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에너지합리주의` 실종됐다

김승룡 정경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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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에너지합리주의` 실종됐다
김승룡 정경부 차장
12월 들어 국내 코로나19 감염자가 하루 1000명 이상 발생하는 비상 상황에서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중요한 발표를 열흘 여 새 잇따라 내놨다. 탄소중립이란 온실가스 배출량(+)과 감축량(-)을 합산했을 때 온실가스 순 배출량이 '0'인 상태를 말한다. 흔히 '탄소제로'라고도 한다.

세계기후변화 협약(파리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중요 정책을 내놨다고 한다. 그러나 굳이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서둘러 탄소중립 정책을 잇따라 발표해야 했는지는 아직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세계 선진국들과 동등한 선상에서 출발하는 '탄소중립'은 우리나라가 선도국가로 도약할 기회"라며 공식적으로 '2050 탄소중립' 비전을 선언했다. 앞서 지난 7일 정부는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탄소배출 억제 매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도록 세제, 부담금, 배출권거래제 등 탄소가격 부과수단들을 탄소가격 체계로 재구축할 예정이라며 '탄소세' 도입을 시사했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해 '기후대응기금'을 새로 조성키로 하고, 기후대응기금의 대부분을 친환경 에너지세제 개편을 통한 수입으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친환경 에너지세제 개편의 핵심은 '탄소세' 도입이 될 전망이다.

지난 15일엔 국무회의에서 올해 말까지 유엔(UN)에 제출할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 안을 확정했다. LEDS 핵심 골자는 석탄발전소 중심의 현 전력공급 체계를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중심으로 전환하고, 2030년 신차 판매량의 33% 가량이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가 되도록 친환경차 보급과 인프라를 늘린다는 것이다.

같은 날 지난 15일 산업통상자원부는 2034년까지 원자력발전소 7기, 석탄화력발전소 30기를 폐쇄하고, 대신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현재 3% 미만에서 20%로 대폭 늘리는 내용의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지난 17일엔 이같은 '탄소중립'을 위한 시행 계획들보다 좀더 구체적인 방안이 등장했다. 바로 전기요금에 탈석탄 등 탄소중립을 시행하기 위한 기후환경 비용, 에너지 전환 비용을 추가해 국민에 부담시키겠다는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이 발표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전기요금에 탄소중립 비용을 별도 부과해 국민에 매달 요금 고지서로 알려주겠다고 밝혔다. 지난 7일부터 17일까지 단 11일 만에 탄소중립 비전 선언과 중장기 에너지세제 개편 계획, 탈석탄과 탈원전 등 에너지전환을 위한 전기요금 체계 개편까지, 정부가 이렇게 손발이 척척 맞은 정책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새 전기요금 체계는 기후·환경 관련 비용을 별도 항목으로 분리해 국민에 고지한다. 기후·환경 비용이란 에너지 공기업들의 신재생에너지 의무이행 투자와 관리 비용(RPS),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관련 비용(ETS), 미세먼지 계절 관리제 시행 등에 따른 석탄발전소 감축 비용 등을 계산해 이를 전기 사용자 수로 나눠 매월 추가로 부담케 하는 것이다.

탈석탄에 필요한 비용을 국민 전기요금으로 걷어 충당하겠다는 뜻이다. 앞으로 탈원전 비용도 전기요금에 부담하는 것 아닌지 국민들은 벌써부터 걱정이다. 정부는 이처럼 국민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대한 전기요금 정책을 시행하면서 제대로 국민 의견 수렴조차 하지 않았다. 탈석탄 비용을 전기요금으로 부담한다는 데 동의하는 국민도 있겠지만, 동의하지 않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국민적 합의' 없이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국민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기요금으로 에너지 전환 정책비용을 걷겠다는 것은 정부의 독선이자 옛 군사 정부식 밀어붙이기와 다를 게 전혀 없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왜 그리 합리적이지 못한가. 탈원전과 탈석탄,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는 걸 반대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걸 실현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민주주적이고, 합리적 방법과 절차를 통해 이룰 것인가가 중요하다. 에너지엔 진보도, 보수도 없다. 오로지 국민에 이득이 되는 합리적 에너지 정책을 추구하면 된다. 탈석탄과 탈원전을 반대하면 보수이고, 신재생에너지를 옹호하면 진보인가. 석탄발전소를 그냥 폐쇄하기 앞서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을 적용하는 합리적 수단을 먼저 고민하면 안 되는 일인가.

서울 강남 4구 만한 땅에 19조원을 들여 만든 태양광발전소가 고작 3조원을 들인 원전 1기가 생산하는 전력과 비슷한 상황에서, 신재생에너지 20% 확대가 가져올 문제점을 따져보는 '에너지 합리주의'는 국민에 해가 될 게 하나도 없다. 앞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투자비용, 석탄과 원전 폐쇄 비용은 갈수록 커질 것이고 그에 따라 국민에 전가되는 전기요금 부담도 훨씬 커질 것이다. 정치적인 거 말고, 합리적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환경도 살리고 국민 부담도 줄일 길을 찾아야 한다.

김승룡 정경부 차장 s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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