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논설실장
![[이규화 칼럼] 이준석, 지금 치맥이 넘어가나](http://contents.dt.co.kr/images/202107/2021072802102269660001[1].jpg "[이규화 칼럼] 이준석, 지금 치맥이 넘어가나")
이 대표는 이 사건을 처삼촌 묘 벌초하듯 대하고 있다. 좌파 성향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자가 "문재인 후보가 이런 문제(드루킹 여론조작)를 직접 챙겼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좀 어려운 부분 아닙니까?"라고 하자 이 대표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김경수 지사가 캠프 내 핵심 역할을 맡으면서 부적절한 인사들과 교류하며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닌가 생각을 했는데…"라고 했다. 놀라자빠질 말이다. 김경수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고 문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줬다. 여당 대표의 말 같다. 당이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공식 성명을 냈는데, 당 대표는 그와 배치되는 말을 한다.
대체 이준석 대표의 정신은 어디에 가 있는가. 그러잖아도 자유민주 우파 사람들은 이 대표가 문재인 정권의 실정 비판과 대여투쟁에 소극적인 것을 이상하게 여겨온 참이다. 국민의힘은 판결이 나온 날 성명 하나 달랑 내놓고 지금까지 이렇다 할 대응이 없다. 무슨 일만 터지만 만들던 '특위'는 논의대상에도 안 올랐다. 누가 봐도 이 문제는 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사안이다. 대선의 공정한 관리를 압박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국민의힘이 이렇게 무기력하니 당외 인사들이 나서고 있다. 대권 도전을 선언한 장성민 전 의원(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이번 사태를 어물쩍 넘기게 되면 피눈물로 쟁취한 우리의 민주주의는 뿌리 채 썩는다"며 "문 대통령은 여론조작이라는 반민주적 부정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했다. 탄핵과 하야도 언급했다. 범여권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장 전 의원 눈에는 국민의힘이 '호재'도 제대로 활용 못하는 숙맥으로 비쳤을 게 뻔하다.
장 전 의원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까지 싸잡아 비판했다. 장 전 의원은 윤 전 총장이 이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으로 있었으면서도 "방치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청와대 눈치 보기였는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여론조작으로 문재인 정권의 정통성이 훼손됐다고 주장한 윤 전 총장으로서는 뜨악할 수밖에 없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홍준표 의원도 "검찰이 배후를 은폐하는 바람에 특검이 도입된 게 아니냐"며 당시 수사 지휘선상에 있던 윤 전 총장을 공격했다.
대선 여론조작 사건이 엉뚱하게 야권 대선주자 1위인 윤 전 총장에게 비화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야권 진영에선 뼈아프다. 입당을 미뤄온 윤 전 총장의 미숙한 대응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1야당을 이끄는 이 대표의 책임도 크다. 사전에 야권 후보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여당 경선과정이 이전투구로 변질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시끌벅적하게 벌인 치맥 회동에서 윤 전 총장의 입당을 결론 내든, 여론조작 수사 방기에 대한 입장을 밝혀 사태를 봉합하라고 조언하든 둘 중 하나는 이끌어냈어야 했다.
대중의 인기를 업고 정치에 입문했으나 구설이 화근이 되어 반역자로 몰린 로마 장군 코리올라누스가 있다. 코리올라누스 신드롬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준석 대표는 식상할대로 식상한 경쟁자들 덕에 돌풍을 일으키며 당대표가 됐다. 지난 2달간 카피라이터처럼 이슈 정리를 잘 했지만, 그러나 그뿐이다. 점점 코리올라누스를 닮아간다. 대표 자리가 이제 좀 녹아들 때도 됐는데 여전히 겉돈다. 오죽했으면 같은 당 김소연 변호사가 "치맥 마시고 꺼억 트림 한 번 하니 또 말이 싸악 바뀌어버리는 청년팔이 당대표 덕에 우리당이 구걸 정당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하겠는가. 지금은 '관종'에 빠질 때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살아나느냐 더 나락으로 빠져드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다. 치맥이 술술 넘어갈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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