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철 칼럼] 김정은이 던진 `독사과`

신범철 한국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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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2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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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칼럼] 김정은이 던진 `독사과`
신범철 한국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인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례적인 사과의 의사를 표명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월 24일 청와대 앞으로 보낸 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명의의 통지문에서 북한 수역에서 발생한 한국 공무원에 대한 사살행위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북한의 사과 전통문 전문과 그간 오간 친서를 공개하며 상황을 수습하려는 모습이지만, 절대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김정은의 사과는 이례적이다. 그간 북한에서 유감 표명을 한 일은 종종 있었다. 멀게는 1968년 김신조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부터 가깝게는 2015년 목함지뢰 사건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의 사과와 유감 표명은 있었지만, 이처럼 신속하게 최고지도자의 의사를 전한 것은 처음이다. 시신 훼손으로 인해 한국 및 국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는 것을 막아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용 측면에서 김정은의 사과는 떨떠름하다. 정작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내용은 없이 책임을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군 당국이 밝힌 내용을 종합해보면 북한은 적어도 6시간 이상 희생자를 억류(?) 심문하고 사살한 후 시신에 불을 질렀다. 하지만 북측이 보내온 내용은 매우 교묘하다. 희생자를 발견하고 심문하는 과정에서 도주할 것으로 보이는 이상징후를 발견하자 현장책임자인 경비정 정장의 지시로 사격한 후, 시신은 확인하지 못한 채 혈흔만이 남아있는 부유물만 소각했다는 것이다. 책임은 희생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사실관계에 관한 주장이 이렇기에 김정은의 사과도 북한 당국의 잘못이 아니라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고, 책임자 처벌도 언급이 없는 것이다. 나아가 적반하장격으로 우리 군 당국의 만행이라는 표현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발표 내용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80미터 거리에서 희생자를 심문했다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잘 안 들리면 다가가서 물어보면 될 것을 40~50미터 거리에서 사살했다는 것은 상황파악의 의사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북한 주장이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상규명을 하고 책임자 처벌을 받아내야 한다.

주의할 점은 김정은의 사과에는 독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그대로 수용할 경우 남북관계의 잘못된 관행을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 자신들의 책임은 없다는 진정성 없는 사과만으로 이 상황이 종료될 경우, 앞으로도 북한은 우리 국민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게 될 것이고 나아가 같은 만행을 반복할 수 있다. 따라서 엄중한 경고와 문책을 통해 다시는 유사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현재 정부는 추가조사와 필요할 경우 공동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러한 요구에는 눈감은 채 북방한계선 이남의 정당한 수색작업에 대해 시비를 걸고 있다. 화제를 돌리려는 행보다. 북한의 태도가 이렇다면 국제사회와 공조하며 변화를 유도해야 하는데, 정부는 유엔이나 국제인권기구로 이 문제를 가져가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래서야 제대로 된 대처가 되겠는가. 어쩌면 북한의 태도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상황 인식일지도 모른다.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 발생했음에도 그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이 피해자의 신병을 확보한 것을 확인한 후 초기 구조 노력이 미흡했던 것도, 사살 정황을 확인한 후에도 대통령에게 10시간이나 지나서야 보고가 이뤄진 위기관리체계의 구멍도, 상황보고를 받은 지 7일째 돼서야 대통령이 피해자 유가족에게 위로를 표하고 국민에 송구하다고 한 것은 모두 같은 이유가 아닌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고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김정은이 던진 독 있는 사과를 그대로 받아서는 안 된다. 비록 한 명일지라도 그 생명은 정부의 어설픈 대북정책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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