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D사이언스] "위성·발사체 개발 30년, 이제는 과학 주도 우주탐사에 힘 쏟을때"

석사 2년차 때 우주과학과 운명적인 만남
태양풍·지구자기장 등 우주날씨 연구 매진
"우주분야 실패·성공보다 시도 자체 의미"
초소형 위성 '도요샛' 발사 손꼽아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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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의 D사이언스] "위성·발사체 개발 30년, 이제는 과학 주도 우주탐사에 힘 쏟을때"
천문연 제공



이준기의 D사이언스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박사


'플라즈마(Plasma)'와 같았다. 고체, 액체, 기체와 더불어 '제4의 물질 상태'로 불리는 플라즈마처럼 때론 반짝반짝 빛을 냈고, 때론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자석처럼 끌어 당겼다.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마치 우주를 이루는 물질의 99%를 차지하고 있는 플라즈마와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 우주과학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플라즈마 물리 연구로 박사학위를 딴 그였다. 이 때문일까. 그가 걸어온 연구 인생에서 물리, 우주라는 단어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와도 같았다.

사실, 우주과학자로 살아 간다는 건은 우주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이를 과학적 사실로 밝혀내기 위한 덧없는 노력이 더해질 때 비로소 우주에 앞에 한 발 다가설 수 있는 듯 하다.

그런 점에서 황 박사는 대학원 시절 '과학기술위성 1호' 탑재체 개발에 참여하면서 엔지니어의 삶 보다는 물리학 기반의 우주 연구에 더 애착을 갖고 있었기에 우주과학자의 길을 선택했고, 그래서 천문연에 들어왔다.

황 박사는 "우주 발사체나 인공위성 탑재체 등이 제대로 된 임무를 하려면 우주환경에 대한 기초연구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라며 "지난 30년 간의 우리나라 우주개발이 위성, 탑재체, 발사체 등 하드웨어를 우주에 쏘아 올리기 위한 기술 확보에 주력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 30년은 과학 주도의 우주탐사 임무를 시도하는 장기적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21일 국내 독자 발사체인 '누리호' 발사는 우리나라 우주개발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30년 전인 1992년 우리별 1호 발사를 계기로 우리나라 우주개발 역량이 급격한 발전을 이뤘듯이 누리호 발사가 우주개발에 중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해 혁신을 넘어 우주분야에 혁명 같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담=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책 좋아하던 소녀, '과학'과 친구 되다=황 박사는 어릴 적 책을 무척 좋아했다. 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 갔고, 집에 책이 많은 친구가 제일 부러웠을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추리 소설은 지금도 '최애(가장 좋아하는)'하는 책 중 하나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선생님의 추천으로 '과학영재교실'에 들어가면서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황 박사는 "과학영재교실에서 과학과 수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과학고에 진학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과학고 진학 이후 많은 수업과 숙제 때문에 좋아했던 책을 자주 보지 못했지만, 이휘소 평전 등과 같은 과학자의 일생을 담은 위인전을 읽으면서 가을 단풍잎이 점점 물들어 가듯, 과학자에 대한 그의 꿈도 점점 짙게 물들어 갔다.

황 박사는 고등학교 때 생물과 화학 과목에 두각을 나타냈지만, 물리 과목만은 유독 노력한 만큼 점수가 나오지 않아 애를 태웠다. 그렇게 애를 태웠던 물리는 대학 전공 선택 때 그의 도전의식을 자극했고, 결국 KAIST에 들어와 물리학과를 선택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우주과학실험실'과 운명적 만남=황 박사는 KAIST 석사 2년차 때 자신이 연구할 실험실을 찾던 중, '우주과학 실험실'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당시 인공위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보고, 연구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곳이었기에 경쟁률도 치열했다. 실제, 우리나라 첫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를 비롯해 2호, 3호에 실리는 탑재체가 그 곳에서 탄생했다.

그는 2003년 발사된 과학기술위성 1호에 탑재된 '고에너지 입자 검출기'를 직접 설계, 제작, 발사 등 전 과정에 참여하면서 우주과학자로 첫 발을 내디뎠다. 막내이자 여성이었던 황 박사가 우리나라 우주개발 역사에 남을 중책을 맡게 된 것이었다.

황 박사는 "위성을 직접 납땜하는 것은 물론 탑재체 제작까지 제 손이 안 간 곳이 없을 정도로 고생도 많이 했고 재미도 있었다"며 "제 이름 석 자가 새겨진 인공위성이 우주를 돌면서 저를 내려보고 있다는 게 지금도 생각하면 짜릿짜릿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우주과학자로 연구역량 드높이다=그는 우주과학자 길에 들어서기 위해 한국천문연구원의 문을 두드렸다. 1년이 채 안 되는 박사후연구원 시절을 마치고, 최연소로 정규직 트랙으로 천문연 입사에 성공했다. 천문연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전공한 물리를 기반으로 우주의 다양한 현상을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황 박사는 우주공간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들을 해석하기 위해 탑재체를 만들어 우주로 보내는 일을 한다. 특히 우주날씨와 관련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지구 주변 우주공간의 환경 변화를 감시하고, 그 변화의 원인을 찾는 연구다. 그 중에서도 태양에서 지구를 향해 불어 오는 '태양풍'과 이로부터 지구를 보호해 주는 방패 역할을 하는 '지구 자기장',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태양방사선폭풍', '지자기폭풍', '전파폭풍' 등이 그의 주된 연구 분야이다.

