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DT현장] K-배터리, 적은 정말 내부에 있나](http://contents.dt.co.kr/images/202103/2021030202102269781001[1].jpg "[DT현장] K-배터리, 적은 정말 내부에 있나")
현대자동차 코나 등 전기차에 대한 리콜이 이뤄진 것은 사실 만사지탄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자동차의 안전에 결함이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확실한 조치를 취했음이 옳다. 이는 미래 신사업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사실 전기차 화재는 언젠가는 겪어야 할 성장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떤 신기술이든 시행착오는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 시련을 이겨내야 시장의 신뢰를 얻고 다시 성장할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이번 리콜 발표는 여러가지로 아쉽다.
첫째, 초기에 명확한 조사없이 BMS(배터리관리시스템) 업그레이드라는 조치를 했고, 이후에도 화재사고가 났다는 점에서 먼저 사건 조사가 미숙했음을 사과했어야 했다. 하지만 화재사고가 또 났고 정부는 거의 반년 만에 아무렇지도 않게 배터리 교체라는 리콜 조치를 다시 내렸다. 그런데 리콜의 이유가 참 모호하다. 먼저 배터리에 인위적인 화재 재현 실험을 해보니 코나EV의 화재 영상과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전기차에서 배터리가 아니면 어디에서 화재가 나겠는가.
둘째, 한 배터리 화재 차량을 조사해보니 내부 양극 탭의 일부가 화재로 소실됐다고 한다. 그쪽이 발화점으로 의심된다고 하는건데, 그 역시 명확한 화재 원인으로 제시할 만한 근거는 약하다.
셋째, 리콜로 수거된 배터리를 조사해보니 셀 내부의 정렬 불량 문제로 제조 결함(음극탭 접힘)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건 흥미로운 내용인데 문제는 그 다음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 발표 자료에는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을 확인하였고, 화재 재현실험 중이다.(현재까지 화재 미발생)'라고 적혀있었다. 가능성은 확인했는데 아직 실험에서 불이 나진 않았다는 설명이다. 얼마나 실험했고 또 그 가능성은 어떤 근거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비슷한 사례는 뒤에 또 적혀있다. 리콜 원인으로 제시된 분리막 손상을 확인했다면서도 '손상이 있는 배터리셀로 화재 재현실험 중이나 현재까지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369회 충방전을 실험했고 이는 약 14만7600㎞ 주행에 해당하는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이쯤 되면 정부 발표를 읽은 사람들에게는 의문이 들 것이다. 도대체 '가능성'의 근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왜 아직 입증되지도 않은 의혹을 굳이 정부 발표에 넣은 것인가. 리콜은 그냥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 만으로도 충분히 조치할 수 있는 사항이다. 굳이 애써서 나름 조사 결과를 뒤에 붙인 이유는 전기차 제조사인 현대자동차와 배터리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 중 누구의 책임인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조사결과는 책임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켰다. 또 현대차와 LG 간 갈등을 증폭시키진 않았을까 걱정되는 내용이다. 실제로 양사는 정부 발표가 나온 직후 크게 당혹해 했고, LG측은 즉각 해명 보도자료를 내고 오해를 살 만한 내용을 집중 설명했다. 그 해명에 또 상대방은 불편함을 드러냈다. 굳이 명확하지 않은 조사 결과를 공개해 정부가 양사 간 갈등을 조장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번 리콜에 들어가는 비용이 2조원 안팎이라는 말이 나온 만큼, 신뢰문제까지 걱정해야 하는 양사가 정부 발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업계에서는 이번 리콜 조사 결과에 나온 모든 문구를 양사의 보고서에 의존하다보니 이런 이상한 내용이 나온 것 아니냐는 의심의 시선도 있다.
배터리 업계는 앞서 LG와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으로 2년 여 동안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 역시 성장통의 하나로 있을 만한 일인데, 여기서도 정부가 섣부르게 개입했다가 오히려 갈등만 더 커졌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친환경차와 배터리는 양사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하는 사업이고, 국가적으로도 미래 육성과제다. 두 회사는 그 미래 성장동력의 국가대표 주자이다. 굳이 외국의 기업이나 언론이 자기쪽에 유리하게 여론몰이를 할 만한 '먹잇감'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부와 민간 모두 성장통을 잘 이겨내도록 중심을 잡고 키워나가길 바란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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