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김승룡 정경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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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김승룡 정경부 차장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지난 8월 말부터 2주간 2.5단계에서 이달 14일부터는 2단계로 완화됐다.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장사를 하지 못해 벌이가 없어 굶어 죽게 생겼다"는 벼랑 끝 자영업자들과 수많은 소상공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영업은 다시 할 수 있게 됐으니 가뜩이나 안 되는 장사지만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고 어이없는 풍경을 봤다.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된 지난 2주간 주말을 빼고 매일 아침, 중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교 수업이 모두 원격수업으로 전환된 때였다. 차를 끌고 출근하려고 집 근처 초등학교를 지나치는데, 모자를 쓰고 파란 조끼를 입은 노인 분들이 횡단보도 근처에서 하릴없이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는데, 학생 안전을 위한다며 교통 안전 지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의 일환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이 얼마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차라리 노인 분들에게 기초연금을 더 주든지 하지…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짓인가?" 속에서 절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이상한 풍경은 또 있었다. 자리마다 가림막이 쳐진 구내 식당에서 쓸쓸이 '혼밥'을 하고, 신문사 뒷편 골목으로 산책을 나가려니 한 노인 분이 골목에 떨어진 낙엽을 한장 한장 빗자루로 쓸어 쓰레바퀴에 담고 계셨다. 그 노인 분은 낙엽을 최대한 천천히 쓸어담았다. 산책 후 돌아오는 길에 그 골목을 다시 지나치니 그 노인 분은 그늘에 앉아 퀭한 눈으로 스마트폰을 보고 계셨다.

이 역시 노인 일자리 사업이 틀림없다. 별 쓰레기도 없는 골목을 매일같이 나와 낙엽 하나 떨어지면 쓸어담고, 또 하나 떨어지면 쓸어담는 일. 이런 무의미한, 요식 행위를 한 대가로 정부가 임금을 준다. 이런 억지 노인 일자리도 취업자 통계로 잡힌다. 그러다 보니 노인 취업자만 계속 증가하고, 나머지 20~30대 청년은 물론 40대 가장들은 취업자가 계속 줄어든다.

지난 9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60세 이상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무려 38만4000명 증가했다. 60세 이상의 고용률은 43.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30대는 23만명, 40대에서 18만2000명, 20대 13만9000명, 50대 7만4000명 등 나머지 전 연령층에서는 감소했다. 15~29세 청년 고용률은 42.9%로 60세 이상 고용률보다 낮았다. 우리나라 청년 고용률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32위로 최하위권이다. 8월 구직단념자 68만명 가운데 20~30대가 약 36만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청년 체감실업률은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5년 이후 최고다.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한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우리나라 취업자수는 6개월 연속 감소했다. 60세 이상 고령자만 빼고 일자리를 하나 둘 잃어갔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책이 한때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다 헛말이다. 우리나라처럼 노인을 위한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유독 정부가 노인 일자리에 신경 쓰는 이유는 취업자수, 고용률이라는 통계 성적표 때문일 게다. 가뜩이나 몇 해 전부터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었는데, 올해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지면서 그야말로 고용 참사가 잇따르고 있다. 만약 노인 일자리 사업마저 없었다면 그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고용 성적표는 'F' 학점이었을 것이다.

정권의 행정력과 정치력 평가지표로 직결되는 고용지표, 고용 성적표를 위해 국민세금으로 참으로 의미 없는 노인 일자리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노인 복지정책을 강화하고 거기에 세금을 쓰든가 하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왜, 힘 없고 돈 없는 빽 없는 늙은 어르신들 이른 아침부터 불러다 요식 행위 시키고, 일 했다고 돈 쥐어 주며 정권의 성적표 관리용으로 쓴단 말인가.'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꺼리고, 자영업자들은 있는 직원마저 모두 내보내고,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구하려면 수십 대 일 경쟁률을 뚫어야 하니 '청년 고용절벽'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청년 고용이 어렵다고 하니, 정부는 최근 4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통해 취업 애로를 겪는 청년(만18~24세) 20만명에 50만원씩 특별 구직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뭐든지 성적지표가 떨어지면 단기 현금살포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차라리 미래산업,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인력을 키우는데 그런 예산을 쓰는 건 어떤가. 고용은 단기 대책으론 절대 답이 없다.

김승룡기자 sr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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