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박원순 향기, 김어준 없는 공포"…박영선 흔드는 아군

故박원순 성추행 피해여성 기자회견 후에도 2차가해 악재 재생산
박영선 전장에 초가(楚歌) 부르는 아군들…보다 못한 이낙연 "후보 생각 존중을"
"박원순 복권, 박영선 시장되길 원치 않는 듯" "상징자산 챙기기" 관측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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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정치박박] "박원순 향기, 김어준 없는 공포"…박영선 흔드는 아군
2018년 1월 31일 서울시청에서 '서울의 미래 스마트 서울'을 주제로 열린 생각연구소 창립세미나에 참석한 당시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박영선 의원. [자료사진=연합뉴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가 지난 17일 첫 육성 기자회견에서 "피해사실을 왜곡하고 상처 줬던 정당에서 (서울)시장이 선출됐을 때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들었다"고 호소한 지 일주일이 넘도록 여권이 홍역을 치렀다. 야권의 공세가 매서웠던 게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친문(親문재인)계를 중심으로 '2차 가해' 논란을 자초하면서였다. 특히 그 유탄은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에게로 쏟아졌다.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고사성어는 초(楚) 패왕 항우의 군을 포위한 한(漢) 유방의 군대가 초나라 포로들로 하여금 '고향의 노래'를 부르게 해 항우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면서 완승을 거둔 일화에서 유래한다. 이때 구슬픈 고향의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늘어만 가자, 항우는 '이미 초나라가 유방에게 넘어갔나' 착각했다고도 한다. 박 후보의 처지가 마치 항우를 연상케 한다. 그에게 불리한 전장에서 듣고 싶지 않을 초가(楚歌)는 '박원순'일 것이다. 25일 공식선거운동 개시를 기해 박 후보가 "선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번 선거는 미래와 과거의 싸움"이라 한 것도 '과거' 자체를 멀리하려는 의중을 반영하는 셈이다.

그러나 전장의 박 후보를 향해 초가(楚歌)를 들려주는 아군이 잇따르는 형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대통령외교안보특보의 연이은 '박원순 찬가'가 대표적이다. 비서실장 재임 중 북한 정권과 판문점 정상회담까지 성사시킬 만큼 '판'을 읽는 감각이 뛰어난 그가 23일 별안간 SNS로 박 전 시장을 "내가 아는 가장 청렴한 공직자"라며 "박원순의 향기"를 소환했다.

자연스레 '친문 핵심의 2차 가해' 논란이 번졌다. 놀란 박 후보는 이튿날 "앞으로는 그런 일 안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반응했다. 그러나 임 특보는 같은 날 박 전 시장의 3연임을 "시민의 요구에 순명(順命)한 것"이라는 취지로 치적 삼는 글을 썼다. 야당에는 "성범죄 추앙집단을 끝장내는 선거"라고 핏대를 세울 빌미를 줬다. 결국 이낙연 민주당 직전 대표가 25일 "이 국면에서는 후보의 생각을 존중하는 게 옳다"고 자제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박원순판 초가를 부르는 아군은 또 있다. 친문계 5선 중진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25일 공개 SNS로 "(야당에 패배하면) 1등 시사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없어질 수 있다"면서 "김어준이 없는 아침이 두렵다면 오직 박영선"이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박원순 서울시' 산하에서 정치편향을 노골화한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박 후보를 뽑아 지키자는 것이다. 여권에서 대우받는 방송인 김어준씨는 최근 피해여성의 기자회견을 "선거 기간 적극적 정치행위"라며 극성 친문을 선동했다. 곧 선관위가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일축할 사안이었다. 그런데도 송 의원은 "김어준 없는 아침이라는 공포를 이기는 힘은 우리의 투표"라고 부르짖었다. 박 후보의 경선 맞수였던 우상호 의원이 박 전 시장을 "혁신의 롤모델"로 추앙했던 건 약과로 보일 지경이다.

이에 진보진영 출신 인사들은 혀를 차는 모습이다. 송 의원 발언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박원순과 김어준을 위해 시장이 되겠다는 얘기"라고, 민변 출신 권경애 변호사는 "조국사태 때는 그래도 정신 붙잡고 계시더니, 왜 거기까지 가시냐"라고 했다. 진 전 교수는 임 특보의 글을 두고는 "선거 프레임을 박원순 복권(復權)으로 가져 가는 것을 보니 민주당 사람들이 박영선 시장 되는 것을 원하지 않나 보다"라고 분석했다. 옛 민노당 당원 출신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은 "민주당 86그룹은 보선 패배를 확신하고 있다"며 "좌익판에 굴러다니는 '상징자산'을 되는 대로 챙기려고 저 난리 부르스를 추는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한편으론 박 후보도 자신의 사면초가를 자초한 면이 있다. '피해호소인 3인방'으로 불리는 고민정·남인순·진선미 의원이 캠프에 합류한 지 만 2주가 지나도록 끌어안고 있다가 성추행 보궐선거라는 프레임만 공고해졌다. 고 의원은 18일 캠프 대변인직 사퇴 이후에도 친문 카피라이터의 '민주당의 파란색만 사람, 국민의힘 빨간색은 탐욕'이라는 해석을 부르는 영상을 23일 SNS에 공유해 '신종 색깔론'이라는 빈축을 샀다. '빨간색이 탐욕이면 파란색은 성욕이냐'는 구설마저 불렀다. 보궐선거 귀책 사유부터 그렇고 참 뜻대로 되지 않는 환경과 '사람'들이 즐비하다. 박 후보가 출마 전 1월 말까지 장고를 거듭한 이유를 알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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