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중대재해법 첫 단추부터 잘못뀄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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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중대재해법 첫 단추부터 잘못뀄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결국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누더기 법안이 됐다. 지난 29일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정부가 수정해 내놓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수정안을 논의했지만, 중대재해의 개념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입장차이만 확인한 채 끝났다. 중대재해법에 대한 기업들의 불만은 진작부터 현장 곳곳에서 들려왔다. 요약하면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가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문제제기다. 여기에 책임의 범위도 모호해 자칫 '기업 화풀이법'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하고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법 원안 통과를 요구하는 주장도 강력하다. 정부 수정안 전에 내놓은 강은미 정의당 의원의 법안 취지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수의 중대재해가 기업의 부실한 위험관리시스템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현행 제도로는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을 경영진에 묻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소위 '관피아'로 불리는 공무원들의 직무 방임까지 더해져 억울한 죽음이 양산되는 만큼, 아예 처음부터 경영진에 책임을 물어 안전관리 투자를 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정부가 이상하게 개입해 버렸다. 중소기업에 과도한 부담이 지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 법 적용을 2년간 유예한다'는 내용을 새로 넣었고, 중대재해의 기준을 '2명 이상 사망한 재해'로 규정하는 근거 없는 조항을 삽입해 노동자와 시민단체 등의 반발을 자초했다. 여기에 어떤 이유인지 중대재해 책임을 묻는 대상에서는 중앙행정기관장과 지자체장을 뺐다. 그러나 여전히 '무조건적인 경영진 처벌' 조항은 유지했기 때문에 경영계의 불만도 여전하다.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했다는 정부가 내놓은 중재안이 오히려 갈등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다.

법과 규칙은 명확한 기준과 목적이 있어야 하고, 보편타당해야 하고 또한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는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이를 사전에 막아야 하는 게 최선의 법안이다. 이 지점에서 정부가 내놓은 이 대안에 담긴 인식 자체가 억울한 죽음을 초래하는 원인이 아닌가 문득 생각해 본다. 문제 해결 방안을 찾은게 아니라 그냥 "당신들 의견을 반영했으니 뒤는 알아서들 하시오"라는 공무원들의 기계적 사고방식이 반영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앞서 잠깐 언급한 강 의원의 법안 제안 이유를 일부 소개해본다. 그는 "기업의 안전의무 위반으로 인한 재해사고에는 '관피아'로 불리는 공무원의 의식적 직무 방임이 수반되는 경우가 빈번하고 감독의무 또는 인·허가 권한을 가진 공무원이 직무를 게을리하거나 의무를 위반해 그 결과로 재해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현행법 해석을 통해 형사책임을 물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 중대재해법에 대한 찬·반 양측이 제시한 근거를 모두 인용하면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강력한 산업안전 규정이 있음에도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억울한 죽음이 없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제도를 집행하는 감독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감독기능을 강화하는 게 답이다.

중대재해법의 결론은 복잡한 구조적 요인 탓에 책임규명이 어려우니, 차라리 경영진을 무조건 처벌하면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있다는 극단적인 흐름으로 가고 있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안전관리시스템을 철저하게 해도 사람이란 변수가 있는 한 100% 무재해는 있을 수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선 정부가 감독을 강화하고 사고 발생 시 원인규명을 철저하게 하는 것 외엔 해법이 없다. 법이 아무리 좋아도 이를 운용하는 측이 부실하면 방법이 없다.

중대재해법 같은 극단적인 법안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결국 리스크 관리를 위해 기업은 사람이란 변수를 줄여야 한다. 로봇을 살 돈이 없는 중소기업은 도산하고, 돈이 있는 대기업의 일자리는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어느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원점에서 다시, 그리고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억울한 죽음을 막을 방안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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