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DT현장] 국부 무너뜨리는 기술유출](http://contents.dt.co.kr/images/202108/2021082602102269731001[1].jpg "[DT현장] 국부 무너뜨리는 기술유출")
최근 들어 첨단기술 선점을 위한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한층 격화되고 있다. 과거가 군사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기술력이 국가 경제는 물론 국가 안보까지 책임지는 '새로운 기술 전쟁'의 시대를 맞고 있다. 그야말로 '기술 안보'가 기업의 생존을 넘어 국가 운명까지 결정짓는 강력한 모멘텀으로 작용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때문에 각국은 기술유출을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법적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2011년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은 보잉사의 우주왕복선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던 당시 74세 중국계 미국인에게 산업스파이법을 적용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5년 8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는 등 기술유출 범죄에 강력 대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기술유출 범죄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과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업기술보호법)'을 통해 처벌하고 있다. 지난 2019년에는 법률 개정을 통해 형량을 강화하는 등 엄격한 법적 잣대를 마련해 놓았다. 하지만, 강화된 법적 형량에도 불구하고, 법원에서 이뤄지는 기술유출 범죄 선고는 이를 따라가지 못해 예방적 효과와 법적 실효성이 떨어지는 한계성을 안고 있다. 한 마디로, 우리의 기술유출 범죄 관련 법적 체계가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영업비밀과 산업기술 유출사건의 기소율은 14∼21%였다. 일반 형사사건 기소율(40.1%)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무죄율도 20배 이상 높다. 더욱이 기술유출 사건 중 집행유예 선고 비중이 24∼53%에 달해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법정 선고형이 매우 낮은 실정이다. 결국 낮은 기소율과 높은 무죄율로 인해 기술유출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어려운 법적 현실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설령, 유죄로 인정되더라도 형량이 법정형(최대 15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최대 6년에 그치고 있어 법적 처벌이 미약하기만 하다. 해외 기술유출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국정원 발표에 따르면 2016년 6월부터 올 6월까지 해외로 유출된 기술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최소 20조 원 이상에 달한다.
이 모든 게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우리의 법적 체계가 근본적으로 허술하기 때문이 아닐까. 대다수의 기술유출 범죄는 다른 형사 사건과 달리 화이트 컬러 위주의 초범이 많고, 피해 입증이 어려울 뿐 더러, 공탁 등 감경과 집행유예 요소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법정 선고 때는 처벌 수위가 낮아지기 마련이다.
이 같은 법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법조계는 지난 2012년,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기술유출 범죄의 양형기준을 국내·외 침해 유형으로 나눠 8개월에서 3년 6개월로 개정해 시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개정 양형기준을 적용한 사건의 70% 가량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거나, 가중 처벌을 받은 경우가 단 한 건도 없어 강화된 법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양형기준 재조정과 기술유출에 따른 객관적인 피해액 산정, 피해자 입증 책임 완화, 법원의 전향적 자세, 국민적 관심 등 앞으로 법·제도 개선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지식재산 출원·등록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지식재산 강국'이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세계 2위의 '연구개발 강국'이다. 이에 반해, 기업들이 애써 개발한 기술을 보호하는 수준은 세계 30위권 밑으로 거의 바닥 수준이다. 이로 인한 기술유출 피해 규모도 한 해 약 60조 원으로 추산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정부 차원에서 기술유출 범죄 근절을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손해액 산정기준 강화 등 정책적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법적 현실 앞에선 노력의 결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에서 기술유출 행위는 중대한 범죄임에 틀림 없다. 기술유출 행위는 갈수록 고도화·지능화돼 가고 있어 범죄 억제력을 높이려면 강력한 법 집행이 요구된다. 이 정부가 그렇게도 부르짖고 있는 정의와 공정의 가치 실현이 기술유출 범죄에 예외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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