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동 금융부장
![[DT현장] 금융위원장의 자격](http://contents.dt.co.kr/images/202109/2021090702102269065001[1].jpg "[DT현장] 금융위원장의 자격")
영국, 미국 등 금융 선진국의 경우는 더 까다롭다. 범죄 이력 같은 부정적 요건 외에도 청렴성과 업무 전문성을 두루 살펴본다. 언론 등을 통해 드러난 평판도 사전 적격성 심사(Fit and Proper Test)의 대상이다. 금융업의 특성 때문이다. 고객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회사의 임원이 되려면 특정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품성까지 흠결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회사를 감독하고 인신구속의 행정처분을 내리는 금융당국 수장의 자격요건은 어떨까. 국내 금융정책과 건전성 감독의 집행기구는 합의체 행정기관인 금융위원회다. 금융위원회법은 금융위원회 위원의 자격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 피성년후견인 등의 결격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이런 부정적 요건 외에 금융위 결정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금융위원회법은 금융위 위원의 제척·기피·회피 제도를 두고 있다.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사항에 대한 심의·의결에서 해당 금융위원은 당연히 배제된다. 금융위원의 배우자나 4촌 이내 혈족, 2촌 이내 인척이 속한 법인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항도 불공정 우려가 있어 제척 사유로 명시돼 있다.
금융위원회법이 법관에게 적용되는 제척·기피·회피 제도를 금융위원에게도 요구한 것은 독립적이고 공정한 금융감독을 집행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 있어서 법관일 수 없다'는 법언처럼, 금융위원도 자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이나 법인의 이익이 걸린 사안에 대한 심의·의결에서 빠져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금융위원이 혈족이나 인척이 속한 법인의 이익과 관련돼 있는 사안을 심의할 경우 불공평한 판단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실제로 불공평한 의결 여부와는 별도로 일반 국민의 금융감독 제도에 대한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 법관의 제척사유는 직접적인 금전적 이해관계 등 매우 좁은 범위에 한정됐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는 '합리적 일반인 기준(Reasonable Person Standard)'으로 변경됐다. 이 기준을 금융위원회법에 적용해보면, 고승범 금융위원장과 매제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은 2촌 관계로 연결돼 있다. 김 회장이 속한 법인은 한국투자금융지주와 그 자회사, 손자회사, 증손회사, 기타법인, 관계회사 등 125개에 이른다. 금융위원의 제척 대상에 한국투자금융그룹 125개 법인을 모두 포함하는 건 사실 비현실적이다.
그렇지만 금융위원회법이나 금융위 운영규칙 어디에서도 이해관계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실제로 고승범 위원장이 금융위 상임위원과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재직 당시 김남구 회장과 관련해 제척된 사안은 6건에 불과했다. 절차의 투명성을 포기했거나 아니면 금융위원이나 금통위원 스스로 부적격 신청을 하지 않아 이해충돌이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고승범 위원장이 인사 청문회 답변에서 "전체 금융위 심의·의결 안건 중 특정회사와 관련한 안건은 극히 일부"라고 한 것 역시 이해충돌이 생길 수 있는 범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조윤제 금통위원 사례는 시사적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도 금융위원과 마찬가지로 자기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사항과 배우자, 4촌 이내 혈족 또는 2촌 이내 인척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사항에 대해 제척된다. 주미대사 출신의 조윤제 금통위원은 작년 금통위 회의 참석을 앞두고 자진해 보유하고 있던 금융회사 주식을 처분했다. 그런데 조 위원은 보유하고 있던 비금융 중소기업 3개사 주식까지도 팔아야 했다. 상장회사 주식이 금통위원 업무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다는 인사혁신처의 유권해석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자기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사항에 대한 제척은 금융위원과 금통위원이 동일하다. 다만 혈족, 인척과 관련해선 '혈족·인척이 속한 법인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항'으로 금융위원의 제척 범위가 더 넓고 포괄적이다.
역설적이게도 지나치게 넓은 제척·기피·회피 범위로 인해 금융위원의 이해충돌이 '극히 일부'로 좁혀진 셈이다. 그렇다면 금융위 운영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 확보를 위해서라도 제척·기피·회피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금융위원장 수행을 위한 최소 자격요건이 아닐까.
김현동 금융부장 citizenk@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