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수신료 논의 前 풀어야 할 숙제들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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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17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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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수신료 논의 前 풀어야 할 숙제들
홍성철 교수

1922년 미국의 한 라디오 방송국(WEAF)이 뉴욕의 퀸즈 77번가에 위치한 아파트 관련 광고를 했다. 광고주가 방송프로그램 제작비를 지원하는 미국식 상업방송의 첫 시작이다. 같은 해 영국에서는 BBC가 설립된다. 미국식 상업방송에 대한 거부감으로 BBC는 우정총국과 협의해 라디오 단말기에 수신료를 부과, 프로그램 제작비용으로 사용했다. 공영방송 모델이다. 미국과 영국의 방송 모델은 라디오 시대를 거쳐 TV 시대, 인터넷 시대에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영국식 공영모델에다 미국식 상업성을 가미해왔다. TV가 정권홍보에 앞장서면서 국민반감으로 수신료를 올리지 못하자, 꼼수로 상업성을 확대해왔다. 지상파 방송만 있었던 시절에는 이런 모델이 나름 유효했다. 하지만 케이블TV, 인터넷TV의 다채널시대를 맞아 근본적 고민이 필요해졌다. 지난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지상파의 중간광고를 전면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광고주의 명칭, 상품명 등을 방송프로그램 제목에 사용하는 광고도 허용된다. 미국식 상업방송 모델로 조금 더 가까이 갔다. 그렇다고 정부가 공영방송 모델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방통위는 "KBS 수신료 인상에 대해서 정부 차원 논의는 없었다"면서도 "추후 수신료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방통위가 공영방송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공영방송의 핵심은 국민의 재원 부담이다. 국민이 수신료를 줄테니, 좋은 방송을 만들어달라는 당부인 셈이다. 영국 국민은 연간 157.5 파운드(약 23만 6000원)을 수신료로 지불하고 있다. BBC는 이 돈으로 질 좋은 콘텐츠 제작, 영국 내 8개의 TV 채널과 10개의 라디오 네트워크, 국제뉴스채널인 BBC 월드 등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우리의 수신료는 월 2500원. 39년 전 가격 그대로다. 커피 한 잔 값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KBS 수신료 인상에 대한 국민의 반감은 매우 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불거지는 정파적 보도 논란, 적자운영이라면서도 직원 60% 이상이 억대 연봉자인 현실 등이 그 이유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 이유는 KBS 방송 프로그램이 없어도 겪는 불편함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는 KBS가 그동안 상업성을 강조하면서 공영방송 성격이 탈색된 것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재난보도 주간방송사로서 KBS 위상 역시 YTN과 연합뉴스TV 등 24시간 뉴스 채널로 흔들리고 있다. 그렇기에 넷플릭스 시청에 월 1만원을 기꺼이 내면서도 KBS 수신료 월 2500원은 꺼리는 것이다.

오는 27일로 예정된 KBS 정기이사회에서 수신료 인상안이 의결 안건으로 상정될 것이라는 보도가 최근 나왔다. 적정선의 수신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수신료 인상 이전에 정리해야 할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공영방송으로서 KBS만이 제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어떤 것인지 보여줘야 한다. 즉, 시청률과 공익성을 모두 잡는 프로그램 제작역량과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KBS는 그냥 수많은 콘텐츠 제작업자 중 하나일 뿐이다. KBS는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란이 되는 사장 선임과정과 정파적 보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액연봉자들의 비대한 조직은 언제, 어떻게 구조 조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답을 내놓아야 한다.

'10년 뒤 텔레비전은 현재와 같은 모습일까?' 지난 2013년 미국의 잡지 와이어드(wired)가 던진 질문이다. 당시 와이어드는 "멀티스크린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비자는 훨씬 넓어진 선택권을 갖게 된다"고 전망했다. 당시 와이어드의 기사 내용은 대부분 현실화됐다. TV수상기는 물론, 태블릿PC, 노트북, 모바일을 통한 멀티스크린 시청 시대가 열렸다. 케이블TV 가입해지도 가속화되고 있다. 인터넷만으로도 다양한 영상콘텐츠 소비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디즈니TV가 국내에 상륙, 넷플릭스와 웨이브, 티빙과 같은 OTT 업체들의 인기몰이에 가세할 전망이다. "앞으로 10년은 디지털 시간으로 100년에 해당된다"는 와이어드의 지적처럼, 미디어의 변화 속도는 매우 빠르고 전망도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TV수상기 없는 영상콘텐츠 소비시대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지상파 방송사의 경쟁력 하락은 중간광고 전면 허용이나 수신료 인상으로도 막을 수 없는 시대적 대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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