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맹탕 된 금융그룹감독법

김현동 정경부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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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맹탕 된 금융그룹감독법
김현동 정경부 금융팀장
소위 '공정경제 3법'(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상법 개정안·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놓고 재계와 정치권이 시끄럽다. 상법 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와 대주주 의결권 3% 제한은 경우에 따라서 투기자본의 이익에 부합할 소지가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사익편취 규제기준 강화·자회사 의무지분율 확대·공익법인 의결권 제한·전속고발권 폐지 등은 기업 입장에서 과도한 규제비용 요인이다.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은 기존에 없던 규제가 신설된다는 측면에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재계는 금융업권별 규제에 더해 이중규제를 받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공정경제 3법은 특히 삼성그룹에 가장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상장법인인 삼성생명은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 지분이 20.8%(2019년말 기준)이어서 현재는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사익편취 규제를 적용받게 되면 금융계열사와 비금융 계열사 간 모든 거래에 대해 공정위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 삼성생명의 내부거래 비중은 4% 수준에 불과하지만, 삼성생명이 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금융그룹감독법은 삼성생명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와 삼성증권, 삼성카드, 삼성자산운용 등을 지배하고 있는 사실상의 금융지주회사다. 동시에 삼성전자의 동일인측 최대주주로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 역할을 한다.

금융그룹감독법은 금융그룹 차원에서 자본적정성, 내부거래와 집중위험, 계열사 간 위험전이 등 그룹 위험을 종합적으로 관리·감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리스크를 사전에 평가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현대·기아차의 리스크가 현대캐피탈에 전이될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차원이다. 미래에셋컨설팅과 미래에셋자산운용·미래에셋대우·미래에셋캐피탈, 한화건설과 한화생명·한화자산운용·한화투자증권 등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 간 직·간접적 내부거래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차원도 있다. 글로벌 공통규제이기도 하고, 은산분리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금산결합 리스크 감독이라는 한국적 특수성도 있다.

삼성금융그룹의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의 리스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관건이다. 당초 금융당국은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에 대해 집중위험과 전이위험을 모두 평가하려고 했다. 보험업법에 따른 지급여력비율(RBC) 규제에 계열사 주식에 대한 평가(주식위험계수 12%)가 있긴 하다. 신지급여력비율(K-ICS)은 자산집중위험을 직접 평가하는 항목도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지분은 단순한 계열사 주식이 아니다. 삼성전자 주식은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증권이면서 동시에 금융부문과 제조부문을 연결하는 지배구조의 핵심 자산이다. RBC나 K-ICS는 보험회사의 보험계약부채 지급여력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지급여력비율 규제로 평가하자는 말은 금융그룹 감독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들어 집중위험과 전이위험을 그룹위험이라는 포괄적 명칭으로 변경하고 평가 방법을 대폭 수정했다. 금융그룹감독 차원에서 삼성전자 지분의 집중위험과 전이위험을 평가하기 어렵고, 보험업법 개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대주주나 계열사의 주식이나 채권을 총자산의 3%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자산운용 한도를 정해놓고 있다. 3%가 넘어가면 초과분을 4년안에 처분해야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보험사의 자산운용 한도를 계산하는 방식이 시가가 아닌 원가 방식이다. 이 규정 덕분에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시장가격 기준 9% 가까이 보유할 수 있고,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지배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21대 국회에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를 제한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두 건이나 발의돼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해당 법안의 개정 취지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당 법안을 놓고 여당 내에서조차 과도한 규제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계열사 주식 보유에 따르는 리스크는 지급여력비율 규제로 충분하다는 논리다.

금융그룹감독법은 20대 국회에서 '삼성을 겨냥한 신설 규제'라는 논리에 막혀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21대 국회는 금융위원회가 포기한 숙제를 풀어야 한다. 삼성그룹의 난해한 지배구조 때문에 금융그룹감독법이 형해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현동 정경부 금융팀장 citize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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