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脫홍콩 VS 闖홍콩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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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脫홍콩 VS 闖홍콩
박영서 논설위원

홍콩 시민은 두 종류의 여권을 소지할 수 있다. 하나는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SAR)가 발행하는 청색 여권이다. 또 하나는 영국 정부가 발행하는 빨간색 영국 해외시민 여권이다. 줄여서 'BNO'(British National Overseas) 여권으로 불린다.

'BNO' 여권은 영국이 홍콩을 통치하던 시절의 흔적이다.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한 후 1842년 맺은 난징(南京)조약으로 홍콩섬은 영국령이 된다. 하지만 홍콩섬은 너무 좁았다. 태평천국의 난이 한창이던 1856년에 애로호 사건이 발생해 제2차 아편전쟁이 터지면서 청나라는 홍콩섬 건너 주룽(九龍)반도마저 영국에게 넘겨준다. 1898년 영국이 주룽반도 윗쪽인 신제(新界)지역에 대한 99년 조차권까지 얻으면서 홍콩은 더 확장되었다.

1980년대 중국과 영국 간에 홍콩 반환 교섭이 시작되었다. 1982년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면서 협상은 본격화됐다. 당시 중국 정부는 홍콩섬과 주룽반도를 포함해 홍콩 전부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영국이 불응한다면 무력행사까지 불사하겠다고 다짐했다. 1984년 양국은 홍콩 일괄반환에 합의한다는 '영중 공동성언'을 발표했다. 당시 중국은 홍콩에 대해 일국양제(1국가 2체제)를 적용하기로 약속했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움직임을 보이자 불안감을 느낀 많은 홍콩인들은 영국으로부터 시민권을 부여받길 원했다. 하지만 중국이 반대하면서 절충점을 찾은 게 'BNO' 여권이었다. 당시 영국은 과거 해외식민지 주민들에게 본국 국민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는 BNO 여권을 발급하고 있었다. 홍콩인도 그 대상이 됐다. BNO 여권을 소지한 홍콩인이 비자를 신청하면 최대 6개월간 영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거주나 취업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았다.

신제의 조차기간이 만료된

1997년 7월 1일 마침내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홍콩은 중국의 특별행정구가 됐다. 반환 직후 홍콩시민들은 대거 BNO 여권을 신청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발급되었다. 하지만 BNO 여권은 체류기간이 좀 늘어났을 뿐 별 이점은 없었다. 오히려 해외출국시에는 SAR 여권이 더 나았다. 세계 각국에 있는 중국 공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6월 30일 중국이 홍콩 통제를 위해 홍콩보안법을 시행하자 BNO 여권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가 중국 견제 차원에서 BNO 여권을 가지고 있거나 과거에 보유했던 홍콩인들의 이민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를 위해 BNO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기간은 6개월에서 5년으로 늘어났고, 취업·취학도 가능해졌으며, 가족도 동반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5년을 거주하면 영주권을 부여하고 다시 1년 뒤에는 시민권까지 신청할 수 있다. 지난달 31일 영국 정부가 BNO 여권을 소지한 홍콩인을 대상으로 특별비자 발급 절차를 시작했다. 현재 이 여권을 소지한 홍콩인은 73만여명이다. 추가 신청 자격이 있는 홍콩인이나 그 가족을 포함하면 홍콩 인구의 약 70%에 해당하는 540만명 정도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한다. 영국 정부는 일단 향후 5년 내 30만명 이상의 홍콩인이 영국 이주를 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脫홍콩 VS 闖홍콩


이처럼 영국이 중국에 일격을 날렸지만 중국에겐 반전의 기회가 있다. 홍콩인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중국 본토인들로 채우면 되는 것이다. 이들이 대거 이주해 홍콩을 접수해 버리면 중국의 홍콩 직접통치는 더 용이해진다.

한족(漢族)을 대거 이주시켜 현지의 인구 구성비를 바꿔버리는 이런 정책은 동북3성(만주), 신장(新疆), 티베트 등 소수민족 지역에서 이미 효과가 입증됐다. 19세기 후반 산둥(山東)과 허베이(河北)에 대기근이 몰아닥치자 한족들의 만주 이주가 본격화됐다. 이른바 '촹관둥'(闖關東)이다. '촹'(闖)은 '갑자기 들어가다'는 뜻이다. '관둥'(關東)은 만리장성 동쪽 끝 산하이관(山海關)을 넘으면 나오는 동쪽 지역, 즉 만주를 말한다. 따라서 촹관둥은 '관둥으로 들이닥치다'로 해석된다. 당시 3000만명이 들이닥치면서 원래 살고있던 만주족의 존재는 거의 사라지게 됐다.

신장 지역도 한족이 대거 이주한 지역이다. 1949년 10월 왕전(王震) 장군은 8만여명의 인민해방군 병력을 이끌고 신장에 들어갔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전투 무기를 내려놓고 생산 무기를 들어라"고 지시했다. 1954년 12월 '신장 생산건설병단'(生産建設兵團)이 창설됐다. 전투병은 둔전(屯田)병으로 바꿨다. 신장병단을 통해 한족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1955년까지 7대 3이었던 위구르족과 한족 간 인구비율은 현재 6대 4 이하로 좁아졌다. 우루무치 등 북쪽지역에는 오히려 한족이 위구르족보다 훨씬 많다.

티베트 역시 비슷한 운명이다. 현재 티베트 장족(藏族)과 중국 한족의 비율은 반반이다. 특히 2006년 7월 칭하이(靑海)성과 시짱(西藏)자치구(티베트)의 라싸(拉薩)를 연결하는 칭짱(靑藏)철도가 개통되면서 한족 유입이 가속화되는 추세다.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중국인들은 나름대로의 대처방법을 찾아내는 데는 익숙한 사람들이다. '탈(脫) 홍콩' 바람이 불면 '촹(闖)홍콩'으로 막으면 된다. 영국이 이길지 중국이 이길지, 누가 나중에 웃을 지는 지켜봐야 한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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