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이제 탈원전 환상에서 벗어나야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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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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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칼럼] 이제 탈원전 환상에서 벗어나야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감사원이 월성1호기 조기폐로를 의결한 한수원 이사회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 국회법의 시한을 8개월이나 넘길 정도로 감사 저항이 심했다고 한다. 조기폐로 결정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명시적 판단은 하지 않았고, 한수원 이사들의 업무상 배임죄도 인정하지 않았다. 산업부 장관과 한수원 사장에게도 면죄부를 줘버렸다. 감사원이 탈원전 정책 수행의 불법성·부당성을 밝혀줄 것으로 기대했던 국민들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다.

그렇다고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청와대와 산업부가 경제성 평가를 적극적으로 조작·왜곡했고, 한수원 이사회의 의결에 부당하게 개입함으로써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힌 구체적인 정황을 낱낱이 밝혀냈다. 감사원 보고서는 언젠가 관련자들에게 실질적인 사법적 책임을 묻는 소중한 증거로 활용될 것이다.

감사원이 밝혀낸 진실은 충격적인 것이다. 산업부와 한수원이 월성1호기 계속 가동의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하도록 만든 주범이었다. 월성1호기의 이용률을 60%로 추정했으면서도, 회계법인의 경제성 평가에서는 의도적으로 전년도 판매단가 대신 원전 이용률이 84%일 때의 '전망단가'를 적용하도록 강요했다. 결과적으로 계속 가동 시 회계법인이 당초 예상했던 3707억 원의 이익이 224억 원으로 쪼그라들어버렸다.

한수원 이사회가 월성1호기의 '즉시' 가동 중단을 의결해버린 것도 위법이었다. 월성1호기의 가동 중단은 원자력안전법과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원안위의 영구정지 운영변경 의결을 거쳐 결정해야 하는 것이 명백한 원칙이었다. 산업부와 한수원이 모두 합법적 절차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수원 이사회가 법과 제도를 무시한 산업부 장관과 한수원 사장의 강요에 무릎을 꿇어버렸다. 청와대의 협조 요청도 있었던 모양이다. 더욱이 원안위가 월성1호기의 가동 정지를 허가한 것은 한수원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이었던 작년 12월 24일이었다. 결국 산업부·한수원·원안위가 똘똘 뭉쳐서 적어도 18개월 동안 가동할 수 있었던 멀쩡한 월성1호기를 불법적으로 포기해버렸던 셈이다. 물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떠넘겨지고 말았다.

월성1호기 조기 폐로의 가장 중요한 명분은 '낮은 경제성'이었다. 그런데 경제성 평가가 산업부 장관과 한수원 사장의 개입으로 심각하게 조작·왜곡되었다면,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 폐로 결정은 '원인' 무효가 돼버린 것이다. 당연히 2018년 6월 한수원 이사회의 의결은 취소돼야 하고, 월성1호기는 즉시 가동을 재개해야 한다. 연료봉만 다시 넣으면 기술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다. 월성1호기 즉시 가동 중단과 같은 이유로 의결했던 신한울3·4호기의 건설 중단 결정도 취소하는 것이 마땅하다.

안전성과 지역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의결이었다는 산업부의 때늦은 반발은 어처구니없는 억지이고, 심각한 자가당착이다. 그런 고려가 월성1호기에만 적용될 수는 없는 일이다. 실제로 그렇다면 모든 원전의 가동을 즉시 중단해야만 한다. 백 걸음을 양보하더라도 월성1호기와 동일한 중수로인 월성 2·3·4호기에는 적용돼야만 한다. 그런 고려가 정말 중요하다면 산업부가 엄청난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산업부는 회계법인과 한수원의 요청으로 회의에 참석해서 의견을 제시했을 뿐이고, 이용률이나 발전단가를 바꾸라고 부적정하게 지시하지 않았다는 변명은 정상적인 영혼을 가진 관료들에게는 입에 담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변명은 윤리적으로 타락해버린 사이비 정치인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다. 아무리 절박해도 최소한의 체면은 지켜야 한다. 즉시 가동 중단에 대한 당시 산업부의 정책적 판단이 타당했다는 주장도 황당한 궤변이다. 산업부가 그렇게 당당했다면 감사가 시작되기 전 일요일 야밤에 444건의 자료를 삭제하는 범죄 행위를 저지를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적극행정 면책'을 기대하는 산업부의 입장도 애처롭다. 이 정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업의 담당자들을 엄중하게 징계해버린 전력을 갖고 있다. 법치 국가에서는 대선 공약과 국정 과제라도 법과 제도에 따라 집행해야 한다고 행동으로 밝혔던 대통령의 초심을 흔들지 말아야 한다.

헌법기관인 감사원에 대한 무분별한 공격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감사원장 가족의 직업이나 정치적 성향을 들먹이는 것은 유치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탈법적인 탈원전의 환상은 확실하게 버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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