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근 칼럼] 투기하기 좋은 나라

차상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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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근 칼럼] 투기하기 좋은 나라
차상근 산업부장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 "그들(LH직원)만 했을 리 없다." "개발 독재시대의 구태가 재연되다니 어처구니 없고 허탈할 뿐이다."

3기 신도시 예정지였던 광명·시흥지구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땅투기를 했다는 사건으로 온 나라가 벌집쑤셔놓은 듯하다. 정부의 부동산 주택정책을 집행하는 공직자들이 보상이익을 노리고 소설·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수법으로 투기행각을 벌인데 대해 국민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폭등하는 집값에 애를 태워온 무주택자나 청년들은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4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LH 소속 직원이 투기를 옹호하는 글을 올려 국민적 울화통에 기름을 부었다. 이 직원은 "LH 직원이라고 부동산 투자하지 말란 법 있나", "내부정보를 활용한 투기인지, 공부를 토대로 한 투자인지는 법원이나 검찰에서 판단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신도시 추진 당시 LH사장을 지낸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내식구 감싸기'식 발언도 공분을 키웠다. 그는 "LH직원들이 개발정보를 미리 안 것도 아니고 이익 볼 것도 없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가히 공직기강 해이나 도덕 불감증 수준을 넘어 '화성인'이라는 비아냥을 들을만 하다. 문제의 직원들은 100억원에 이르는 땅 쇼핑을 거의 60%까지 대출로 충당하는 놀라운 수완과 대범함을 발휘했다. 이들 토지의 보상 대가를 키우기 위해 보상가격이 높은 묘목키우기, 토지쪼개기 등 전형적 투기꾼들이 사용하는 수법을 대거 동원해 보는 이들의 혀를 차게 만들었다.

이번 사태를 보는 민심이 극도로 안 좋은 이유는 '설마'했던 공직자들의 개발예정지 투기행위를 눈으로 목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강남개발 때는 물론이고 1,2기 신도시와 여타 군소지역 택지개발 사업 때마다 공직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하고 주변 사람들을 동원해 개발이익을 챙겼다는 루머가 나돌았지만 그때뿐이었다. 게다가 요즘처럼 전산화로 거래정보 확인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공직자 자기 이름으로 대범하게 투기를 했다는 데에 대해 "일부의 모럴 해저드를 넘어 공직기강이 무너졌다"는 탄식이 나올만 하다.

부동산 투기 행각은 과거 조선조에도 병폐였다. 한양에 국한됐지만 15세기 후반 4대문 안쪽 집값이 너무 오르자 4대문 바깥 지역 즉, 북한산, 중랑천, 홍제천 주변지역과 남산 이남 등 성저십리 지역에 주택을 대량 공급하는 대책이 시행됐다. 오늘날의 신도시개발인 셈이다. 당시 4대문 안쪽 인사동 집값은 50년치 녹봉인 반면 신도시지역 집값은 약 2년치 녹봉이어서 획기적 방책이었다. 그러나 집값은 계속 올랐다. 그 배경에는 사대부와 내관, 관리 등의 투기행각이 있었다. 갭투자도 만연했다. 조정에서는 1인 1주택 규제까지 시행했으나 친인척이나 노비 등의 이름을 빌려 집을 사서 세를 놓는 행위가 만연했다. 1600년대 중반부터 1800년대 중반까지 약 200여년간 종로의 기와집 값은 160냥에서 2300냥으로 15배나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2300냥은 당시 시세로 쌀 30톤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문재인 정부들어 너나할 것 없는 투기행위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서울의 아파트값은 4년여간 80% 뛰었고 전문 투기꾼들은 물론 일반인들조차 투기행렬에 가세하고 있다. 주식시장의 '동학·서학'개미 열풍과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영끌' 또한 생산적 활동 범주의 투자를 넘어 한탕 이익을 좇는 전형적 투기행위의 모습이다. 여기에 공직자들이 부동산 개발사업의 내부정보를 이용해 땅투기를 하는 사례까지 확인되고 있다.

투기를 막고 조성원가를 조금이라도 더 낮춰 청년층이나 실수요자들에게 안정적으로 주택을 공급해야 할 의무를 지닌 공직자들이 되레 불법적 투기행위를 버젓이 저질렀다는 것은 온국민들의 투기열풍에 심정적 면죄부를 주는 바와 다르지 않다. 대통령이 발본색원을 지시하며 택지 개발사업 유관기관 종사자 및 주변인에 대한 전수조사를 지시했지만 '사후약방문' 격이다. 이미 국민들의 머리속에는 투기를 하지 않는다면 나만 '벼락거지'가 될 뿐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자리잡았을 것이다. 이는 건전한 생산활동, 합리적 수요에 기반한 소비경제, 이성적 부의 재창출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과 원칙을 흔들고 있다. 온국민이 투기판에 뛰어든 나라, 뛰어들도록 조장하는 나라, 그 후과가 두려울 뿐이다.

차상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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