이다. 회의에서 산유국들이 하루 40만 배럴 증산을 중단시켜 비축유 방출에 맞대응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때마침 터진 오미크론 사태는 증산 중단의 빌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미크론발(發) '수요 감소 우려'라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예상대로 산유량을 줄이거나 추가 증산을 보류한다면 유가 상승은 더욱 탄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소비국과 산유국의 대립이 격화되면 시장은 더욱 불안정해질 것이다. 글로벌 금융사인 바클레이스(Barclays)는 "미국 등 주요 소비국의 시장 개입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라며 내년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 평균 가격을 배럴당 77달러, 80달러로 상향조정했다. JP모건은 내년에 브렌트유가 배럴당 평균 88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가가 요동치면 석유 한 방울 나지않는 한국은 큰 타격을 받는다. 탈탄소화를 소홀히 할 수 없지만 당장은 화석연료를 사용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불확실성이 우리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임기응변적 대처가 아니라 차분하게 장기전략의 그림을 그려야할 시점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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