더욱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우주방사선 안전관리' 연구를 태양활동 한 주기(11년)가 넘도록 이어가기도 했다. 이런 연구를 통해 국내 항공사에 근무하는 승무원과 승객이 우주방사선을 얼마나 받는지 피폭량을 파악할 수 있었고, 항공 승무원들을 우주방사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생활주변 방사선안전관리법' 개정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태양에서 방출되는 고에너지 입자들은 지구 주변의 커다란 방패막 역할을 하는 지구 자기장 때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북극과 남극은 자기력선이 열려 있어 고에너지 입자들이 들어온다"며 "북극항로를 운행하는 비행기를 타는 조종사, 승무원, 승객들은 고스란히 방사선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주분야, 실패를 통해 발전… 실패 담담히 받아 들여야"=황 박사는 우주 분야의 경우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적인 논의보다는 시도해 본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과정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21일 발사한 누리호가 비록 위성을 목표 궤도에 진입시키지 못했지만, 발사체 후발주자로 지난 12년 동안 오로지 우리의 힘으로 해 낸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우리가 독자 개발한 우주발사체를 처음 만들어 우주로 발사해 봤다는 자체만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다.



황 박사는 "우주 선진국도 발사체 첫 발사 때 성공률이 30%에 그칠 정도로, 우주 개발은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서 "실패가 토대가 되고, 이를 담담하게 받아 들이는 의식이 쌓여 하나의 문화로 정착될 때 우주는 성공의 문을 열어 준다"고 말했다.

◇세계 첫 초소형 위성 '군집·편대비행' 시도=황 박사는 우주환경 연구를 위해 제작한 초소형 인공위성 '도요샛(SNIPE)' 발사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4기의 초소형 위성으로 구성된 도요샛은 오는 12월 러시아 바이코누르 발사장에서 소유즈 발사체에 실려 발사되는 우주날씨 관측임무 위성이다.

황 박사는 "도요샛은 '큐브' 모양의 정육면체 6개를 묶어 만든 총 중량 7.9㎏의 초소형 위성 4기로 이뤄져 있다"며 "12월 발사에 성공하면 고도 500㎞에서 1년 간 북극과 남극 위를 통과하는 극궤도를 공전하며 과학관측 임무를 수행한다"고 소개했다.

특히 도요샛은 세계 최초로 4기 위성이 서로 거리를 유지하며 일렬로 비행하는 종대비행과 나란히 비행하는 횡대비행 등 군집 비행을 시도하는 도전에 나선다. 그는 "초소형 위성은 크기가 작아 신호를 잡아내기 힘들고, 통신도 여의치 않아 자세 제어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도전적인 시도"라며 "우리의 힘으로 편대비행을 통해 그동안 단일 위성으로 하지 못했던 우주 플라즈마 분포의 미세 구조 변화를 관측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는 미래 세대를 위한 것…국가 안보, 생존과 직결"=본격적인 뉴 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각국이 우주를 차지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우주를 지배하는 국가가 미래 글로벌 패권을 잡게 될 것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 일본 등이 전통 우주 강국부터 UAE(아랍에미리트), 인도, 룩셈부르크 등 신흥국까지 달과 화성은 물론 소행성까지 우주탐사 영역을 넓혀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황 박사는 "많은 나라들이 우주개발 경쟁에 뛰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국가 안보 즉, 생존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누리호 발사체 발사와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참여 등으로 우주로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만큼 우주개발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목표, 전략을 갖고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우주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주가 인간의 호기심 영역이 아닌 국가 생존을 위한 안보, 경제, 외교 등을 아우르는 영역으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과학이 주도하는 우주탐사 전략도 필요하다는 게 황 박사의 주장이다.그는 "그동안 우리의 우주개발은 위성과 탑재체, 발사체 등을 개발해 우주로 보내 검증하는 차원에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우주에 대한 지속적·장기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우주 선진국을 빨리 따라 잡으면서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마지막으로 황 박사는 "본격적인 우주경제 시대를 맞아 우주에서 할 일이 더욱 많아지기에 우수한 학생들이 우주에 더 많이 진출했으면 한다"면서 "그 과정에서 어렵고 힘들더라도 남이 안 하는 것을 선택하는 과감한 도전도 해 봤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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