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이덕환 칼럼] 가습기살균제의 황당한 유해성 논란](http://contents.dt.co.kr/images/202011/2020112402102269607001[1].jpg "[이덕환 칼럼] 가습기살균제의 황당한 유해성 논란")
환경부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가 피해자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실제로 전문성이나 분명한 원칙도 없었고, 피해자에 대한 측은지심도 없었다. 결국 피해자들이 특조위 위원들을 직무 유기와 위계에 의한 진상 규명 방해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특조위의 활동 시한 연장도 반대하고 나섰다. 정부가 피해 구제를 위해서 만들어준 창구까지 포기해버리겠다고 나설 정도로 피해자의 현실이 절망적이라는 뜻이다.
자신들에게 수사권과 압수수색권을 보장해주지 않은 정부를 탓하는 특조위 부위원장의 변명은 부끄럽고 옹색한 것이다. 처음부터 자료 요구권만 주어졌던 자리를 탐냈던 것부터 잘못이었다. 능력이 없으면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 특조위 주변에서 자신들의 작은 이익을 위해 분주했던 전문가들에게도 뼈를 깎는 반성을 요구해야 한다. 법정에서도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변호사가 '가습기 메이트'의 살균 성분으로 사용했던 CMIT·MIT의 인체 유해성에 대한 학술논문을 검증하겠다고 나섰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동물실험의 학술적 의미도 파악하지 못하고, 생리학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조차 갖추지 못한 변호사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논문을 발표한 독성학자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절망적이다. 독성학자의 학술논문은 법정에 제출된 피고인의 진술서가 아니다. 과학논문의 진위를 법정에서 가려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우스를 이용한 동물실험은 절대 사람에게 나타나는 질병을 진단하는 대체 수단이 될 수 없다. 마우스에게 증상이 나타났다고 사람에게도 똑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마우스에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사람에게 안전하다는 증거가 되는 것도 아니다. 마우스의 종(種)이나 개체(個體)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동물실험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동물실험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인체 실험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다. 그러나 동물실험의 결과에 대한 해석이 쉬운 것은 아니다. 동물실험에 대한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마우스의 폐에서 나타나는 계면활성제 균형의 파괴에 의한 백혈구 증가와 기도 주위의 점액 분비세포 및 근육 조직의 과증식에 대한 해석은 독성학자의 전문영역이다. 변호사가 함부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물론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의 결론이 틀린 것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그러나 동료평가를 거쳐서 발표된 논문에 대한 반론은 확실한 학술적인 증거를 제시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변호사의 몇 마디 법정 발언으로 논문의 결론이 뒤집어질 수는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제조사의 주장은 황당하고 무책임한 것이다. 피해를 호소하는 6923명의 신고자들이 모두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입증해주는 가장 확실한 증인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CMIT·MIT는 섭취·흡입은 금지되고, 피부 접촉만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범용(汎用) 살균 성분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런 살균 성분이 들어있는 세정제를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광고하고, 소비자들에게 밀폐된 실내에 분무하도록 만든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살균 성분을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흡입하는 경우에 나타나는 만성 증상을 확인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크기가 작아서 인체에 쉽게 흡수되는 CMIT·MIT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모든 살균 성분이 똑같은 부작용을 나타낼 것이라는 기대도 섣부른 것이다.
수많은 피해자를 눈앞에 두고도 추가적인 과학적 증거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엉터리 궤변이다. 현대 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과학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기도 하다. 엉터리 제품과 사용법으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힌 책임은 절대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적 신뢰를 포기해버린 기업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존재할 명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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