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신 우리 편 서라"… 中, 노골적 요구에 난감해진 기업들

대중제재 불참규정 만들어 발표
이행땐 손배소… 법적근거 마련
자국기업에 대규모 재정 지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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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냐, 중국이냐."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중국 시장에 발을 담근 한국을 포함한 세계 기업들이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중국 정부가 세계 기업들에 미국 편에 설 것인지, 자국 편에 설 것인지 분명히 줄을 서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9일 상무부령인 '외국 법률·조치의 부당한 역외 적용 저지 방법(규정)'을 돌연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미국의 대중 제재를 일절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의 이같은 노골적 요구는 미국이 중국 기업과 관리들을 상대로 다양한 제재를 시행 중인 가운데 나왔다.

중국 상무부는 규정 도입 취지를 설명하려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기자와의 문답' 형식 보도자료에서 "오랫동안 어떤 나라가 일방주의를 밀어붙이면서 다른 나라 기업과 개인이 관련국과 경제무역 활동을 하지 못하게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16개 조항으로 구성된 규정에 '미국'이라는 두 글자가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여기서 말한 '어떤 나라'는 미국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문제는 중국이 미국의 제재를 따르지 말라고 선언적인 요구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 제재를 이행한 자국 및 외국 기업에 경제적 불이익을 줄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방법'은 9조에서 '외국'(미국)의 제재로 경제적 손해를 본 중국의 개인이나 기업은 해당 제재를 이행한 상대방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중국 법원에 낼 수 있도록 했다. 배상에 응하지 않으면 중국 법원이 강제 집행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포함됐다.

미국의 대중 제재를 무력화하는 내용과 더불어 미국의 제재 표적이 된 자국 기업을 정부가 직접 구제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방법' 11조는 "중국 공민, 법인 또는 기타 조직이 (외국의) 금지령 때문에 손해를 봤거나 외국의 법률과 조치(제재)를 이행하지 않아 중대한 손실을 보게 됐을 때 정부는 실제 상황에 근거해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화웨이나 SMIC처럼 미국의 제재로 어려움에 부닥친 자국 기업들에 대규모 재정 지원에 나설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통상 전문가인 닉 마로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새 상무부령이 나온 것은 (중국 당국의) 전략적 사고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을 보여준다"며 "(중국) 관료들은 더 쉽게 기업들에 어느 한 편에 설 것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조치로 미국의 대중 제재와 관련된 여러 글로벌 기업이 잠재적 손배소 위기에 처하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표적인 미국의 대중 제재 방식은 상무부와 국방부가 지정한 블랙리스트다. 먼저 상무부 지정 블랙리스트는 화웨이 등 중국의 기술기업에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제품 공급을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방부가 지정해 관리하는 '중국군 연계 블랙리스트'는 해당 중국 기업에 미국 국민의 투자를 금지해 자금줄을 마르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미국은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 강행 등 상황과 관련해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14명 등 다수의 홍콩과 중국 고위 관료들을 경제 제재 목록에 올렸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의 새 규정 도입으로 미국 대중 제재에 관여하는 글로벌 기업과 금융기관의 손배소 위험이 커졌다. 이론적으로는 미국의 제재로 어쩔 수 없이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한 미국의 퀄컴과 구글, 대만 TSMC, 한국의 삼성전자, 중국 SMIC 등 세계의 많은 기업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조 바이든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중국이 미국에 기존 대중 강경 정책을 조정하도록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광태기자 ktkim@dt.co.kr

"美 대신 우리 편 서라"… 中, 노골적 요구에 난감해진 기업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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