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삼성·현대 반도체연합, 하면 된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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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삼성·현대 반도체연합, 하면 된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한쪽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다른 한쪽은 아쉬울 것이 하나 없다. 아쉬운 쪽은 '갑'이고 아쉽지 않은 쪽은 '을'이다. 이럴 경우 대체로 서로 모른척 할 가능성이 크다. 한쪽은 '을'에게 굽히기엔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다른 한쪽은 돈벌이도 안 되는 것을 굳이 먼저 제안할 이유가 없어서다. 그러나 이게 앞으로 '금광'이 될 것이라면 어떨까. 서로 눈치만 보다 '호기'를 놓치느니 차라리 허심탄회하게 서로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정말 미래에 돈이 된다고 판단되면 자존심이나 당장의 이해관계보다는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현명하다.

정확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차량용 반도체 공급대란을 바라보는 완성차 업계와 반도체 업계의 상황을 예로 들어봤다. 양쪽을 다 취재해 본 필자가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대화한 것을 나름대로 압축해 본 것이다.

이번엔 숫자로 설명해보겠다. 메모리반도체 업계 1위인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25.8%다. 차량용 반도체 세계 2위인 르네사스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9.1%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영업이익률은 한때 50%를 상회하기도 했으며 지금도 30%대 영업이익률은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그에 비해 차량용 반도체 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20%에 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삼성전자 등은 자체 생산공장이 있어 수익성을 더 극대화할 수 있고, 차량용 반도체 업체들은 주로 외주생산을 하는 경우가 많아 직접적인 비교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차량용 반도체는 운전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만큼 완성차 업체 뿐 아니라 여러 인증기관의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고, 그나마 수주를 따내도 스마트폰이나 PC 등에 비하면 물량도 적은 것이 사실이다.

세계 완성차 판매량이 연간 약 8000만대 안팎이라면, 스마트폰의 연간 판매량은 10억대 수준이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 양이 스마트폰의 10배가 넘지 않는 한 반도체 제조업체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히 IT(정보기기) 쪽으로 기운다.

그런데 친환경·자율주행차 시대가 빠르게 열리면서 어쩌면 정말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 양이 스마트폰의 10배가 넘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매출 기준 차량용 반도체의 연 평균 증가율은 9%로 전체 평균(5.5%)을 상회하고 있다.

현재는 차량용 반도체가 전체 반도체 시장의 약 9.6%(2019년 기준)에 머물고 있지만, 이 같은 추세면 조만간 주력 시장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자동차에 탑재되는 반도체의 부가가치(금액 기준)는 기존 내연기관차 대비 전기차는 2.1배, 자율주행차(레벨4~5)는 3.2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기술 발전으로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더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증가율은 14.5%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여기에 최근 차량용 반도체 품귀현상까지 발생하면서 주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들은 관련 제품의 위탁생산 단가를 최대 20%까지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주문하면 1년 뒤에나 받을 수 있어서 완성차 업체들은 웃돈을 주더라도 반도체를 최대한 확보하려는 모양새다.

업계 일부에서는 지금 이 같은 상황이야말로 시스템반도체 육성의 최대 호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를 모듈화 하고 있다는 점은, 지금까지 반도체 업체를 고민하게 했던 '규모의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 요인이다.

그럼에도 국내 완성차와 반도체 업계의 협력 논의는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최근 IT 업체들이 연이어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하는 상황에서 자칫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의구심도 일정 수준 작용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금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차량용 반도체의 국산화 수준은 여전히 5% 미만에 불과하고 반도체 부족으로 국내에서도 생산공장 가동을 멈추는 일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도 수십년 동안 이어졌던 숙원인 시스템 반도체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아우디 A4에 사람의 두뇌 역할을 하는 차량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 오토'를 공급하는 성과를 거두는 등 영역 확대를 노리고 있다.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수 차례 만나면서 업계에서는 과거의 은원을 풀고 'K-전기차'를 만들기 위한 어벤저스급 조합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세계 정상을 다투는 반도체 업체와 글로벌 톱5 안에 드는 완성차 업체의 연합은 충분히 세계를 긴장시킬 수 있는 강력한 경쟁력이다. 마침 이달 초 정부 주도로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이 참여하는 '미래차-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가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부디 과거 10여년간 반복했던 보여주기 식 억지 모임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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