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比 자금 2배 많지만
글로벌 M&A 행보 제한적
글로벌 M&A 행보 제한적
<삼성전자 제공>
세계 반도체 시장이 미래 성장을 위해 활발한 '합종연횡'을 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세계 1, 2위를 다투는 삼성전자는 요지부동이다. 지난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초대형 '인수·합병(M&A)'을 추진할 적기이지만, 결정권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여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2분기 말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 규모는 36조1096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조원 가량 늘었다. 이날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위해 투자하겠다고 한 현금 120억 달러(약 14조원)보다 2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하지만 업계 2위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삼성전자의 글로벌 M&A 행보는 조용하다. 지난 2016년까지만 해도 데이코, 비브랩스, 하만 등을 인수하며 자동차 전장부품, AI(인공지능), 가전 등 경쟁력 강화에 나섰지만, 2017년 이후에는 눈에 띌만한 행보가 거의 없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2017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 기소돼 지금까지 재판을 받으면서 주요 경영상의 대형 투자 결정을 할 수 없게 된 점 등을 배경으로 꼽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수십조원에 이르는 투자 결정은 임기가 제한적인 CEO(최고경영자) 급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특히 반도체의 경우 과거 이건희 회장의 판단이 아니었으면 오늘날과 같이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검찰은 자체 개혁 장치인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에도 이 부회장을 '삼성그룹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혐의로 또 다시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은 최소 2년 이상 또 다시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혔다.
이런 사이에 중국을 비롯해 세계 주요국가의 대표 기업들은 공격적인 M&A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가 단순히 하나의 업종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핵심 키라는 인식 하에 기업들은 물론 정부까지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M&A를 통해 반도체 해외기업을 인수한 기업(Buyer) 통계'에 따르면 2014년까지만 해도 누적 인수기업이 4개에 그쳤던 중국은 2015년~2018년간 무려 29개의 기업이 외국 반도체기업 M&A에 뛰어들었다. 미국 5대 IT업체인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마이크로소프트 또한 꾸준히 M&A를 추진 중이다. 올 들어서만 애플은 4개 업체 이상을, 마이크로소프트는 3개 업체를 사들였다.
이 부회장 역시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달성을 위해 133조원을 투자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반도체 비전 2030'을 작년 4월에 내놓았다. 이후 EUV(극자외선) 전용 파운드리 라인인 'V1' 구축을 비롯해 평택 내 추가 EUV 라인 건설 결정 등을 직접 챙기는 등 약속을 지키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조 단위의 M&A의 경우 이 부회장이 글로벌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직접 살펴보고 결정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사법 리스크로 인해 이 부회장의 글로벌 행보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열악한 국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등을 고려했을 때 공격적인 M&A가 아니면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그나마 큰 손인 삼성전자가 오너 리스크에 발목 잡혀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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