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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정치박박] 폐허플레이 경선 끝… 국힘, 룰부터 바로잡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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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차 토론 말꼬리잡기 대회 방불
'노이즈 지향', 역선택도 문제
밴드왜건 효과로 당심 압박 횡행
갈등 유발 수위는 '명낙대전' 이상
이 기회에 경선룰 확고히 해야
[한기호의 정치박박] 폐허플레이 경선 끝… 국힘, 룰부터 바로잡길
지난 10월 31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자 제10차 합동토론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원희룡(왼쪽부터), 윤석열, 홍준표, 유승민 대선 경선 후보가 토론 시작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국민의힘 제20대 대선 본경선이 5일 후보 선출과 함께 마무리된다. 당 대선후보가 누가 되든 간에, 1·2차 컷오프(예비경선) 포함 지난 두달여 간 관전평을 내놓자면 이렇다. 경선에 앞서 페어플레이를 기대했는데 정작 '폐허 플레이' 아니었는지, 정당다운 정치는 어디로 갔는지다. 경선이 끝났으니 그 룰부터 고쳤으면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년 3월 대선 석달 뒤엔 민선 8기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16차례에 걸친 TV토론회는 미래지향 정책과 그동안 불투명했던 가치노선 재정립 등 생산적인 토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속 좁은 말꼬리 잡기와 내로남불 대회장 같았다. '주술 후보·비리 쌍둥이'니 '조국수홍·꿔준표'니 '배신자'니 낯 뜨거운 꼬리표 달기를 비롯해, 면전과 막후를 가리지 않는 '야비하다' '역겹다' 등 헐뜯기 식 언사와 '서로가 밀쳤다, 악수를 뿌리쳤다' 진실공방 등. 정치권·언론의 눈높이도 그 수준에 머물렀다.

한층 우려스러운 건 야당의 경선 룰의 맹점과 그것을 이용하는 데 급급한 주자들의 태도로 '정당정치의 실종'에 가까워진 분위기였다. 당내 대세론을 먼저 형성한 주자와 '역선택 방지'를 논의 대상에 올렸던 당 선거관리위원회를 공격하면서 당내 '노이즈 유발'을 주도한 경쟁주자들이 여론조사 상승세를 무섭게 탔다. 어떤 주자는 예비경선 국면에서 반대당(여당) 색에 가까운 짙은 청색 배색으로 자신을 꾸며 역선택 논란 중심에 섰다.

심지어 '여당의 정치공세가 집중된다'는 이유로 특정 주자에 대한 중도하차와 지도부에 의한 퇴출을 요구하는 등, 연속된 무리수는 구애 대상이 당원이 맞는지 의문을 들게 했다. 해당 주자는 여권 지지층을 먼저 끌어들여 상승세를 타더니 당 지지층까지 결집하며 양강을 형성, 판을 흔들었다. 그러나 지난 2017년 대선후보·당대표 경선에서 압도적 당심(黨心)을 확보했던 주자의 표변에 당 구성원과 지지층은 전례 없는 속앓이를 했다. '당심이 민심을 이기려 들면 안 된다'던 해당 주자는 막판까지도 "정의(正義)가 살아 있다면 당심·민심 모두 이길 것"이라고 했다가, "반대의 결과가 나오면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겠다"고 선을 그어뒀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부터 반복된 여론조사 맹신과 과잉 반영이라고 본다. 반대당 지지층의 집단 개입, 중구난방 식 시중 여론조사 인용 보도로 인한 밴드왜건 효과와 혼선을 '구조적'으로 허용한 탓이다. 당의 대표선수를 뽑는데 당심을 여론의 종속변수 쯤으로 취급해왔다. 이번 경선도 1차 컷오프는 여론조사 100%로 치르려다가 '역선택' 우려에 80%로 낮추고 당원투표 20%를 반영하게 된 바 있다. 2차 컷오프도 여론조사 70%, 당원투표 30%로 치러졌다. 본경선은 당헌 규정대로 50% 여론조사가 반영됐다. 본경선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지만, 예비경선 세부결과는 비공개였다. 1·2차 컷오프가 끝날 때마다 진위가 불투명한 득표율 '지라시'가 돌면서 국민의힘은 내홍에 빠졌다.


당심의 뚜껑이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시중 여론조사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주자들의 '당심 찍어누르기' 식 언론 플레이가 만연하니 후유증은 커졌다. 애초 여론조사 발표와 보도 성향부터, 여야 가상대결이 아닌 보수야권(또는 국민의힘) 후보군에 한정한 채 적합도를 묻는 방식이 표준인 양 유행했다. 여·야 지지층도 각 조사주체의 정당지지율 집계를 그대로 따랐다. 여·야 편향마저 좌우하는 전화 면접조사, 자동응답(ARS) 변수가 통일되지 않은 채로 발표되니 '수치 널뛰기' 논란이 잦았다.
더불어민주당은 '명낙 대전'으로 유례 없는 당내 갈등을 겪었다지만 국민의힘에 비하면 '말 폭탄'을 수위 자체는 낮았고 주적(主敵)을 헷갈리는 정도도 아니었다. 게다가 날것의 여론조사가 아닌 미국식 프라이머리를 닮은 선거인단 모집 방식을 채택해 당원과 고(高)관여층 주도로 후보를 선출했단 점에서, 제도 자체는 야당보다 선진적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의힘은 당헌 69조(후보자 선출)에서부터 '대통령 선거인단'과 함께 '여론조사'를 종합해 선출한다고 못 박고 있다.

주자들의 당내 노이즈 유발은 개개인으로선 이런 룰 아래 '최적 선택'을 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국민의힘에서 지역·중앙당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경선 기간 보수진영 내 갈등에 SNS 접속조차 뜸해질 만큼 염증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는 "당내 경선을 여론조사에 맡기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당의 후보는 당원이 뽑는 게 맞다"면서 "지방선거 끝나면 바로 당에서 해야 할 일이, 다음 대선 룰을 다 짜놓고 당헌·당규에 넣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전자 입장에선 룰 정비 시점이 좀 더 빨랐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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