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빅딜에 단숨 강자 부상
車·서버 확대땐 톱5 진입 가능성
설계기술 로열티 '잠재적 리스크'
규제당국의 합병 승인 험로 예상
車·서버 확대땐 톱5 진입 가능성
설계기술 로열티 '잠재적 리스크'
규제당국의 합병 승인 험로 예상
세계 반도체 시장에 '인수·합병(M&A)'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 7월 25조원 규모의 아날로그디바이스'(ADI)의 '맥심 인티그레이티드 프로덕츠' 인수 발표에 이어 엔비디아와 ARM 간 47조원 규모의 초대형 '빅딜' 발표가 나온 것이다.
특히 이날 엔비디아의 ARM 인수는 모바일과 자율주행차 등 미래 성장사업을 키우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언택트(비대면)' 바람이 4차 산업혁명을 더 앞당길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대형 M&A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존재감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30조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한 삼성전자나 이 같은 '큰 판'에 참여할 수 있는데, '사법 리스크'에 붙들려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픽 강자와 설계 강자의 결합…반도체 시장 '요동'=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13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회사 ARM홀딩스를 47조3000억원(40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ARM 지분은 소프트뱅크가 75%,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인 비전펀드가 25%를 보유하고 있다. 소프트뱅크 측은 보유 지분 전량을 매각하기로 했다. 엔비디아는 소프트뱅크에 매입 대금으로 자사 주식 215억 달러어치와 현금 120억 달러를 지불한다.
소프트뱅크는 이번 거래로 그래픽프로세서(GPU)는 물론 자동차 자율 주행에 사용되는 인공지능(AI) 기술 등에 강점이 있는 엔비디아 주식 지분 6.7∼8.1%를 확보하게 된다. 소프트뱅크는 향후 ARM의 실적에 따라 현금이나 주식 50억 달러어치를 추가로 받을 수도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매각은 2022년 3월께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소프트뱅크는 밝혔다. 앞서 소프트뱅크는 2016년 ARM을 320억 달러(약 37조9000억원)에 인수했다.
ARM은 반도체 제조사는 아니지만 주요 설계기술을 대가로 로열티를 받는다. 특히 전세계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95%가 ARM의 설계도를 사용한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물론, 애플, 퀄컴 등도 ARM에 로열티를 준다.
로이터는 이번 계약을 "반도체 지형을 바꿀 만한 일"로 평가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립자 겸 CEO(최고경영자)는 "엔비디아와 ARM의 결합으로 이러한 AI 시대에 높은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탄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이 강력한 조합은 ARM과 케임브리지, 영국을 이 시대 가장 흥미로운 기술 혁신의 선봉에 위치시킬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엔비디아는 이번 계약으로 ARM의 반도체 설계기술을 확보하게 돼, 인텔과 AMD 등 데이터센터 칩 강자들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엔비디아는 지난 4월 데이터센터 사업 강화를 위해 이스라엘 반도체 업체 멜라녹스를 69억 달러(약 8조200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에는 '득실 교차'…중국 등 합병 승인여부 변수= 업계에서는 이번 '빅딜'이 삼성전자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일단 엔비디아가 ARM의 설계에 업계 1위인 GPU 경쟁력까지 더하면 단숨에 AP 시장 강자로 떠오를 수 있다. 자동차, 서버 등까지 영향을 확대할 경우 삼성전자는 물론 인텔, 퀄컴, 애플 등 세계 톱 반도체 업체들에게 엔비디아는 강력한 경쟁자가 된다. 올 상반기 기준 세계 반도체 매출 순위 8위권이지만 단숨에 톱5까지 진입할 수 있다.
여기에 엔비디아가 ARM의 설계기술에 대한 로열티를 강화할 경우 반도체 업계 전반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다만 엔비디아가 ARM의 '오픈 라이선스'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공언해 현 시점에서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삼성전자 역시 두 회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어 M&A가 성사되더라도 당장 큰 영향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ARM의 경우 삼성전자의 AP 사업 뿐 아니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서도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고, 엔비디아는 최근 삼성전자 7나노 파운드리 공정으로 차세대 GPU를 양산하기로 하는 등 협력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AP 등 신사업에 진출할 경우 삼성전자 또는 TSMC에 생산을 맡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일부에서는 이번 엔비디아의 ARM 인수로 자체 설계기술 확보 또는 대체할 업체를 찾으려는 움직임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화웨이 등 중국 업체들의 경우 미국의 반도체 압박에 ARM까지 더해지면서 설계기술 자급화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원만하게 성사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두 회사의 인수합병은 미국, 영국을 비롯해 중국과 유럽연합(EU) 등 규제 당국의 반독점 심사 등 승인을 받아야 한다. 업계에선 이 과정이 약 1년6개월 걸릴 것으로 예상하지만, 중국 등 일부 국가의 반대가 유력해 험로가 예고된다. 실제로 2015년 미국 퀄컴이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NXP를 50조원(44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지만 중국의 '독점 금지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승인을 받지 못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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